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상승률 40년 만에 최고...日기업 "임금 인상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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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진 기자
입력 2023-01-18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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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금 상승 거의 없는 일본서 이례적 큰 폭 인상

  • 인상 폭 크지만 물가 상승률 높아 실질 임금은 오히려 하락

  • BOJ 통화정책 전환 여부 고심

유니클로 [사진=연합뉴스]

일본의 임금 문제가 다시 한번 화두에 올랐다. 이번에는 임금 인상을 말하는 주체가 다르다. 노동계가 아니라 기업들이 임금 인상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물가가 급등하고 실질임금이 하락하자 기업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지속 가능성이다. 일본은행(BOJ)은 여전히 저금리 정책을 고수하고 있어 임금 인상이 이뤄지더라도 미봉책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경기 활성화와 물가 안정화 사이에서 BOJ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 임금 상승 찾기 힘든 일본서 기업들이 줄지어 인상 발표

일본 기업들이 줄지어 직원 임금 인상을 발표하고 있다. 일본은 임금 상승 그 자체가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십년 만에 나타나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유니클로의 모회사 패스트 리테일링은 가장 파격적인 임금 인상을 발표했다. 점장은 물론 일반 매장 직원을 포함해 40% 임금 인상을 단행키로 했다. 이에 따라 대졸 신입사원의 월급은 25만5000엔(약 245만원)에서 30만엔(약 288만원)으로, 신입점장 월급은 29만엔(약 280만원)에서 39만엔(약 390만원)으로 상승했다. 

패스트 리테일링의 일반 직원의 전면적인 임금 인상은 2000년 이후 20년 만에 처음일 정도로 파격적인 일이다. 패스트 리테일링의 오카자키 다케시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변화의 핵심은 직원들이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양질의 업무를 하도록 장려하는 것"이라며 "세계적 수준의 일을 요구하고 싶다면 그에 걸맞는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임금 인상의 취지를 밝혔다. 

패스트 리테일링뿐 아니라 다른 기업들도 속속 임금 인상을 선언하고 나섰다. 주류 회사 산토리 홀딩스는 기본급의 6% 인상, 로토 제약은 연봉의 7% 인상 계획을 밝혔다. 그 외에도 닛폰생명보험, 아사이 그룹, 기린 홀딩스, 삿포로 홀딩스 등도 임금 인상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전반의 임금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NLI 연구소의 타로 사이토 선임 연구원은 파이낸셜 타임스(FT)에 "기업의 영업이익이 이례적으로 높아 다른 기업들도 임금을 인상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산업계 전반의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는 모멘텀이 되는 것이다. 일본경제연구센터(JERC)는 일본 대기업들이 4월부터 시작되는 회계연도에 평균 2.85%의 급여 인상을 제안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명목상으로는 1997년 이후 26년 만에 최대 폭 상승이라고 할 수 있다. 

◆ 무섭게 오르는 물가, 실질임금 급격히 하락

일본 기업의 과감한 임금 인상 결정은 무서운 수준의 물가 상승이 작용한 결과다. 일본의 물가상승률은 미국이나 유럽 등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지만 임금 상승이 거의 없는 특성상 조금만 올라도 치명적이다. 곧바로 실질임금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일본 기업은 임금을 올려 노동력의 이탈을 막고 내수 활성화까지 기대하고 있다. 

일본의 물가 상승률은 연일 최대폭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10일 일본 총무성은 지난해 12월 신선식품 제외 도쿄 소비자물가지수(CPI)가 103.9로 지난해 동기 대비 4.0% 상승했다고 전했다. 이는 1982년 4월(4.2%) 이후 40년 8개월 만에 최대 오름폭으로 시장 전망치(3.8%)보다 높은 수치다. 

도쿄 CPI는 전국 CPI의 선행지수로 여겨진다. 40년 9개월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한 지난 11월 전국 CPI 기록(3.7%)이 다시 깨질 것이라는 긴장감이 감도는 이유다. 

물가 상승은 실질임금의 하락으로 나타났다. 임금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한 것이 그대로 반영됐다. 지난해 기준 일본의 평균 실질임금은 G7 국가 중 가장 낮았다. 나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도 낮았다. 일본의 평균 실질임금(연 기준)은 3만9700달러(약 4900만원)인 반면 OECD의 평균 실질임금은 5만1600달러(약 6408만원)를 기록해 대비를 이뤘다. 

추세를 보면 실질임금의 하락세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일본 노동청에 따르면 2021년 12월부터 실질임금 증가율은 -1.3%를 기록한 이후 계속 하락했다. 지난해 3월 일시적으로 0.6%로 올랐지만 하락세를 이어가 지난해 11월에는 -3.8%나 떨어졌다. 실질임금의 하락세가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치계는 실질임금 하락 문제로 인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지난 4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임금 상승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꼽으면서 물가 상승률을 웃도는 5% 수준의 임금 인상을 기업에 요청했다. 일본노총도 지난해 대비 5% 인상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을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JCER가 집계한 예상 임금 상승률은 2.85%였다. 이 경우, 물가 상승률이 도쿄 CPI와 같은 4%라고 가정하더라도 실질임금은 여전히 마이너스에 해당한다.

산업계도 실질임금의 하락으로 시름에 잠겼다. 일본 연구소 부회장 야마다 히사시는 기업들이 G7 국가 중 낮은 임금을 근거로 글로벌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야마다 부회장은 "일손 부족이 심화되면서 경영진 사이에서는 위기감이 퍼지고 있다"고 했다. 

소비 위축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소비가 줄면 내수 시장 위주의 유통업계 등은 경기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타개책으로 기업의 임금 인상안에 힘이 실린다. 과거 근로자의 임금을 높여 자동차 구매를 늘린 포드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역시도 무작정 신뢰하기는 어렵다. 임금 상승이 소비 증대의 선순환 구조를 이룬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의 신가 요시타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물가 동향을 근거로 인플레이션 수당을 늘리는 모습은 소비 확대에 일정 부분은 기여한다"면서도 "이런 움직임은 지켜봐야 할 것이다"라고 신중한 자세를 나타냈다. 아시아 분석가 트레비스 런디도 "일본 소비자들이 소비 모드에 들어갔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전했다. 

◆ 진퇴양난, 복잡한 속내의 BOJ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사진=로이터·연합뉴스]

BOJ의 속내만 복잡해졌다. 실질임금의 추가하락을 막기 위해서는 금리를 올려 물가를 안정화시켜야 한다. 하지만 금리를 올리면 일본 정부의 부채 부담이 커지고 기업 활동에 제약이 될 가능성이 커 딜레마에 빠졌다. 

일본은 한국처럼 원자재 수입 비중이 큰 나라이기에 환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현재 일본의 기준금리는 -0.1%로 BOJ는 여전히 초완화적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최근 수익률 곡선통제(YCC)를 통해 10년물 국채 금리 상한을 0.5%로 상향 조정한 게 전부다. 

지난해 원자재 가격이 급상승할 때마다 일본 경기는 크게 휘청거렸다. 물가가 가파르게 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원자재 등 수입해오는 물건 가격이 오르니 생활 물가가 폭등한 것이다. 

그렇다고 금리를 크게 올릴 수도 없다. 금리를 올리는 순간 정부 부채의 부담 증가와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 2020년 기준 일본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250%로 OECD 회원국 중에 가장 높다. 동시에 디플레이션 우려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BOJ가 초완화적 통화정책을 고수한 것은 소비가 적은 일본 사회에서 2% 내외 인플레이션을 달성하려는 목표 때문이었다. 기준금리를 크게 인상하면 경제가 둔화되고 2% 내외 인플레이션 달성이 어려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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