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우크라이나전과 미국의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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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입력 2023-02-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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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벌써 1년이 흘렀다. 작년 2월 말 이 전쟁이 터졌을 때 전문가들은 단기전으로 끝날 것으로 예상하였다. 러시아는 세계 2위 군사강국이고 2014년 크림반도를 점령할 때도 한 달도 채 안 걸려 군사작전을 종료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쟁 양상이 다르게 진행되어 벌써 1년을 넘기고 있고 더 장기화 될 수 있다는 비관적 예측도 나온다.
 
이 전쟁으로 인한 피해도 천문학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이미 우크라이나 국토는 심각하게 유린되었고 세계경제에도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양측의 인명 손실만 20만명을 넘어섰고 민간인들만 7000명 이상 사망하였다. 전쟁으로 인해 폭등한 곡물, 사료와 에너지 가격으로 온 세계가 심한 물가고에 시달리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약 3억5000만명이 기아에 내몰린다는 보고가 있다. 그리고 OECD는 이 전쟁으로 인한 전 세계적 경제 손실액이 3550조원이라는 추계를 내놓았다. 그런데도 우크라이나는 2014년 상실한 영토까지 회복하는 것을 전쟁목표로 삼고 있고 러시아로서도 점령한 영토를 내놓을 수 없는 처지여서 타협을 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도 계속되고 있어 협상을 통해 종전 하는 것이 현실적이지만 전쟁의 비극은 계속될 것 같다.
 
그런데 이 전쟁은 외교적 협상을 통해 회피할 수 있는 성격이었는데 2021년 연말 몇 차례에 걸친 미·러 간의 고위급 회의에서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서 결국 포성이 울렸다. 러시아는 2008년부터 NATO의 동진이 계속된다면 러시아는 이를 무력으로 제지할 것임을 여러 번 천명하였다. 그런데도 우크라이나는 자국 안보를 위해 NATO 가입을 희망했고 미국은 러시아의 항의를 무시하고 이를 용인할 듯한 모습을 보였다. 주변 강대국들이 합의하여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다른 방식으로 보장해 줄 수 있었다면 전쟁은 피할 수 있었는데 이런 노력을 하지 않고 전쟁으로 빠져드는 우를 다 같이 범했다. 푸틴도 미국의 의도를 잘못 읽고 전면전을 벌이는 과욕을 부렸다.
 
미국은 어떤 면에서 이 전쟁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모습도 보였다. 전운이 감돌자 독일, 프랑스 등은 외교적 타협을 선호하였으나 미국은 독일과 러시아를 잇는 가스관 가동을 중단시키겠다는 엄포까지 놓으면서 러시아와 대결을 기정사실화 했다. 깊은 바닷속 그 가스관은 석달 전 누군가에 의해 폭파되었고 그 배후에 미해군이 있다는 탐사보도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미국이 왜 전쟁 발발을 막지 않고 오히려 기대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는지를 알려면 미국 외교·안보 엘리트 집단의 사고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의 외교·안보 엘리트들은 종종 회전의자 전사(armchair warrior)라고 불리기도 하고 미 자유주의 패권(liberal hegemony)의 신봉자로 불리기도 한다. 이들은 미국의 민주, 공화 양 정치 진영에 고루 분포되어 있으며 이들은 다소의 편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외정책에서는 컨센서스를 형성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들이 신봉하는 외교정책 기조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은 전 세계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확산시키는 명백한 운명(manifested destiny)을 타고난 나라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민주국가를 건설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20년간 엄청난 인명과 물적 손실을 겪은 후 미국은 이들 나라에서 철수하였고 이 나라들은 여전히 혼돈 속에 빠져 있다. 미국은 과거 소련의 위성국이었던 나라들에도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기 위해 각종 색깔 혁명을 지원하고 NATO의 동진을 밀어붙였다. 이런 미국의 가치지향 외교와 러시아의 지정학적 이익이 충돌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전략가 조지 케넌은 98년 NATO 확장이 처음 시작될 때 ‘그 결정은 비극적 실수이고 신냉전의 시작’이라고 이미 예언하였다.
 
둘째 이 집단은 러시아를 2류 국가로 전락시켜 미국이 중국과의 경쟁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 전쟁을 통하여 안보에 해이한 EU국가들에 경각심을 부여하여 국제정치판을 자유진영과 권위주의 진영간 대결 구도로 만들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러시아가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승리하면 주변국 영토를 계속 침공할 것이라는 주장을 편다. 일종의 냉전시대 도미노 이론을 다시 꺼내 든 것이다. 베트남 전쟁 때도 도미노 이론 때문에 미국이 개입했지만 이후 인도차이나 반도가 공산화되지 않았고 결국 미국만 엄청난 전비를 쏟아붓고 불명예스러운 철군을 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이 도미노 이론을 앞세우는데 과거 소련에 비해 현저히 국가위력이 약화된 러시아가 유럽에서 이를 감행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게다가 미국이 러시아와 진영대결 구도를 만들겠다는 구상은 아직은 유효하지만 독일, 프랑스와 일부 EU 국가들로부터 확고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에 대한 진영대결 구도 형성은 더 힘들어 보인다. 그리고 미국의 견제로 망신을 당한 러시아는 중국의 보조 협력국이 되어 중국이 미국과 대결하는 데 힘을 보태줄 것이므로 장기적으로는 미국 국익에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 중국이 표면적으로 러시아를 지지하지는 못하지만 국제 대리전이 된 우크라이나전에서 러시아를 물밑으로 지원한다는 것이 이미 알려진 비밀이다.
 
셋째 이들은 미국에 적대적인 국가들에 대해서는 제재부과를 통해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경제적 제재를 가해 러시아 경제를 무너뜨릴 수 있고 심지어 푸틴의 몰락이나 러시아의 붕괴가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적 사고까지 내비치고 있다.
 
러시아를 경제제재를 통해 약화시킨다는 전략은 중국, 인도, 튀르키예, 이란 등이 러시아산 에너지와 광물들을 할인된 가격으로 매입함으로써 실질적인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다. IMF는 세계경제전망에서 러시아가 지난해 마이너스 성장이었지만 올해는 플러스 성장으로 반전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리고 이 경제제재는 오히려 유라시아대륙에서 권위주의 국가 간의 경제통합을 가속화시키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의 붕괴는 핵유출 등 국제질서에 큰 후폭풍을 불러올 것이다.
 
위에서 본 것처럼 우크라이나전 관련, 자유주의 패권론의 기본전제가 현실에서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점을 우리는 유의해야 한다. 더욱이 이 집단의 이러한 집단사고는 과거에 정책적으로 성공한 적이 드물다는 것은 베트남전, 테러와 전쟁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들 주도하에 미국이 직접 개입하거나 제재를 가하면서 자신들의 세계관에 맞지 않는 나라들의 정권교체를 시도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미국 내에서도 스티븐 월트와 같은 현실주의 학자들은 <선의의 지옥(The Hell of Good Intention)>이라는 책에서 자유주의 패권론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 이래 계속 실패해온 이상에 입각한 국가전략을 진작 바꾸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미국이 민주주의 확산이란 이상적 가치에 매달리기보다는 중국의 도전에 맞서기 위해 미국의 국력과 동맹국을 결집할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이 안정적 국제질서는 물론 미국 안보를 위해서도 맞는 처방이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특임대사 △주호주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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