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구 칼럼] 단단해진 한·미·일 3각 체제 …지금이 남북관계 재설정 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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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입력 2023-07-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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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구 교수]



필자는 지방 현립대학에 근무하는 지인 교수 초청으로 6월 초에 히로시마시와 시마네현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오후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이곳에서 지난 5월 한·일 양국 정상이 최초로 한국인 원폭 희생자위령비를 참배했다는 사실이나 그 의미를 설명하는 안내판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위령비 앞에서 7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자원봉사자들이 수학여행을 온 중·고등학생들을 상대로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의 위력과 참상을 사진과 지도 등 자료를 가지고 설명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도 몇 번 목격했던 모습이라 놀라지는 않았지만 위령비 하단의 거북 머리가 한반도를 향하고 있는 것은 죽어서라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피해자들의 염원을 담고 있다는 설명을 듣고는 눈물이 핑 돌았다.
 
다음 날 지인 교수가 맡고 있던 학부 세미나 수업을 참관했는데 발표 주제는 강제동원 문제였다. 특히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한국 정부가 발표한 ‘제3자 변제’ 해결 방안이 일본에 대한 지나친 양보라는 의견도 한국 내에 있다면서 한국 정부 측 해결 방안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가, 나아가 이 해결 방안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는가 하는 핵심 문제를 둘러싸고 토론하는 모습을 보고는 솔직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연구회 보고와 특강, 다케시마(독도를 일본에서 부르는 말) 자료실 방문 등 짧은 기간 동안 만난 사람은 적었으나 무엇보다 필자를 당혹스럽게 한 것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윤석열 정부의 외교적 노력은 평가하지만 한국 국민 10명 가운데 6명이 ‘일본에 대한 지나친 양보’라는 비판적 목소리가 있음에도 이렇게까지 해서 한국 정부가 한·일 관계를 개선하려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였다. 이 물음에 대해서는 6월 7일 대통령실이 공개한 <윤석열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이하 문서)이 답변의 실마리를 제공해줄 것이다.
 
문서는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고 있는 북한을 ‘최우선적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독자적 대응 역량의 획기적 보강’과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는 점에서 과거 정부의 국가안보전략과 크게 다르다.
 
특히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와 연대하기 위한 ‘협력 외교’를 다룬 3장에서는 역내 평화와 번영의 핵심 축인 한·미 동맹의 절(節)에 이어 ‘새로운 수준의 한·미·일 협력 제고’라는 절이 신설되었다. 또한 박근혜 정부 이후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순이었던 주변국과의 협력 외교 언급 국가 순서도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순으로 바꿨으며 ‘한·중·일’ 정상회의 명칭도 ‘한·일·중’ 정상회의로 중국보다 일본을 먼저 언급했다.
 
나아가 일본의 역사 문제나 독도에 대해 단호히 ‘대처’(박근혜 정부) ‘대응’(문재인 정부)하겠다는 표현은 삭제되고 중국과 관련해서는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노무현 정부)나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이명박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까지)라는 수식어도 빠졌다. 문서는 다양한 수준에서 중국과 교류·소통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도 “국제질서 변화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국이 해양안보전략을 방어 위주에서 ‘공세적인 방향’으로 조정하고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와 전략적으로 연대하여 미국과 서방에 맞서고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서술 분량을 봐도 일본은 3쪽에 달했지만 중국은 1쪽에 그쳤을 뿐만 아니라 우리 주권과 권익에 대해서는 ‘국익과 원칙에 기반하여’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2022년 12월 말에 발간한 <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중요하며, 인·태 지역 안보와 번영에 긴요함을 재확인”했던 것과 달리 이 문서에는 중국이 핵심 이익으로 간주하고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대만(해협) 문제에 관한 언급이 없다. 그렇지만 역대 어느 정권보다 일본과 중국에 대한 시각에서는 확연한 차이가 드러났다.
 
하지만 이러한 점들보다 더 따져봐야 할 것은 독자적인 국방 역량의 획기적 강화와 우방·동맹국과의 긴밀한 연대가 한반도에서 지속 가능한 평화를 창출할 수 있는가이다. 현 정부는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윤 대통령이 밝힌 ‘담대한 구상’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의 지속 가능한 평화와 번영을 구현할 수 있는 포괄적인 실천 방안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북한의 태도 변화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핵 위협은 억제(Deterrence)하고, 핵 개발은 단념(Dissuasion)시키며, 대화(Dialogue)를 통해 비핵화를 추진하겠다는 소위 3D 가운데 대화는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20일 일본경제신문 인터뷰에서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북한과 대화를 하기 위한 직접 교섭 루트를 복수로 확보하고 있다”면서 미국 정부 입장을 확실하게 전하고 있으며 북한 비핵화를 위해서는 중국과도 연계하겠다는 의향도 밝혔다.
 
지난 5월 27일 모든 납치 피해자에 대한 즉시 일괄 귀국을 요구하는 국민대집회에 참석한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고 아베 신조 총리 이후 반복해온 ‘조건 없는’ 북·일 정상회담 조기 실현을 위해 새롭게 ‘총리 직속의 고위급 협의’ 의사를 표명했다. 이틀 뒤인 29일 박상길 북한 외무성 부상은 “서로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담화를 발표했지만 북·일 정부 간 대화를 위해서는 “일본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변화된 국제적 흐름과 시대에 걸맞게” “대국적 자세에서 새로운 결단을 내리고” “말이 아니라 실천 행동으로 문제 해결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어려운 조건을 달았다.
 
일본과 국교 정상화를 통해 과거 식민지 지배로 인한 피해보상(경제협력)을 얻으려는 것이 북한 측 의도라고 할 수 있지만 북·일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납치와 핵·미사일 문제에 대한 포괄적 해결이 필요하다. 일본의 최대 관심사인 납치 문제를 둘러싸고도 이미 해결되었다고 주장하는 북한과는 입장 차가 명확하다. 다만 기시다 총리가 북·일 관계 개선이 북·일 양국 국익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크게 기여”하고 “현재 상황이 길어질수록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려고 해도 실현이 어렵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대담하게 현상(現狀)을 바꿔 가야 한다”는 발언은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대화 제의에 북한은 순순히 응하지 않을 것이지만 북한의 진의를 파악하고 우리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도 대화는 필요하다. 과거 어느 때보다 한·미·일 협력 체제가 공고한 지금이야말로 한국 정부가 남북 관계를 정상화하고 지속 가능한 평화 구축을 위해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적기(適期)다.



조진구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도쿄대 법학박사(국제정치전공)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일본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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