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철의 100투더퓨처] 고려장이 아니고 '오바스테'이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박상철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입력 2023-08-18 06: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박상철 교수
[박상철 교수]
 

 
한국의 백세인 조사과정에서 발견된 놀라운 변화는 백세인의 독거비율이다. 20년 전에는 10%가 독거노인이었으나 현재는 장수지역인 구곡순담(구례군 곡성군 순창군 담양군) 같은 농촌지역 사회에서도 독거 비율이 25%로 늘었으며 이 비율은 더욱 커져 가고 있다. 초고령자의 경우는 독거생활이 삶의 질을 크게 낮출 것이 분명하다. 그 해법으로 등장한 요양원과 같은 시설은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가족들의 태도이다. 늙은 부모를 요양원에 맡겼다는 것에 자위하고 찾아보지도 않고 잊어버리며 사는 가족이 의외로 점점 많아진다는 담당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씁쓸하기만 하였다. 10년째 면회를 한 번도 안 온 가족도 있고, 연락하면 서로 다른 형제에게 책임을 전가해버리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고 하였다. 그대신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주면 찾아와 장례식은 요란하게 하는 집들을 본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하는 요양원장들의 현장 경험 이야기는 노인부양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백세인 조사과정 중에 남의 집 마당에 컨테이너를 놓고 혼자 살고 있는 98세 독거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스스로 식사를 챙기고 남의 도움을 받지 않으며, 장날이면 혼자 이십리가 넘는 읍에 다닌다고 하였다. 소문에는 할아버지가 일흔여덟에 예순살 된 새 신부를 얻었는데 며칠도 안 되어 헤어지고 여든이 되도록 술집 출입을 하였다고 하였다. 일흔살이 넘은 딸이 한 분 있는데 어쩌다 한번 들를 뿐이라고 하였다. 할아버지는 아흔여덟이라는 나이를 믿을 수 없을 만큼 건장하였다.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니 악취도 심하지만 한여름인데도 히터를 켜서 실내온도가 찜통 같았다. 냉장고와 부엌에는 식기들 어느 것 하나 세척되지 않은 채 지저분한 상태로 쌓여 있었다. 마치 쓰레기장에서 먹고 사는 삶이었다. 백세인 조사 다니면서 별의별 모습들을 볼 수 있었지만 이 경우만큼 처참한 정황은 없었다. 너무도 어이가 없어 수행하던 지역담당자에게 독거노인들에 대한 지역에서의 지원체계가 없냐고 묻자 이 경우는 자식이 있어 행정체계상 지원대상이 아니어서 관심이 없다는 지적이었다. 다른 사람 집 마당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혹시 주인집에서라도 살펴주는 일이 있을까 물었더니 주인 식구들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웃들은 이 할아버지가 건장하여 모든 일을 스스로 잘 처리한다는 핑계로 도움을 회피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시골의 전통적 생활이 상부상조의 삶이었기에 지금껏 만난 수많은 독거노인들의 삶이 가능하다고 여겼는데 왜 이곳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물론 할아버지의 탓도 없지는 않은 듯하였다. 보살피는 자식 하나 제대로 없다는 점은 상당부분 본인의 책임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자식들에게 계속 책임을 미루고 말아야만 할까? 사회복지라는 개념이 명목에 사로잡히지 않고 보다 현실적으로 구체적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할 소지가 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민족 분단의 냉엄한 현장에서 가까운 산속의 별장 집에서 102세 되는 할머니를 찾았다. 공직에서 갓 은퇴하였다는 손자 분이 맞아 주었다. 나름대로 노인문제에 대한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고, 고향에 새로운 개념의 노인복지시설을 건설하고 싶은 꿈을 표현하였다. 새로운 개념이 무엇이냐고 묻자 “노인을 살게만 도와주고 나머지는 알아서 살도록 하여야 해”라고 대답하였다. 기본 취지는 공감이어서 좋은 의견이라고 맞장구쳐주었다. 할머니에게 안내를 부탁하였더니 별장 뒤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가보라고 하였다. 할머니는 지금도 스스로 청소하고 빨래하고, 식사도 하고 목욕도 한다고 부언하였다. 102세 된 할머니의 자립적 생활이 궁금하여 별채를 돌아 찾아갔다. “아!” 우리 일행은 모두 충격을 받았다. 늙은 할머니가 기어서 나오는데 옷은 남루하기 그지없었고, 얼굴에는 핏기조차 없었지만 눈빛은 형형하였다. 몸에 묻은 때며, 냄새가 풍기는 옷을 보고 조사에 앞서서 우선 목욕이라도 시켜드리자고 서둘렀다. 마치고 나오면서 문간에 기다리고 있는 손자에게 노인을 어떻게 모시느냐고 다시 물었다. 할머니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할머니 때문에 가족들이 많이 희생 되었다는 둥, 시집간 딸만 생각하고 다른 가족은 무시한다는 둥, 그래서 지금은 보름에 한번 정도 반찬만 가져다 주고 만다는 둥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하였다. 면담하면서 열어 보았던 냉장고에는 아무런 반찬도 남아있지 않았고, 갈아입을 옷 한 벌 걸려 있지 않았다. 할머니에게 물었다. “다른 가족들은 안 오나요?” “불러도 아무도 안 와” 그러면서 면담하고 있는 조사단의 젊은 여성팀원의 손을 꼭 붙잡았다. “정말 색시 손이 따뜻해”. 한여름인데도 사람의 손에서 따뜻함을 느껴야 하는 할머니의 가련한 모습을 보면서 가족이 돌보지 않으면 노인의 모습은 저리 될 수밖에 없구나 라고 탄식하면서 산을 내려왔다.
 
늙은 부모를 산속에 버렸다는 풍속이 우리나라에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고려장’이라는 단어가 처음 언급된 책은 우리나라를 한번도 찾은 적이 없는 미국 선교사 그리피스가 일본인이 한 이야기를 듣고 1882년에 쓴 책 <은둔의 나라 한국>에 처음 등장한다. 이어 고려장 이야기는 일본인 미와타바키가 1919년에 쓴 <전설의 조선>에 언급된 이래 마치 한국의 전통인 양 오도되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일본에는 늙은 부모를 버리는 ‘오바스테(姨捨, おばすて)’라는 풍속이 있었다. 나가노 지역의 장수조사를 갔을 때 명칭 자체가 늙은 어머니를 버리는 산이라는 오바스테야마 (姨捨山)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라야마 부시코(楢山節考)라는 영화에서 감독 이마무라 쇼헤이는 칠십이 넘은 가족을 산에 버리는 처절한 풍습을 실감나게 재현하였다. 그런데 이런 오바스테가 마치 우리의 전통인 양 고려장이라는 이름으로 근자에 새롭게 부각되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장사익의 '꽃구경'이라는 노래 구절이 귀에 거슬렸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혀서 꽃구경 가요 --- 한움큼씩 한 움큼씩 솔잎을 따서 가는 길 뒤에다 뿌리며 가네.--- 내 아들아 너 혼자 내려갈 일 걱정이구나 ---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버려질 줄 알면서도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표현하긴 하였지만 우리 전통사회에 이러한 풍습은 없었다. 고려장이라는 용어를 버려야 할 때이다.
 
 

필자 박상철 주요 이력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국제백신연구소한국후원회 회장 ▷전남대 연구석좌교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