[ASIA BIZ] "방콕만큼 더워진 도쿄"… 한낮 작업 접는 일본 기업들

  • 더위로 사라진 노동시간 연 29억 시간… 2010년대의 두 배

  • 우편 배달도 원칙 중단… 폭염 상품 시장은 커진다

이미지챗GPT 생성
[이미지=챗GPT 생성, 자료: 랜싯 카운트다운 2025 보고서]


일본 삿포로에서 북동쪽으로 100km 떨어진 홋카이도 후카가와시. 매년 7월 열리는 '후카가와 여름축제'의 시작 시간이 올해부터 오전이 아닌 저녁 시간대로 변경된다. 일본 북단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지난해 7월 평균 최고기온은 29.1도로, 10년 새 4도나 올랐다. 인근 음식점 주인은 "이제 뙤약볕 아래에서 축제를 즐기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했다.

일본의 여름이 동남아시아 도시만큼 더워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미국 해양대기청(NOAA)의 2020~2025년 관측자료를 분석한 결과, 7~8월 도쿄의 최고기온과 습도는 태국 방콕, 싱가포르 수준에 육박했다. 2000년대, 2010년대와 비교해 기온과 습도가 모두 오르면서 '열대화'가 뚜렷해졌다고 이 신문은 지난 5일 보도했다. 일본의 평균기온은 100년간 1.44도 상승했다. 일본 정부가 올해부터 최고기온 40도 이상인 날을 '혹서일(酷暑日)'로 부르기 시작한 배경이다. 기존 '맹서일(35도 이상)'로는 담을 수 없는 더위가 현실이 됐다.

이같은 더위는 노동시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국 의학저널 랜싯의 국제연구에 따르면 2024년 일본에서 더위로 줄어든 노동시간은 근로자 1인당 43시간으로 추산됐다. 하루 8시간 근무 기준 닷새를 넘는다. 취업자 전체로는 연 28억 9082만 시간으로 2010년대 평균(14억 2771만 시간)의 두 배에 달했다. 더위에 따른 일본의 잠재 소득 손실은 494억 달러(약 8조 엔, 한화 약 74조2300억원)로 연간 공공사업 예산(약 6조 엔)을 웃돈다. 지난해 일본의 직장 내 열사병 사상자도 1803명으로 2년 연속 최다를 기록했다.

이런 더위 속에서 일하기 위해 그동안 기업들은 냉방기를 돌리고 선풍기 달린 작업복을 지급해 왔다. 하지만 날로 더워지는 여름은 몸을 식히는 것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본 대형 건설사 오바야시구미는 7~8월 전국 60개 현장의 작업 시간을 오전 7시부터 오후 1시로 단축했다. 공사를 아예 멈추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공사 현장이 멈추면 일용직 근로자의 수입이 끊기고 공급망 전체가 흔들린다. 따라서 작업 시간을 바꾸는 쪽이 현실적이었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일본 전기공사업체 도에넥은 전신주에 올라 일하는 인력에 한해 7~8월 매주 수요일을 쉬는 주 4일제를 도입했다. 줄어든 작업일은 더위가 한풀 꺾인 시기에 보충한다. 종합건설사 고노이케구미도 7~9월 현장 휴일을 늘리는 대신 10월부터 토요일 작업으로 보충한다.

건설 현장 밖에서도 일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 전국 우편망을 책임지는 일본우편은 열사병 특별경계경보가 내려진 지역에서 집배원이 밖에서 하는 배달과 수거를 원칙적으로 중단하기로 했다. 우편물이 하루 이틀 늦어지더라도 "직원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판단에서다. 전국 3만 명의 방문판매원을 둔 야쿠르트는 이른 아침 배달을 검토하고 있다.
 
폭염 상품 수요 증가

더위는 새로운 시장도 키우고 있다. 생활용품 업체 카오는 한여름 햇빛을 재현한 실험실에서 목을 식히는 '냉타월'의 성능 시험을 반복하고 있다. 실내 자전거 페달을 밟던 연구원이 냉타월을 두르자 서모그래피 화면에서 빨갛게 달아올랐던 목덜미가 순식간에 파랗게 바뀌었다. 건설사들로부터 "1시간으로는 부족하다"는 요구가 이어지자 냉각 지속시간을 두 배로 늘리는 것이 목표다. 작업복 업체 워크맨은 기온 45도를 상정한 여름 작업복을 내놨다. 조사회사 글로벌인포메이션은 세계 폭염 대책 시장이 2025년 약 28억 달러에서 2030년 40억 달러로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무더위 자체를 막을 방법은 없다. 닛세이기초연구소의 시노하라 다쿠야 수석연구원은 "'사람을 식히는' 대책에서 '사람이 더위에 노출되는 시간을 줄이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중요하다"며 이른 아침이나 야간으로 근무시간을 옮기고 계절에 걸쳐 노동시간을 조정하는 대책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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