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어느 퇴직공무원의 행복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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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규 전 서울시장 권한대행
입력 2022-07-2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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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영규 전 서울시장 권한대행

권영규 전 서울시장 권한대행. 


<어느 퇴직 공무원의 행복 찾기>
                       
                                      

삶이란  무엇인가.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부를 축적하고 명예를 쫓아가고  권력을 추구한다. 개인적 욕망이든지, 거창한 대의명분이든지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살 맛을 느끼고 기쁨을 맛본다. 

■해외 봉사를 결심하다 

나는 내 행복의 수단으로 공무원을 선택했다. 군 복무를 하는 동안 몇몇 친구가 행정 고시에 합격하는 걸 보고, 전역 후 '나도 한번 해보자' 하고 응시했는데 운 좋게도 단번에 합격했다.  
우연한 선택이었지만 공무원 된 것이 자랑스러웠고 자랑스러운 만큼 몰입하며 근무했다. 그렇게 30년이 흘렀고 직업공무원으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지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영광도 잠시, 정치 상황이 급변하면서 공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서울시청을 뒤로 하고 바깥 세상에 나와 보니 모든 것이 낯설었다. 갑작스레 퇴직하다 보니 나머지 삶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했다.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 몰랐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뭔가 보람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대학 강단에도 서 보기도 하고 공공기관에 발을 들여놓으며 이곳 저곳을 기웃거렸지만 새로운 기회를 잡기는 쉽지 않았다. 꿈을 찾지 못하고 추구하는 목표가 없으니 삶이 심드렁하고 시들해졌다. 

그때 KOICA에서 자문단을 모집하는 광고가 나왔다. 파라과이 정부에서 일할 인적자원 개발 전문가를 선발한다고 했다. 눈이 번쩍 띄었다. 곧바로 지원했고 영어와 전문 능력 테스트를 거친 후, 2015년 2월 말 아순시온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시간 내내 내 선택이 옳다고 자기 최면을 걸면서 흔들리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다. “나는 30년 행정경험이 있어!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나는 이 길에서 삶의 보람을 찾을 거야!"
  
막상 현지에 도착해보니 봉사는 그 이름처럼 멋있는 것이 아니었다. 허름한 월셋방에서 내 손으로 밥해 먹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외롭게 밤 시간을 보내야 했다. 노상 강도를 만날까 조마조마 하며 길거리를 걸어야 했고, 소매치기를 걱정하며 버스를 타야 했다. 손짓 발짓하며 소통해야 했고 스페인어와 씨름하면서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들어야 했다. 

그 곳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나는 파라과이 행정의 전문가가 아니었다. 나의 경험은 서울에서 의 경험이었고 나의 지식은 한국에서 필요한 지식일 뿐이었다.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고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다. 나를 초청한 책임자는 바뀌어 있었고 후임자는 왜 나를 초청했는지, 나에게 어떤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한마디로 나는 현지 실정에 어두운, 관심 받지 못하는 이방인이었다. 

■파라과이, 낯선 땅에서 보람을 찾다.  

그렇다고 서울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직접 부딪치며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곧장 현지 사정을 파악하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파라과이 역사와 문화, 경제와 사회, 그리고 공직 시스템에 관한 자료를 찾아서 읽었다. 정부의 장기발전계획과 각종 정책을 확인하고 실제 제대로 추진되고 있는 지 모니터링 자료를 찾고 모으려 애를 썼다.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장관을 찾아가고 직업훈련청장을 만나고 현장 직원들과 대화했다. 그들이 어떤 문제를 고민하고 어떤 어려움을 겪는 지를 듣고 또 들었다. 어색함을 무릅쓰고 회의와 행사를 찾아 다녔고 자청해서 강의하면서 대면기회를 넓혀 나갔다. 
 
그러자 조금씩 파라과이의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점차 이들의 사정이 이해되었고 서울 이야기가 아니라 파라과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서울에서 준비해간 역량강화 사례를 가르칠 것이 아니라 여기 공직자들에게 필요한 공직자 자세와 서비스 정신을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고용노동부 본부와 산하기관 직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서비스 태도 향상을 위한 상황극 경연부터 시작했다. 이어서 시큰둥한 간부들을 설득해 가면서 역량 강화 과정을 운영했다. '파라과이! 너는 할 수 있어! (Paraguay, ¡sí, se puede!)' 라는 슬로건 아래 자신감을 갖고 스스로 문제를 찾아 해결 방안을 모색하도록 유도하고 지도했다.  

첫 번째 시도에서 성공을 거두니 다음부터는 일하기가 한결 쉬워졌다. 장관은 나를 믿어 주었고 내 의견에 동조하며 힘을 실어 주었다. 머뭇거리던 간부들도 나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기 시작했다. 행사를 통해 많은 직원들을 만나다 보니 어느새 부처 내에서는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벽이 허물어지자 이들은 작은 행사라도 있으면 나를 초청하려고 했고 새로운 일을 시작 할 때면 스스럼없이 찾아와 내 의견을 듣고 싶어했다. 

아순시온에서의 삶은 의미가 있었다. 일이 있으니 몰두할 수 있었고 알아주니 살 맛이 났다. 하지만 외로웠다. 연로하신 어머님이 보고 싶었고 가족들이 그리웠고 친구들 생각이 났다. 그래서 귀국을 결심했고 1년 활동을 마무리하며 성과보고대회를 개최했다.  

축사를 하러 연단에 오른 기예르모 소사 (Dr. Guillermo Sosa Flores) 고용노동부장관은 정말 고맙다고 했다. 지금 돌아가야 한다면, 일단 귀국했다 다시 와서 도와 달라고 했다. 공개석상에서 공식적으로 다시 나를 초청했다. 잠시 귀국했던 나는 기쁜 마음으로 다시 파라과이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1년간 4륜 트럭을 타고 전국의 57개 직업훈련센터를 찾아다니며 역량강화 활동에 매진했다. 나는 점차 파라과이의 속사정을 깊이 이해하고 파라과이의 직업 훈련 현실을 잘 아는 활동가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국의 직업능력개발원과 교통연구원에서도 남미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남미 행정 특강을 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 
나는 파라과이에서 현지인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나는 그들을 가르치러 갔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내가 깨우치고 배웠다. 도움을 주려고 갔지만, 오히려 내가 도움을 받았다. 현지인들과 어울려 생활하면서 살아있음을 느꼈고 성취감을 느꼈다. 그들과 함께 하면서 나는 새롭게 성장했고 더 발전했다.  

■콜롬비아, 세상사는 이치는 어디나 똑같아  

2년간의 활동이 끝났을 때도 고용노동부 장관은 파라과이에 1년 더 머물러 달라고 했다. 하지만 2018 년은 파라과이 대통령 선거가 예정된 해이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장관은 물론이고 과장급 이상의 간부들 전원이 교체되는 상황이기에 계속 일하기는 어려웠다. 
 
서울로 돌아와 잠시 쉬고 있던 중 콜롬비아 보고타시의 '사회적경제청(IPES)'에서 정책기획, 집행, 모니터링 및 피드백을 도와줄 전문가를 초청한다는 공고가 나왔다. 다시 영어 시험과 전문 면접을 치르고 보고타로 갔다. 하지만 황당하기는 거기도 마찬가지였다.
  
도착 첫날 상견례 자리에서 국제협력담당관이 불쑥 기관장을 비롯한 간부는 물론, 직원들 중에도 영어를 하는 사람이 없으니, 영어를 사용하지 말고 스페인어를 쓰자는 제안을 했다. 용기를 내어 그렇게 하자고 약속했고, 그날부터 일상생활은 물론 간부회의 발표와 세미나, 강의, 각종 자문 활동을 모두 스페인어로 하게 되었다.  
그들은 나를 도시정책 전문가 자격으로 초청했지만 도착해보니 IPES 는 정책을 다루는 기관이 아니었다. 길거리 노점상을 관리하고 공영 시장을 관리하는 집행 기관이었다. 나는 정책 기획 활동을 포기하고 바로 이 기관의 업무 현황과 문제점부터 파악해야 했다.  

신문 기사를 뒤지고, 시의회 회의록을 확인하고, 시장 공약 사항과 감사 보고서를 찾아 읽었다. 그리고 이런 자료를 토대로 이 기관의 혁신 계획을 수립했고 전체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발표를 했다. '한계를 뛰어넘어(¡Mas allá del límite!)' 란 타이틀도 내걸었다.   

나는 세 차례의 세미나를 주도했고 매번 기조 강연을 맡았다. 강연을 들은 가족청소년부 관료 한 분이 나에게 자기 부처에 특강을 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것을 계기로 나는 콜롬비아의 중앙 정부, 주 정부, 지방 정부, 그리고 대학들의 초청을 받아 특강을 하러 다녔다.  

그들은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정보화로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발전 과정을 알고 싶어했고, 대중교통시스템 개혁, 청계천 복원 프로젝트 등 서울시의 행정 혁신 사례를 배우고 싶어했다. 기적을 이뤄낸 대한민국과 서울의 저력을 부러워했고 지칠 줄 모르는 한국인들의 끈기와 근면성에 경의와 찬사를 보냈다. 

세상 사는 이치는 어디나 똑같다. 진심을 다하면 마음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면 친구가 된다. IPES 청장 마리아(Sra. María Gladys Valero Vivas)는 “정책기획분야에서 보여준 박사님의 전문성도 중요했지만, 우리 직원들과 일하는 과정에서 표출된 당신의 인간성과 친밀감은 더욱 소중한 것이었습니다”라는 각별한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2019 년 6 월, 콜롬비아 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나는 이번에는 아프리카로 떠나볼까 생각하며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KOICA 에서 연락이 왔다. “도시분야 전문위원으로 위촉할 테니, 파라과 이 정부의 토지주택공사 설립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맡아 달라”고 했다. KOICA는 곧바로 도시계 획 행정가와 금융 재정 전문가로 구성된 프로젝트 팀을 꾸렸고, 준비를 마친 우리 팀은 이 해 11월 28일 파라과이로 떠나기로 했다.  

■인생은 호락호락하지 않아...감사하며 살아가기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건강보험공단의 건강 검진에서 폐에 이상이 있다는 통보를 받았고, 파라과이로 출국이 예정된 당일, 아산병원에서 왼쪽 폐의 상엽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잘라낸 림프절 23개중 2개에서도 미세한 암 세포가 발견되었고 수술 3주 후부터 독성화학항암제인 시스플라틴(Cisplatin)과 비노랠빈(Vinorelbine)을 동시 투여하는 항암치료를 견뎌야 했다. 

아무런 전조 증상없이 갑자기 나타난 폐암은 내 인생에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마약성 진통제 바늘을 두개나 꽂고 핏물과 소변을 배출하는 호스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을 때는 '혼자서 화장실 가는 환자'가 한없이 부러웠다. 항암제 부작용으로 목이 붓고 속이 메슥거릴 때면 '목구멍으로 음식을 삼킬 수 있다'는 자체가 곧 축복임을 알게 되었다. 평범한 일상을 누린다는 자체가 곧 행복이란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 동안 나는 다섯 권의 책을 썼다. 서울시 행정 경험은 ‘시민행복을 디자인하다’ 라는 제목으로, 파라과이에서 겪었던 일은 ‘사랑해, 파라과이!’라는 두 권의 책으로, 콜롬비아 자문활동은 ‘¡Mas allá del límite! (한계를 뛰어넘어)'를 스페인어로 출간했다. 책을 쓰고 지난 날을 뒤돌아 보면서 나는 정말 많은 복을 누리며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12살이 되어서야 전깃불이란 걸 처음 봤던 촌뜨기였지만 40년 후에는 세계적 대도시 서울의 최고 지위까지 올랐고, 50년 후에는 경험과 지식을 나누겠다고 세상을 누비고 다닌다.”  

이 얼마나  커다란  축복인가. 내 곁에는 늘 고마운 분들이 함께 했다. 정성을 다해 키워 주신 부모님, 사랑 넘치는 아내와 자녀들, 우애 깊은 형제자매들, 수시로 연락하고 안부를 묻는 친구들, 이웃들, 그리고 밤을 새우며 일했던 동료들, 이런 분들을 가진 나는 정말 큰 복을 받은 사람이다.

이런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 덕분이다. 전쟁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서로 다른 생각으로 갈등하고, 부대끼며 살면서도 정말 짧은 기간에 경제화와 민주화를 이루어 낸 대한민국 덕분이다. 나는 서울시에서 일하며 성장하고 발전했다. 나를 성장시키고,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준 서울시에 감사한다. 나는 남미에서도 즐겁고 의미 있게 살았다. 보람 있는 일을 할 기회를 주고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KOICA 에 감사한다.  

지난해 나에겐 몇 가지 일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기회가 주어졌다. 나는 그 중에서 명예직인 서울시자원봉사센터의 이사장직을 선택하였다. 2002년 월드컵추진단장 시절 나는 자원 봉사자들과 신나게 일을 했었고, 이들의 봉사활동이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으면서 자원봉사센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내가 평소에 하고 싶어했던 그 일, 서울의 자원봉사를 활성화하고 센터의 역할을 강화하는 일을 하고 있다. 봉사자에게는 보람을, 봉사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자원봉사센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는 바라고 있다. 내 행복을 추구하는 내 삶의 과정이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기쁨을 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길, 그런 일을 찾아 끊임없이 도전하고 몰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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