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우유대란 초읽기] '원유 차등가격제' 두고 정부-낙농가 갈등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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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미 기자
입력 2022-07-1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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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8일 오전 서울의 한 마트에서 소비자가 우유를 구매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오는 8월 1일 원유(原乳) 가격 조정 기한을 앞두고 정부와 낙농업계 간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정부는 원유의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이를 두고 낙농업계는 생산비에도 못 미치는 가격 책정을 우려하며 제도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정부가 차등가격제를 강행하면 원유 공급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이 때문에 이달 말까지 양측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8월부터 우유 수급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용도별 차등가격제는 무엇

정부와 낙농업계가 치열하게 맞서고 있는 용도별 차등가격제는 원유 쓰임새에 따라 원유 가격을 다르게 적용하는 것이다.

원유는 크게 마시는 우유인 '음용유'와 치즈·버터·아이스크림 등을 만드는 데 쓰이는 '가공유'로 구분한다. 현재 미국과 일본은 각각 4개, 캐나다는 6개 용도로 분류해 가격을 다르게 매기고 있다.

반면 국내 원유 가격은 '생산비 연동제'에 따라 낙농가 생산비에 연동해 단일 가격으로 결정한다. 생산비 연동제는 2013년 가축 전염병인 구제역으로 낙농업계가 피해를 보자 정부가 수급 안정을 위해 도입한 제도다.

정부는 차등가격제를 도입해 음용유용 원유 가격은 현재와 비슷하게, 가공원료에 쓰이는 원유 가격은 음용유보다 낮게 정한다는 방침이다.
 

한국낙농육우협회 충남도지회에 속한 낙농민이 지난 11일 충남도청 앞에서 열린 '낙농 말살 정부·유업체 규탄' 궐기대회에서 원유를 쏟아버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차등가격제 도입 이유는

통상 시장 가격은 수요와 공급 원리로 정해진다. 그러나 생산비 연동제 도입 이후 수요 변화와 관계없이 우유 가격이 정해져 원유 가격이 계속 오른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민 1명이 마시는 우유량은 2001년 36.5㎏에서 2021년 32㎏으로 줄었다. 치즈·아이스크림 등 유가공품을 포함한 전체 유제품 소비는 같은 기간 63.9㎏에서 86.1㎏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원유 생산량이 줄고 가격은 치솟자 유업계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입산 원유에 의존하고 있다.

국내 원유 가격은 2001년 리터(ℓ)당 629원에서 2020년 1083원으로 72.2% 뛰었다. 같은 기간 미국 원유 가격은 ℓ당 439원에서 491원으로 11.8%, 유럽연합(EU)은 ℓ당 393원에서 470원으로 19.6% 각각 상승하는 데 그쳤다. 여기에 국내에서 생산한 원유 물량은 2001년 234만톤(t)에서 지난해 203만t으로 감소했다. 자급률도 같은 기간 77.3%에서 45.7%로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이러다 보니 2001년 65만t 수준이던 수입산 원유 물량은 2021년 251만t으로 4배 가까이 뛰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낙농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이에 농식품부는 낙농진흥법 취지에 맞춰 낙농가 생산비 이외에 수요 변화와 낙농가 소득, 국제 경쟁력 등을 반영해 음용유와 가공유용 원유 가격을 다르게 적용하는 용도별 차등가격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장관 후보자 시절인 지난 5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정부-낙농업계 쟁점은

농식품부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낙농제도 개편 작업에 들어갔다. 학계와 생산자, 소비자, 유업체가 참여하고 농식품부 차관이 위원장으로 맡는 '낙농산업 발전위원회'를 꾸려 차등가격제 도입 방안을 마련했다.

정부는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도입하면 낙농가 소득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 정부는 농가당 소득이 현재 1억6187만원에서 1억6358만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산한다.

음용유 한쪽으로 쏠린 생산 구조 개선도 기대한다. 유업체의 유가공품용 수입산 원료가 국산으로 대체돼 국내 생산이 늘고 자급률도 올라갈 것으로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 유제품이 경쟁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도 차등가격제가 필요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2026년부터는 미국과 EU 등에서 들어오는 치즈와 우유의 관세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반면 낙농업계는 농가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제도라고 맞서고 있다. 정부의 각종 규제와 사료 가격 폭등 등으로 원유 생산을 늘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차등가격제까지 도입하면 농가 수익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국낙농육우협회는 "사료 가격 폭등세 지속으로 젖소 사육 기반이 구제역 파동 이후 처음으로 40만두 이하로 붕괴되고, 올해 우유 생산량 예측치도 2020년보다 6.6% 감소한 195만t으로 공급 부족 사태가 우려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농식품부가 낙농가의 적자 상황에서 생산되는 올해 예측치를 기준으로 낙농가에 소득 감소가 없게 설계했다는 것은 전제부터 오판"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음용유를 현재 쿼터(생산량)의 85.5% 수준인 190만t으로 제시해 놓고 쿼터 삭감이 아니라고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원유 쿼터제는 낙농가가 생산한 원유를 유업체가 모두 사들여 가격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보장하는 제도다.

낙농육우협회는 지난 2월 16일 낙농인 결의대회를 연 뒤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무기한 농성투쟁에 들어갔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에도 농성을 이어가는 중이다. 각 지역에서 궐기대회도 열고 있다.

낙농업계 반발에도 정부 입장은 단호해 양측이 합의에 이르기까지는 적잖은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김인중 농식품부 차관은 지난 10일 지방자치단체와 가진 대책 회의에서 "음용유 중심 생산으로는 낙농산업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어 유가공품 시장 확대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집회 등 제도 개편 반대에도 불구하고 용도별 차등가격제 등 낙농제도 개편은 흔들림 없이 추진할 계획"이라고 힘줘 말했다.

앞서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도 장관 후보자 시절인 지난 5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과 관련한 질의에 "그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답하며 제도 도입의 뜻을 분명히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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