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칼럼]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의 의미와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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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입력 2023-08-31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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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교수]

 
법무부에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것에 대해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한편에서는 묻지마 범죄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적절한 대안이라고 평가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인간의 존엄에 반하는 형벌이라면서 반대하는 것이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 논의는 사형에 대한 대체형벌로서 시작되었다. 1999년 유재건 의원이 대표발의한 ‘사형폐지특별법안’에서는 무기징역으로의 대체를 제안했으나 2001년 정대철 의원이 대표발의한 ‘사형폐지에 관한 특별법안’ 이후로는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종신형)이 대안으로 등장했던 것이다.
그런데 법무부에서는 사형을 존치한 가운데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하겠다고 한다. 기존의 사형폐지를 전제한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과는 맥락이 다를 수 있는 것이다. 과연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사형폐지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사형과는 다른 기능을 하기 때문에 양립될 수 있는 것일까?
 
문제의 핵심은 현재 사형이 20년 넘게 집행되지 않고 있으며, 그로 인하여 국제적으로 대한민국은 실질적인 사형폐지국으로 인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형을 집행하면 대한민국의 인권상황이 크게 후퇴했다는 비난이 국내외적으로 쏟아질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각종 강력범죄 증가에 따라 국민들은 사형폐지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사형집행까지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사형집행이 안 되기 때문에 잔혹한 범죄들이 더욱 많아지고 있으며, 법원에서도 사형을 기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런 잔혹한 범죄자들을 국민 세금으로 평생 먹여 살리는 것이 부당하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하지만 사형이 어느 정도의 범죄예방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정부 입장에서는 사형을 폐지하기도, 집행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아마도 법무부에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의 도입을 추진하는 것도 사형제도를 현재 상태로 존치한 가운데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통해 범죄에 대해 조금 더 강력한 대응을 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사형뿐만 아니라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인간의 존엄에 반하는 형벌이라는 반대도 만만치 않다. 특히 독일에서는 사형제도를 폐지하면서 절대적 종신형(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했지만, 독일연방헌법재판소가 이를 인간의 존엄에 반하는 형벌로서 위헌이라고 결정한 바 있다.
그러나 독일 내에서도 이러한 독일연방헌법재판소 판결에 대해 논란이 있다. 범죄자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선량한 시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점 때문이다. 만일 우리나라도 가석방 없는 종신형도 없는 상태에서 사형을 폐지한다면 어떻게 될까?
희대의 살인마라 하더라도 무기징역 이상이 불가능하고, 무기징역의 경우 20년 복역 이후에 가석방이 가능해진다. 20대 또는 30대의 범죄자가 40대 또는 50대에 출소하여 새로운 범죄를 저지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최근 60대의 살인 전과자가 출소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르고 사형 판결을 받은 예가 있다. 그런데 사형이나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출소 후에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들이 더욱 많아질 것이며, 결국 범죄자의 인권을 보호하느라 선량한 시민들의 인권이 유린되는 것 아닌가?
 
얼마 전에 무기징역 판결을 받고 복역 중이던 재소자가 교도소 내에서 살인을 저지른 일이 있었다. 하급심에서는 사형 판결을 내렸지만, 대법원에서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사형이 집행되지 않기 때문이라 하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결국 무기징역을 받은 재소자는 살인을 해도 여전히 무기징역이라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지만, 이런 위험인물이 가석방을 통해 사회에 복귀할 수 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필요할 수 있다. 일단 무기징역보다는 한 단계 더 강력한 형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대법원에서 원심처럼 사형판결을 내렸다면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설령 사형이 집행되지 않더라도 가석방으로 출소할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사형을 기피하는 대법원의 태도가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의 주된 원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하면 사형폐지론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그동안 사형폐지의 대안으로 주장되던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먼저 제도화되면, 사형폐지의 큰 걸림돌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당장은 각종 강력범죄 때문에 사형집행 여론이 뜨거운 상태이므로 어렵겠지만, 언제 사형폐지론이 다시 부상할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사형폐지가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충분한 공론 과정을 거쳐서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한 이후에 사형의 존치 또는 폐지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도입되었다는 것을 사형폐지의 청신호로 받아들여 졸속으로 처리할까 우려되는 것이다.
 
사형제의 폐지 논란, 그리고 그 대안으로 논의되던 가석방 없는 종신형의 도입 논란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부분은 범죄자의 인권이 아니라 범죄로부터 선량한 국민의 인권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보호할 것인지의 문제이다.
범죄자의 인권은 무시해도 좋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양자가 충돌할 경우에는 범죄자의 인권보다 선량한 국민의 인권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의 하나가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형사법이 만들어지고, 범죄에 대한 형벌이 요구되는 것이다.
사형이나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매우 무거운 형벌이며,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가혹한 형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형벌을 받는 범죄자들은 잔혹하게 타인의 생명을 앗아간 사람들이며, 이들이 사회에 복귀하게 되면 또 다른 시민들이 희생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을 생각할 때, 시민의 안전을 위해 사형이나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필요한 것이다.
사형과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동시에 둘 것인지, 어느 하나만 둘 것인지는 정책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이를 정치권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해서는 안 되며, 국민의 의사를 충분히 수렴하여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비상임위원 △ 경찰청 인권위원회 위원장 △전 국회 개헌특위·정개특위 등 자문위원 △전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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