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판단의 원칙'에도 형사재판 유죄 75%…"기업 보수적 경영 이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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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우 기자
입력 2022-05-29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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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경제인연합회 현판 [사진=연합뉴스]

기업 이사의 법적 보호망으로 주요국에서 통용되는 ‘경영판단의 원칙’이 국내에서는 미미한 수준으로 적용되고 있어 기업 경영 투자를 위축시키는 지적이 나왔다.

29일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에 의뢰해 지난 10년(2011~2021년) 동안 경영판단원칙을 다룬 대법원 판결을 분석해 이러한 결과를 내놨다.

전경련에 따르면 기업 대부분은 형법상 배임죄 규정으로 인해 중요 결정을 내릴 때마다 보수적 판단을 내리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고자 주요국들은 경영판단의 원칙(BJR: Business Judgement Rule)을 두고 있지만, 국내는 해외와 달리 경영판단의 원칙을 참고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설명이다.

경영판단의 원칙이란 이사가 선량한 관리자로서 의무(선관의무)를 다하면서 이사의 재량범위 내 행위를 했다면, 비록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개인적 책임을 부담하지 않음을 말한다. 미국은 1980년대 델라웨어주 대법원이 판례를 수립한 이래 법원에서 이사의 경영책임을 판단하는 일관된 기준으로 삼고 있다. 한국은 경영판단의 원칙에 대한 명문 규정이 없고, 판례에서는 극히 예외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국내에서 경영판단의 원칙을 다룬 대법원 판례는 지난 10년 동안 총 89건(민사 33건, 형사 56건)이며, 경영판단원칙을 인정한 재판은 34건(38.2%)에 그쳤다. 특히 부인(否認)은 55건(61.8%)에 달해 절반을 넘어섰다.

형사재판 56건으로 비중을 좁히면 경영판단의 원칙을 부인하는 비중이 더 높았다. 경영판단의 원칙 부인으로 최종 유죄판결이 난 재판은 42건(75%)이며, 이는 무죄를 뜻하는 인정(認定)보다 3배나 많았다.
 

[자료=전경련]

특히 계열사 지원에 따른 이사의 횡령·배임 여부를 다룬 7건의 재판 중 단 1건만 경영판단의 원칙을 인정해 무죄로 판결했다. 기업 경영상의 문제가 형사소송으로 비화한다면 대법원이 경영판단의 원칙 인정에 매우 엄격하다. 민사재판에서는 경영판단의 원칙 인정(20건, 60.6%)이 부인(13건, 39.4%)보다 높았다. 대법원은 이사 재량범위 밖이거나(9건) 명백한 법령위반(4건)이 아니면 경영판단의 원칙을 인정했다.

전경련은 이러한 조사 결과가 법원이 경영판단의 원칙 적용에 엄격하면서 판결에도 일관성을 보이지 않아 경영 일선의 혼란을 가중시킨다고 지적했다. 그룹 내 부실 계열사에 대한 지급 보증이 배임죄로 문제 될 경우, 법원은 경영판단의 원칙을 인용해 무죄로 판결하면서도 회사에 손해를 끼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경영판단의 원칙을 부인했다. 결국 기업들은 배임죄 처벌 위험과 법원의 비일관된 경영판단의 원칙 적용에 이중고를 겪는다는 지적이다.

또한 국내 기업들은 민사상 손해배상청구소송 외에도 배임죄에 의한 형사처벌 위험까지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10년 동안 대법원 판결 통계가 입증한 것처럼 법원으로부터 경영판단의 원칙을 인정받기 어렵고, 입증책임까지 경영자가 지면서 기업가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판단했다.

이와 달리 미국법원은 배임죄가 없고 경영판단 추정 원칙을 기반으로 △필요한 절차(주총이나 이사회 적법 결의)를 밟았는지 △이사 재량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판단인지 간략하고 명확한 기준으로 판단한다. 이는 법원이 경영자의 전문적 판단에 대한 사법적 심사를 자제하는 것으로, 한국 법원이 개별사안의 내용을 세세하게 심사하고 미래 위험성까지 판단하는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연구를 맡은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법원이 경영 일선의 모든 상황을 파악하지 못함에도 전문경영인이 내린 고도의 전문적 판단 내용까지 문제 삼는 것은 지나치다”며 “법원은 경영판단의 원칙에 대한 적용 기준을 법에 명시하고, 미국처럼 절차적인 하자 여부에 중점을 둬 사법적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료=전경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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