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금융시장 불안과 정책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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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근미 기자
입력 2023-02-2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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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철 한국은행 금융시장국 공개시장부장[사진=한국은행]

2022년 가을 한국 경제는 예상하지 못한 금융시장 불안을 경험했다. 9월말경 환율이 1440원까지 상승하고 코스피가 2155까지 낮아졌다. 대표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채 금리가 연초 2% 수준에서 10월 중순에는 6%에 육박하였다. 증권사, 캐피털사 등 비은행금융기관의 어려운 사정은 더욱 심각했다. 특히 증권사가 보증한 3개월 만기 PF-ABCP 발행금리가 한때 9%대까지 치솟았고 일부 건설사가 보증한 PF-ABCP는 10%가 훌쩍 넘은 수준에서 거래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금융시장에 이러한 어려움이 발생한 원인은 무엇일까?

지난해 금융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을 꼽자면 가파른 인플레이션 상승에 대응한 전 세계 중앙은행의 빠른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특히 미 연준은 미국 물가가 40여 년 만에 가장 높게 상승하자 1980년대 초반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금리를 인상했다. 통상 상승폭인 0.25% 포인트를 뛰어넘어 한 번에 0.75% 포인트인 자이언트 스텝 인상을 4회나 포함하면서 미 연준은 긴축을 반년 이상 앞서 시작하였던 우리나라보다 높은 4.50~4.75%까지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이러한 긴박한 긴축 과정에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투자심리는 크게 위축되었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 국가의 금융시장에서 가격변수의 변동성이 한층 높아졌다. 한국 금융시장에서는 이에 더해 대규모 적자를 겪은 한국전력이 채권 발행량을 크게 늘려 채권시장 자금을 흡수했다. 한국전력공사채 발행 규모가 2019~21년 중 연평균 7조원에서 지난해에는 5배에 가까운 32조원 수준으로 크게 증가했다. 일반 기업들은 높아진 원자재 가격 등으로 운전자본 수요가 커지면서 은행대출 규모를 크게 늘렸다. 은행들은 대출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사상 최대 수준의 은행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확보했다. 한국전력, 은행 등 신용도가 높은 기관의 채권발행량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이보다 열위에 있는 일반 기업, 카드·캐피털업체 등은 자금조달을 위해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할 수밖에 없었다. AAA 등급 최우량 3년물 회사채는 지난해 8월말 국고채보다 0.82% 포인트 높은 수준에서 발행될 수 있었다. 회사채 시장의 위축 정도를 측정하는 대표적인 지표 중 하나인 회사채 신용스프레드(회사채 금리 – 국고채 금리)의 경우, AAA 등급 스프레드가 11월말에는 1.62% 포인트로 두 배까지 높아졌다. 캐피털사 발행 채권 3년물 스프레드 역시 12월 중순 2.55%를 기록하면서 8월말(1.43%)에 비해 거의 두 배 가까이 상승하였다.

이렇게 금리가 높아지고 투자심리가 위축된 가운데 9월말 발생한 레고랜드 사태는 부동산PF와 관련된 단기시장을 중심으로 시장의 불안심리를 확산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특히나 부동산 활황 속에서 급속히 늘어난 증권사 보증 부동산 PF-ABCP는 만기가 짧아 수시로 차환 발행이 필요해 그 어려움은 한층 더 높았다. 신용경계감 강화 영향이 확대되면서 공공기관, 은행 등의 자금조달 금리도 상승하는 한편 일부는 자금조달에 실패하기에 이르렀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금융시장 불안에 대응하여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시장안정대책을 신속하게 발표하고 집행에 나섰다. 먼저 그간 위기 때마다 시장 유동성 공급을 통해 소방수 역할을 해온 채권시장안정펀드를 즉시 가동했다. 정책금융기관의 회사채, CP 매입을 확대하는 노력도 기울였다. 한국은행도 한국은행과 금융기관 간 거래에서 사용할 수 있는 채권의 범위를 기존 국채, 통안증권 등에 은행채, 9개 공공기관 발행채권을 추가했다. 이 조치로 은행 등은 한국은행에 은행채 등을 담보로 제공하고 시장성이 높은 국채, 통안증권들을 확보하여 유동성 규제비율 제고 등에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번 위기는 연말과 겹쳤는데 통상 연말에는 단기금융시장 상황이 금융기관, 기업 등의 제반 규제 비율 맞추기 노력 등으로 어려워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를 감안하여 한국은행은 연말을 넘어가는 단기 자금을 적극적으로 공급함으로써 금융기관의 애로를 덜어주었다. 아울러 정부와 한국은행 및 금융기관은 수시로 만나 정보를 교환하고 금융시장의 위험요인을 점검했다. 이렇듯 적극적 대응에 힘입어 금융시장은 과거 위기 때보다 상대적으로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다. 과거 위기발생 사례를 보면 신용채권시장 스프레드는 위기 발생 이후 대체로 2~3개월 이후 축소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레고랜드 사태 이후 약 1개월반 만에 회복세로 전환되었으며, 최근 신용스프레드는 레고랜드 사태가 발생한 9월말 수준을 하회하는 상황이다.

현재 국내 금융시장은 경색국면에서 벗어나 우량물을 시작으로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대내외 불확실성 요인들이 산재한 만큼 회복세가 지속될 수 있는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속도가 더 가팔라질 가능성은 크지 않겠지만 높은 수준이 얼마나 유지될지 등에 대한 불확실성은 여전히 높다. 또한 국내 사정도 경기둔화, 부동산시장 불안 등으로 한 치 앞을 전망하기 어렵다. 지난 가을 정부와 한국은행의 신속한 금융안정 대책이 효과를 얻은 것은 면밀한 시장동향 분석, 적극적 정책대응, 시장참가자 및 관계당국의 유기적 협조에 힘입은 바가 크다. 금년도 쉽지 않은 해가 될 것이므로 한국은행과 정부는 지난해 경험을 충분히 살리는 한편 필요시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금융안정화 조치를 실시해야 할 것이다. 금융기관, 기업 등 민간부문도 유동성 대응능력 확충과 함께 재무구조 개선 등 자구 노력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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