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윤 칼럼] 北쓰레기 연구로 본 '한반도 정책' 방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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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사)남북물류포럼 대표, 전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입력 2022-10-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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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사)남북물류포럼 대표]

쓰레기를 가지고 북한을 연구하는 학자가 있다. 부산 D대학교 강모 교수다. 그는 북한에서 남쪽으로 떠내려 온 쓰레기를 통해 북한에 대한 정보를 얻는 사람이다. 한때 중조접경 지역에서 망원렌즈를 가지고 선전구호나 지형지물 등의 변화를 찍어 북한을 살펴보기도 했다. 그러나 카메라로 국경지역을 촬영하다보니 중국 정부의 의심을 사기도 했다. 그러다가 2019년 말 추방당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코로나 봉쇄조치로 더 이상 현장 접근이 어려워지자, 그는 연평도, 백령도 등 서해 5도와 동해안 현장으로 향했다. 연평도에서 북한 영역까지는 불과 3∼4㎞, 파도에 떠밀려온 북한산 각종 플라스틱 봉지나 부유물을 발견, 이를 북한 연구와 주민 생활의 단면을 보는 중요 단서로 받아들인다. 이런 그의 활동은 KBS 시사프로로도 보도된 바 있다. 현장을 통해 북한을 연구하겠다는 그의 열정은 참으로 가상하다. 연구가 사실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바 현장을 향한 그의 노력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강 교수의 북한 쓰레기 연구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다음 몇 가지 인식이 가능하다.
 
첫째, 현장과 연결된 북한 연구의 길이 막혀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실토한다. 자신의 연구는 북한을 갈 수 없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북한 방문은 북한도 남한도 허용하지 않는다. 한국 국적이 아닌 사람은 언제라도 북한을 방문할 수 있으나,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은 세계 어디를 갈 수 있어도 북한만은 안 된다. 모두 정치적 이념과 적대관계 때문이다. 이 하나 때문에 남북한 사이에 가능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차단된 채로 있다. 전부 아니면 전무다. 이념의 대립이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다. 연구마저 외면당하는 현실이다. 중국과 대만을 보라, 첨예한 정치적 대립에도 오갈 사람과 물자도 오간다. 분단된 남북예멘도 마찬가지다. 전쟁을 거쳤으나 얼마든지 사람들은 오가고 있다. 연결되면 많은 것을 알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것을 우리는 스스로 차 버리고 있다.
 
둘째, 북한과의 차단이 자칫 북한 경제에 대한 왜곡된 판단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강 교수는 북한 쓰레기를 보고 북한 경제가 당면한 현실을 유추한다. 그가 수집하는 것은 상품 포장재가 대부분이다. 조악한 포장과 세련되지 못한 디자인, 떠내려 온 신발이 온통 기워져 있는 것을 보고 대북 지원의 당위성을 언급한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따로 있다. 북한 주민 모두가 가난을 절절히 느낄까? 라는 이야기다. 남한도 경제적 어려움이 생활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다. 떨어진 신발을 기워 신은 적도 있었다. 지금도 로션이나 치약을 다 쓰면 중간을 잘라 남아 있는 것을 쓰기도 한다. 모두가 가난하면 정작 가난을 느끼지 못한다. 가난은 비교 대상이 있어야 의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과잉생산과 과잉소비의 시대에 살고 있다. 소비를 부추기는 경쟁은 전쟁과도 같다. 다 썼지만 그냥 버리기엔 아까운 것들도 너무 많다. 옛날엔 참으로 귀했던 손목시계가 기술의 발달로 집안 구석 몇 개나 굴러다니기도 한다. 북한에서는 이런 생산이 필요 없다. 필요한 만큼 생산만 하면 된다. 과대포장도 필요 없다. 그렇게 생산하지 않아도 소비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허술한 포장을 보고 경제가 어렵다는 것은 우리의 처지에서 하는 생각이다. 우리 기준으로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생산과 소비를 보아서는 안 된다. 북한 주민들은 모두 집단주의 속에 살고 있다. 기계로 치면 부품처럼 움직이고 있는 것과 같다. 그들은 언제나 주어진 역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모두 같이 움직인다. 불만이 생겨나기 어려운 구조다. 불만을 가진다고 해도 우리 사회의 개인주의적 성향의 불만표출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들을 염려하고, 걱정하고 우려하는 것을 북한은 동정으로 생각한다.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북한을 불쌍하게 본다는 자체가 우월적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우리의 우월적 지위를 한사코 거부한다. 가난해도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는가? 우리가 아무리 지원을 한다고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그래서다. 구걸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대북 지원은 대부분 이산가족상봉과 연계하여 추진되었다. 주고받는 의미였다. 사실 북한으로서 이산가족상봉은 달갑지 않은 일이다. 체제 위협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남쪽 가족을 만나면 사상 면에서 오염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처한 현실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그것을 감수하는 대가로 지원을 받았다. 따지고 보면 북한 경제의 어려움은 사실 국제사회가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핵문제가 경제제재를 가동하고 있고, 국제무역시스템에의 편입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은 그것을 감내하고 있다. 핵을 내려놓으면 모두 죽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술은 자체 개발하는 것이 많다, 그런 능력도 있다. 그 수준은 놀랄 만하다. 상품포장지에 붙은 큐알(QR)코드를 북한은 1990년대부터 “2차원부호”라는 이름으로 개발해왔다. 2000년대 이미 실용화 단계를 밟아 현재 이용하고 있다. 단지 받쳐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원료와 자재다. 그래서 늘 부족하다. 대량 수입과 수출이 불가능하니 물자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물에 씻겨 빛바래진 쓰레기를 통해 전달하는 북한 현실이 그들보다 우월한 의식만을 강화하게 한다면 이는 남북관계가 나아갈 바람직한 길이 아닐 수 있다.
 
셋째, 우리의 대북 정책 방향이 어디를 향해야 할 것인지를 알려주고 있는 점이다. 무엇보다 북한을 알고, 이해하기 위해 접근이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먼저 연결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북한과의 일방적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핵 때문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할 수는 없다. 가치지향적인 방향으로 남북관계를 가져가야 한다. 북한이 협상과 타협의 동등한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그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남북관계의 출발점이다. 우리가 북한을 몰아세워 우리로부터 멀리 가게, 돌아올 수 없도록 해서는 되지 않는다. 우리의 주장이 비록 옳고 합당해도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않은가. 정의를 위한 압박보다는 정의를 위한 타협이 더 중요하다. 북한이 체제 리스크를 스스로 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산가족상봉과 지원을 연계하고, 대북 경제제재 해제와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핵문제 협상의 조건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난 북·미회담에서 영변의 핵시설을 해체하는 대신, 경제재제의 일부분을 해제해 달라는 요구를 북한이 다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정성이 중요하다. 담대한 구상의 순서를 바꾸는 것이 어떻겠는가. 먼저 경제협력을 할 테니 비핵화의 완성을 담보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북한이 우리의 말을 먼저 들어주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대화의 분위기부터 만드는 일에 전념하라. 북한을 힘으로 굴복시키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라. 그래야만 바람직한 남북관계가 시작될 수 있다.


김영윤 필자 주요 이력 

▷독일 브레멘대학 세계경제연구소 연구원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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