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보험사 구상권보다 피해자 직접 청구권 우선"…'피해자 우선 원칙' 첫 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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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가언 기자
입력 2023-05-2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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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가해자의 책임보험 한도가 적어 사고 시 모든 손해를 보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의 직접청구권과 화재보험사의 구상권이 경합한 경우, 피해자의 보험금 청구권이 보험사 구상권보다 먼저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화재 보험사인 한화손해보험이 화재 가해 기업 측이 계약을 맺은 책임보험사 삼성화재해상보험과 DB손해보험을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2018년 4월13일 인천의 한 화학물질 처리 공장에서 화재 사고가 발생하면서 같은 공단에 입주한 회사들도 피해를 입었다. 당시 피해 규모는 약 23억원으로 추산됐다. 공장을 운영하던 A사는 화재 사고를 대비해 삼성화재·DB손보와 제3자에게 손해를 배상하는 보상한도 3억원의 화재대물배상 책임보험계약을 맺었다. 피해 규모에 비해서는 턱 없이 모자른 액수였다.

피해 업체들의 보험사였던 한화손보는 피해 업체들에게 1억3000만원을 우선 지급하고 삼성화재·DB손보를 상대로 구상금을 청구했다. 그런데 삼성화재와 DB손보도 화재의 다른 피해 업체들과 별도 손해보험 계약을 맺고 있었고 이에 따라 삼성화재는 16억원을, DB손보는 3억원을 이미 지급한 상황이었다.

이에 삼성화재와 DB손보는 '채권과 채무가 동일인에 속할 경우 소멸한다'는 민법 규정을 근거로 보험금이 소진됐다고 주장했다. A사와 피해 업체 모두와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피해 업체에 준 3억원 이상의 보험금만큼 A사 측에 구상금을 청구할 채권을 보유하게 됐고, 이에 채권과 채무가 상쇄됐다는 것이다. 

1·2심은 한화 손보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삼성화재·DB손보가 화재의 다른 피해자들에게 보험금을 지급해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채권을 대위 취득했더라도 한화 손보에 대한 책임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소멸됐다고 볼 수 없다"며 1억3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이 '피해자가 직접 배상을 청구하는 경우'를 먼저 살폈어야 했다고 봤다. 피해 전부를 보전받기 어려운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직접 책임보험금을 받을 권리를 먼저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보험사가 대신해서 배상을 청구하는 경우 직접청구권을 행사하는 다른 피해자들보다 우선해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없다"며 "피해자들에 대한 보험금 지급이 이루어진 다음 책임보험 한도에 남은 금액이 있다면 지급받을 수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다만 어느 피해자도 직접 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은 경우 삼성화재와 DB손보의 채무가 소멸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따라서 직접 청구권을 행사한 피해 업체들의 손해액과 한화손보·삼성화재·DB손보의 청구권 범위를 먼저 심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책임보험 한도액이 다수 피해자의 손해 합계액에 미치지 못해 피해자의 직접청구권과 보험사의 청구권이 경합하는 경우 원칙적으로 피해자의 직접청구권이 우선한다는 점을 최초로 명시적으로 설시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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