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덤펍의 두 얼굴上] "한번 빠지면 못 빠져나와"…수백만원 도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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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지 기자 송하준·김서현·김세은 수습기자
입력 2022-11-2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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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촬영 금지"...복마전으로 얼룩진 홀덤테이블

  • 대화 없이 베팅 열중...250만원 판돈 걸린 도박도

[편집자 주] 텍사스홀덤은 2028 LA 올림픽 시범종목으로 고려될 만큼 국제적인 스포츠 종목으로 인정받는 추세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홀덤은 단체로 즐기는 게임 문화라는 평과 중독성 강한 도박이라는 우려가 상존한다. 칩을 돈으로 환전하는 등 홀덤이 사실상 불법 도박으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모호해 규제 사각지대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 차례에 걸쳐 불법 홀덤펍 실태를 짚어보고 대안을 모색해본다.

◆ '홀덤펍의 두 얼굴' 글 싣는 순서
① "한번 빠지면 못 빠져나와"…'사행성 홀덤펍' 현장
② "시드권 판매합니다"...유행처럼 번지는 'SNS 밀거래'
③ '불법과 합법 사이' 길 위의 카지노...관리·감독기관 전무
 

지난 14일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한 홀덤펍 테이블에 칩들이 쌓여있다. [사진=김서현 수습기자 hyeoni1@ajunews.com]


"처음이에요? 이걸 왜 시작하셨대. 이러다가 저처럼 중독되는 거예요. 못 빠져나와요."

지난 15일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밤. 서울 광진구 한 홀덤펍에서 만난 플레이어가 건넨 첫마디다. "와 미치겠다" "패를 읽을 수가 없네" 혼잣말을 반복하던 그는 초점을 잃은 듯한 공허한 눈빛을 하고 손에서 칩을 놓지 않았다.

술을 마시면서 포커 등 카드 게임을 즐기는 형태의 주점인 홀덤펍은 최근 전국적으로 우후죽순 생겨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본지 취재팀이 찾은 홀덤펍​은 후미진 골목에 위치해 저녁 8시가 다 돼서야 가게 계단을 오를 수 있었다. 오픈채팅방을 통해 예약제로만 운영되는 이 홀덤펍은 무작정 방문해서는 입장이 불가능하다.

내부에 들어가보니 한쪽엔 술집처럼 바가 설치돼 있고 다른 한쪽엔 카드 게임을 할 수 있는 홀덤 테이블이 여럿 마련돼 있었다. 힙합 재킷을 입은 손님이 있는가 하면, 정장에 넥타이를 맨 회사원도 있었다. 음료는 무료로 제공됐지만, 수십명의 손님 중 바에 앉아 술을 마시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테이블마다 '딸그락' 거리는 칩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종종 전화벨 소리도 울렸다. "레드님 19시반 예약 맞으시죠? 바이인(buy-in·게임 참가비)은 10만원입니다. 리엔트리(reentry·재참가 비용)는 1만원 할인한 9만원이고요." 종업원은 수화기 너머로 닉네임을 정해줬다.
 
"사진 찍으면 안 돼요"...복마전으로 얼룩진 홀덤 테이블
벽면에는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는 안내문이 벽면 곳곳에 붙어 있었다. 또 '6억4000만 GTD(상금)', '8억600만 GTD' 등 굵은 글씨로 표시된 토너먼트 포스터들도 양쪽 벽면에 부착돼 있었다. 홀덤펍 중앙 전면에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돼 있는데, 화면에는 베팅 라운드와 라운드의 남은 시간이 적혀있었다.

전체 20라운드 중 라운드가 바뀔 때마다 화면이 전환되며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앤티(ante·판돈)를 올려야 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10라운드 종료. 앤티 인상합니다. 스몰 블라인드(small blind·작은 금액 베팅 시작 가격) 1000원, 빅 블라인드(big blind·큰 금액 베팅 시작 가격) 2000원."

종업원은 바이인을 받으면 10만원 상당의 칩을 플레이어에게 제공한 뒤 손가락으로 앉을 자리를 가리킨다. 칩은 빨간색(500원), 초록색(1000원), 분홍색(5000원), 노란색(2만5000원), 주황색(10만원) 등 색깔별로 주어졌다.

플레이어들은 8~10명씩 테이블에 빽빽하게 둘러앉아 형형색색의 칩들을 현란한 손동작으로 주고받았다. 참여자가 획득한 칩 개수를 현금으로 환전할 경우 도박으로 간주돼 불법성이 짙어진다. 그러나 너나 할 것 없이 눈에 불을 켜고 칩을 획득하는데 혈안이 돼 있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딜러는 플레이어들이 홀덤 테이블 중앙으로 칩을 던질 때마다 특정 단어들을 반복적으로 읊었다. 딜러는 △콜(Call·앞 플레이어와 같은 양 베팅) △레이즈(Raise·앞 플레이어보다 더 베팅) △폴드(Fold·베팅 포기) △체크(Check·판돈 추가 없이 차례를 넘기는 신호) △올 인(All in·보유한 모든 칩 모두 베팅) 등이다. 칩을 한 번 따고 잃는 데 걸린 시간은 채 5분도 되지 않았다.
 
밤 깊어갈수록 침묵은 균열로…250만원 상당 도박도
밤이 깊어지고 분위기가 고조될수록 침묵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칩을 잃어 게임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가게를 떠나지 못하면서다. 한 청재킷을 입은 남성은 여성 플레이어를 응시하며 "패를 읽을 수 없네. 짱구(손님인 척 끼어들어 돈을 따가는 바람잡이)인가"라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밤 11시 40분에는 250만원짜리 판돈이 걸린 도박도 벌어졌다. 최종 상금 250만 GTD를 두고 10명의 플레이어들이 자웅을 겨뤘다. 끝까지 살아남은 플레이어에게는 등수에 비례하는 상금이 주어지는데, 1등에게 주어지는 상금은 120만 GTD였다.

빨간색 후드를 입은 한 여성이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리엔트리, 리엔트리! 아 빨리요"라고 외쳤다. 딜러는 "레이즈"라고 말했다. 많은 플레이어들이 폴드를 선택했지만, 벙거지 모자를 눌러 쓴 남성이 같은 양의 칩을 걸고 베팅 금액을 맞춰나갔다. 이윽고 서로의 카드가 공개되자 여성은 테이블에 고개를 박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천장을 올려다보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반복하다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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