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가치가 가파르게 급락하면서 국내 산업계가 우려하고 있다. 엔화 가치 하락이 국내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권에서는 엔저 현상이 장기화될 경우 화학·철강·기계·자동차 등 일본과 경쟁이 심한 산업권의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9일 금융·산업권에 따르면 뉴욕 외환시장에서 1달러당 엔화 가치는 6일(현지시간) 130.5~130.6엔으로 폐장했다. 지난해 4분기 달러당 110엔대 수준에서 머물렀던 엔화 가치는 올해 초 120엔으로 떨어졌다. 이후 지난달 말부터 130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심각한 엔화 약세는 일본의 수출기업에 유리하고 일본과 경쟁하는 국내 수출기업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엔화 가치가 떨어질수록 일본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는 탓이다.

예컨대 일본 수출기업이 1430엔으로 가격을 설정한 경우 엔·달러 환율이 110엔이라면 13달러, 130엔이라면 11달러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일본 수출기업은 이전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음에도 13달러에서 11달러로 가격 경쟁력이 개선돼 더 많은 해외 고객에게 상품을 판매할 수 있게 된다.

이때 여전히 13달러 수준의 가격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국내 기업이 상대적으로 뒤처질 수 있다. 실제로 2010년대 초중반 엔·달러 환율이 80엔 수준에서 120엔으로 급격히 상승한 탓에 국내 기업의 글로벌 수출 실적이 크게 악화되기도 했다.

이 같은 현상은 일본 수출기업과의 경쟁이 극심한 산업권에서 더욱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달 발표한 한국과 일본의 수출 경합도 지수(지난해 기준)를 살펴보면 자동차 분야는 90.3, 기계는 63.4, 반도체는 60.7, 전기기기는 57로 집계됐다.

수출 경합도 지수는 특정 국가에 상품을 수출하는 두 나라의 수출 구조가 얼마나 유사한지를 분석해 양국의 경쟁 정도를 측정하는 지표다. 지수가 100에 가까울수록 경쟁 정도가 심하다. 100이 최대치임을 감안하면 아직 많은 분야에서 경쟁 강도가 낮지 않은 수준으로 분석된다.

물론 산업권에서는 당장의 엔저 현상에 국내 기업이 큰 피해를 입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수출 경합도 지수도 전기기기·기계·자동차 분야에서 2011년 대비 지난해 0.8~6.5포인트가량 낮아지기도 했다. 과거 우리나라가 일본과 더욱 유사한 제품으로 경쟁을 심각하게 진행했다면 이제는 각각 특화 상품이 나오면서 경쟁 강도가 줄었다는 의미다.

조의윤 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한국 수출상품이 차별화되고 제품 경쟁력이 강화되면서 엔저가 우리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해진 것으로 판단된다"며 "다만 엔저가 장기화될 수 있는 만큼 수출기업들은 제품의 고부가가치화를 추진하고 일본보다 우위에 있는 FTA(자유무역협정)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가격경쟁력 확보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엔저 현상이 장기화돼 하반기까지 이어진다면 국내 수출기업의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특히 일본과 수출경합도가 높은 석유화학, 철강, 기계, 자동차 등의 업종이 엔저 악영향이 강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찬희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하반기까지 엔저가 이어질 경우 일본과 수출 경합도가 높거나 확대된 산업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석유·자동차 업종의 경우 수요가 양호해 피해가 제한적일 수 있지만 철강·기계 업종은 투자 유치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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