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섭 칼럼] ESG 지표 안 고치면 배가 산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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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섭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입력 2022-08-2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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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섭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전 중소기업청장]

세계적으로 기업 경영과 투자의 새로운 규범으로 부상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대한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특히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천연가스와 원유 가격 폭등으로 세계적 인플레이션 압력에 일조하고 있고 화석연료 기업이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음에 따라 ESG 투자에 대해 일부 투자자들이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텍사스주, 웨스트버지니아주 등 화석연료 생산이 많은 주를 중심으로 주 연기금 투자에서 환경 관련 펀드를 제외하는 등 일부 ESG 펀드에서 자금이 이탈하는 현상이 감지되고 있다. 공화당인 트럼프 전 대통령이 탈퇴한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민주당인 바이든 현 대통령은 취임 후 바로 복귀했던 바와 같이 민주당은 기후 위기 대응에 적극적이고 ESG 친화적 기조인 반면에 친기업적인 공화당은 ESG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2020년 1월에 ESG를 핵심 투자 기준으로 삼겠다고 선언하여 ESG 열풍에 불을 붙인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 CEO 래리 핑크도 올해는 과도한 기후변화 대책은 고객사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면서 보수와 진보 두 진영에서 공히 비난과 압력을 받고 있다.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ESG가 정치적 논란의 대상으로도 비화할 조짐이다. ESG가 일시적 유행으로 그칠 것인지, 기업 경영과 투자의 새로운 규범으로 공고히 뿌리를 내릴지에 대한 논란으로 발전하고 있다.
 
ESG에 대한 이러한 논란은 우리 기업인들에게 큰 혼란이 아닐 수 없다. 반드시 따라야 할 대세인지 아닌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얘기다. 대외 의존도가 큰 우리나라로서는 ESG의 글로벌 흐름에 무작정 따라가기보다 그 배경과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선제적으로 대처해 가는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ESG를 주도하는 동인이나 원동력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먼저 투자자가 동인이라는 시각이 있다. 래리 핑크 블랙록 CEO가 ESG 열풍을 촉발하고 글로벌 투자 펀드들이 가세하며 확산되었기 때문에 투자자가 동인이라는 주장이 타당할 수 있다. 둘째로 ESG 경영·투자·정보공개 등의 기준이 되는 ESG 지표가 동인이 될 수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투자자 보호 목적으로 ESG 정보공시 의무화가 추진되고 있고 우리나라도 세계 추세를 지켜보며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로 소비자 성향과 선택이 동인이 되고 있다. 기성세대보다 훨씬 더 환경·사회·공정성 문제에 민감한 10대 중반부터 30대까지인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소비자의 중심으로 진입하면서 제품 및 서비스 구매 시 ESG를 선택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성세대는 본인 살아생전에 지구가 결딴날 것이라는 걱정을 하지 않지만 살아갈 날이 많은 MZ세대는 지구 환경에 매우 민감하고 우려가 많다. 막연히 환경보호를 외치기보다 환경 친화적 기업의 제품·서비스를 구매하고 그렇지 않은 기업은 배척한다.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 공정한 기업도 마찬가지로 MZ세대의 선택이 따르고 있다. 결론적으로 단기적으로는 투자자와 지표가 ESG의 중요한 동인이 될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소비자 성향과 행동 변화가 가장 중요한 동인이 될 것이라는 시각이 중요하다. 투자자나 지표는 최근의 ESG 논란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외부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 될 수 있으나 소비자 성향·행동 변화는 기업 입장에서는 반드시 따라야 할 대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비자 성향·행동 변화를 ESG의 가장 중요한 동인으로 보는 시각으로 ESG 경영 및 투자 방향을 정하고 ESG 지표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 미국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DJSI), 모건스탠리캐피털(MSCI) 지수, 지속가능성 회계기준위원회(SASB) 지수 등이 글로벌 ESG 지표를 선도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많은 법무법인, 회계법인, 컨설팅 회사 등이 다양한 ESG 지표를 쏟아내고 있다. 국내외에 난립한 수백 개의 ESG 지표는 모두 개선해야 할 여지가 많다.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작년 발표한 K-ESG 가이드라인도 초기 단계여서 향후 지속적인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소비자 성향과 행동 변화 중심 시각으로 보면 환경(E) 부문은 에너지·환경 기술 개발 기업에 대한 평가를 강화해야 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양호한 상황이나 사회(S)와 지배구조(G) 부문은 개선이 시급하다. 먼저 사회(S) 부문의 인권, 노동, 협력사 관계, 지역사회 공헌 관련 지표는 소비자 성향과 행동 변화에 영향을 주는 기본적 지표이긴 하나 소비자의 팬덤과 구매에 직결되기에는 제한적이다. 결국 모든 사회가 지향하는 비전과 가치인 건강, 안전, 편의, 성장, 지속 가능성에 기여하느냐가 소비자의 팬덤과 구매에 직결될 것이기에 이에 대한 지표를 사회(S) 부문의 핵심 지표로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면 혁신 신약이나 의료기기로 국민의 건강한 삶에 기여하는 기업, 스마트 제품 개발로 국민의 편리한 삶에 기여하는 기업, 재난을 예방하여 국민의 안전한 삶에 기여하는 기업 등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지표가 개선되어야 한다. 이렇게 국민 삶에 기여하는 기업은 우수한 평가를 받고 소비자, 특히 사회문제에 민감한 MZ세대의 강력한 팬덤으로 열정적 고객을 확대하며 발전하게 될 것이다.
 
지배구조(G) 지표는 현재 소유의 지배구조에 매몰되어 있어 이해관계자 간 많은 논란으로 역시 개선이 시급하다. 지배구조란 기업 내 의사 결정의 지배구조를 의미한다. 의사 결정은 소유 측면은 물론 의사 결정 구조 및 프로세스, 젠더, 노소, 인종 등 다양한 요소가 반영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고객이 주로 여성인 화장품 기업에서 이사회, 임원진 등 경영진이 남성 중심이면 여성 취향을 이해하는 의사 결정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 사실을 알게 된 여성 고객에게 외면당하게 되어 발전이 어려워진다. 양성 평등과 같이 논란이 될 수 있는 사회적 지표가 아니라 기업의 의사 결정과 매출 신장에 직결되는 지배구조 지표로서 그 의미가 큰 것이다. 노소와 인종 측면도 동일한 논리다.
 
ESG 지표가 잘못되면 배가 산으로 간다.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의 동시 추구가 가능한 방향으로 지표를 개선하여 배가 바다로 가게 하자.


주영섭 필자 주요 이력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산업공학박사 △현대오토넷 대표이사 사장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중소기업청장 △한국디지털혁신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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