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가수 심규선의 창작을 향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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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이 객원기자
입력 2022-10-0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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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심규선. 그는 매 순간 ‘심규선’이라는 사람에 대해 고민하며 울림을 주는 노래들을 만들었다. 그의 노래들은 치유의 주문처럼 듣는 이들의 마음의 상처들을 치유해주고 있다. 그와 함께 오랜 고민 속에서 나온 심규선의 ‘창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가수 심규선 [사진=심규선]


Q. 밤의 끝을 알린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A.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사태로 우리 모두는 긴 시간 어둠 속에 있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저는 이 책을 썼고 거리두기가 해제되며 일상을 되찾아갈 때쯤 책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아침이 밝아오면 가장 먼저 지저귀는 새들처럼 '밤의 끝을 알리는 첫 노래가 되었으면 한다'는 본문의 내용에서 따온 제목이지만, 정말로 우리를 둘러싼 어둠이 모두 흩어졌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해서 말할 수 없는 날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밤처럼 캄캄한 시간이란 세상의 실정이 어떠한지에 관계없이 개인의 상황에 따라 드리워지기도, 걷히기도 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당장 새까만 어둠 속에 있다 하더라도, 어디선가 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하고 또 거기 화답하여 더 크게 지저귀는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아침이 이미 저만치 왔음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와 같은 제목을 쓰게 되었습니다.

Q. 어린시절의 심규선을 만나면 가장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그리고 그때 그 시절의 심규선과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한 말씀 해주세요. 
A. '해야 할 일'이라는 노래가 생각나네요. 그 노래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춤을 추듯 하루를 사는 것, 다시 없을 지금을 사는 것, 하나 하나의 음이 모여서 멜로디를 이룸을 아는 것, 네가 꿈꾸는 게 무엇이든 하고픈 게 뭐든 할 수 있어 정말 원하는 것을 찾으면 너의 삶의 이유를 찾으면'

저는 우리를 넘어트리는 것이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조급함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우리가 쉽게 조급해지는 이유는 삶의 시계를 나의 것이 아니라 세상의 것, 혹은 남의 것에 기준을 맞추어 따르고 있기 때문이지요. 또 'Who'라는 곡에서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었어요.
'우리 모두의 인생은 다른 속도로 흐르고 있어, 네 삶의 시계를 찾아. 그러면 돼 그걸 따르면 돼'

혼란했던 시절에 저는, 정말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엄청나게 조급했기 때문에 발을 뗄 때마다 계속 넘어졌습니다. 만약 그 시절의 저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노래들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힘든 시절 저 자신을 일으키거나, 일깨우기 위해 쓴 곡들이기도 하거든요.
 

Q. 음악을 통해 본인의 이야기를 할 때와 책을 통해 본인의 이야기를 써내려 갈 때 또 다른 감정들을 느꼈을 것 같아요.
A.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데 다른 도구를 사용하는 정도였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평가하기에 제가 쓴 책은 제가 부르는 노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절실하게 전하고 싶어하는 메시지가 노래에서나 책에서나, 결국에는 같으니까요. 다만 5분 남짓한 노래의 시간적 한계를 벗어나 20분 동안 읽어 내려갈 수 있는 한 편의 수필이라는 점에서 발생하는 차이점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내밀한 이야기를 쓸 때는 조금 부끄러웠어요. 하지만 팬 분들은 언제나 저에게 아무에게도 해본 적 없는 이야기를 용기내서 해주시곤 하니까요, 저도 마땅히 그런 마음에 대한 답장을 써야 한다는 의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Q. 음악을 처음 시작하게 됐던 계기는 뭔가요?
A. 특별한 계기랄 것도 없는 것 같아요. 왜냐면 언제가 음악을 시작한 때인지를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노래를 좋아했고, 학창 시절 내내 닥치는 대로 노래 대회에 나갔고, 노래를 흥얼거리다 결국 쓰게 되었고, 쓴 것을 직접 부르면서 자연스레 음악가로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의 심규선과 지금의 심규선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A. 음악적인 면에서는 매 음반마다 조금씩 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떤 분은 새 음반을 듣고 '와, 색깔이 이전 음반이랑 완전 다른데?'라고 평해주시기도 하는 반면, 어떤 분은 '전이랑 비슷하네'라고 느끼실 수도 있을 텐데요, 저 스스로 급격한 변화보다는 서서히 방향을 바꿔가는 쪽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변화의 총량이 얼마만큼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메시지의 성장성'이나 '기존의 틀에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 느껴지는가'이지요. 어떤 음반이라고 콕 집어 말씀드리지는 않겠으나 과거의 어떤 음반에서 제가 갑작스러운 메시지 변화를 선보였을 때 소수 반감을 느끼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대신 음반에 대한 아주 작은 피드백도 진지하게 경청하기 때문에 (그것이 부정적 의견일 때는 더욱) 음반을 내고 메시지를 전하는 일이 아주 부드러운 속도로 천천히 설득되어야 하는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이전의 음반에서 사랑받았던 메시지들과 새로 만든 메시지들을 티나지 않게 혼융하는 작업에 굉장한 공을 들입니다. 실례로 '아라리'라는 곡이 사랑받자 그 덕분에 '아라리'의 기존 메시지에 확장성을 더한 '화조도'와 '야래향'이라는 노래도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동양풍 노래에 집중하느라 다른 변화를 도모하지 않았다면 '월령'과 '소로' 같은 음반은 만들어지지 않았겠지요. 저는 그런 식으로 사랑받았던 곡의 접힌 면을 펼쳐 새로운 시리즈들을 이어가면서, 동시에 다른 색깔의 노래들을 함께 써서 저 개인의 성장과 변화를 천천히 설득해 가는 식으로 음악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음악을 시작했을 때 심규선과 지금의 심규선은 99% 똑같은 사람입니다. 쉽게 좌절하고, 좌절할 때마다 다시 용기를 내며, 꺾였다 일어나기를 무한정 반복하고 있는 사람이지요. 바뀐 1%가 있다고 하면 그런 반복들이 자연스러운 순환임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점뿐입니다.
   
Q. 규선 님의 '환상곡'을 사랑하는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환상곡'들을 작사 작곡하실 때 영감을 받는 존재들은 뭔가요? 또한 '환상곡'뿐만 아니라 평소 규선 님에게 어떤 것들이 영감을 주고 어떤 영감들이 작업으로 이어지는지 궁금해요.
A. 저는 영감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데요, 사실 영감이라는 것이 어디에서 오는지, 과연 영감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지 의문스러워지기 때문입니다. 평상시에 좋아하는 것은 책 읽기나 산책처럼 평범한 것뿐이고, 영감을 얻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없습니다.

아마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제가 흡수하였고 받아들인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노래로 이어진 것이라 판단되는데요. 셰익스피어를 좋아하였고 고전문학을 집요하게 수집하거나 읽었던 것이 '환상소곡집'의 발단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있어 고전문학이 현대문학보다 멋진 것으로 느껴졌던 이유 중 하나는, 어떤 장면들이 마치 음악처럼 읽힌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부드러운 피아노곡처럼 연주되다가 급격히 웅장한 교향곡으로 돌변하기도 하고, 시대를 초월하는 어떤 풍부함이 대성당에서의 합창곡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니까요.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좇고 나의 상황들과 결부하며 환상소곡집을 썼다고 생각합니다. '데미안', '오필리아', '폭풍의 언덕'처럼 캐릭터와 무대를 드러내고 차용한 곡들도 있는데요, 이러한 곡들이 대표적으로 그런 방식을 통해 쓰였다고 생각합니다.
 
Q. '꽃처럼 한 철만 사랑해 줄 건가요?'를 정말 좋아합니다. 윤덕원 님과 같이 부르신 '왜죠'라는 곡에서도 저 노래 가사가 등장하는데, '변해가는 마음은 피고 지는 저 꽃처럼 잡을 수가 없는 그런 일' 등과 같은 가사를 보면 사랑의 주체를 염두에 둔 것 같았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그 노래의 가사를 썼는지 궁금합니다! '꽃처럼'에서 꽃은 사랑의 객체인가요, 주체인가요?
A. 어려운 질문이군요! 정답은 리스너 본인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노래와 음악의 정말 멋진 점 중에 하나지요. 최종 해석에 대한 권한은 부른 이보다 듣는 이에게 있는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5년 전에 들었던 노래를 오랜만에 다시 들었을 때 완전히 다른 인상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고, 여러 번 반복해서 들었을 때 처음과 전혀 다른 해석을 내리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요.

한 곡의 노래가 오랜 시간을 두고 반복해서 들려지면서, 듣는 이의 마음과 상황의 변화에 따라 다른 면모들로 새롭게 발견되는 것에 작가로서 큰 기쁨을 느낍니다. 저는 '꽃처럼 한 철만 사랑해 줄 건가요'를 어느 깊은 새벽 혼자 자전거를 타며 썼습니다. 그때 접어든 어느 골목 담장에 능소화 덩굴이 멋지게 늘어트려져 있었는데, 지독한 짝사랑을 하던 때였고 지금도 능소화를 보면 그 당시의 열병을 쉽게 떠올리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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