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더딘 반도체 비전 2030] 삼성, 모바일AP·파운드리 정체기…이재용 사면도 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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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선 기자
입력 2022-05-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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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에 이어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도 확실히 1등을 하도록 하겠다.”

2019년 4월 30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전자 화성캠퍼스에서 공언한 이른바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이하 비전 2030)’이 닻을 올린 지 3년이 넘었지만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당시 삼성전자는 시스템반도체 분야에만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한다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고, 지난해에는 기존 계획에 38조원을 더해 총 171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스템반도체 주력 제품인 모바일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엑시노스’의 시장 점유율은 2019년 대비 절반 가까이 떨어졌고, 시스템반도체의 기반이 되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도 대만의 TSMC에 밀려 성장이 정체된 상황이다. 반면 경쟁사의 시장에서 점점 더 점유율을 키워가고 투자 규모도 확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고객사 확보와 신규 인수합병(M&A), 기술 초격차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세우고 있다. 반도체에 대한 투자를 공격적으로 확대하며 고성능·고부가 시장을 전방위로 확대하겠다는 복안이다. 최근에는 반도체 인수합병(M&A) 전문가까지 영입하며 분위기 반전을 꾀하고 있다. 

그럼에도 확고한 리더십 부재가 비전 2030을 더욱 어렵게 하는 이유라고 재계는 입을 모은다. 중장기 전략의 속도 키를 쥐고 있는 이 부회장이 작년 8월 가석방됐지만 여전히 ‘취업제한’에 묶여 삼성전자 경영에 적극 나설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2021년 1월 4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4일 새해 첫 근무일을 맞아 평택 2공장의 파운드리 생산설비 반입식에 참석한 후, 반도체부문 사장단과 중장기 전략을 점검했다. [사진=삼성전자]

시장 점유율 낮아진 삼성전자...TSMC·퀄컴 등 시장 확대와 대조적
비전 2030 선포 이후 3년이 지난 현재 각종 반도체 시장 지표는 삼성전자의 성적표가 신통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모바일AP 시장 점유율(매출 기준)은 2019년 12.0%에서 2020년 9.7%, 지난해 6.6%로 하락했다. 이 분야 강자 퀄컴의 점유율이 2019년 34.8%에서 지난해 37.7%로, 애플은 22.9%에서 26%로, 미디어텍은 12.7%에서 26.3%로 각각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파운드리 사업에서도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2019년부터 18% 안팎에 정체돼 있지만, 업계 1위 TSMC는 꾸준히 50% 이상을 유지하면서 점유율을 계속 늘려나가고 있다. 후발 경쟁사인 인텔도 지난해 3월 파운드리 사업 재개를 선언했고, 최근 1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파운드리 사업부 매출만 분리한 실적(2억8300만 달러)을 처음 공개하며 시장 확대의 야심을 드러냈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올해 TSMC의 점유율이 작년보다 3%포인트(p) 상승한 56%를 기록하고, 삼성전자는 작년보다 2%p 하락한 16%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EUV전용 화성 ‘V1 라인’ 전경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반도체 매출 7할이 메모리...시장 더 큰 시스템반도체 확대 절실
삼성전자는 현재 메모리반도체에 편중된 반도체 사업 구조를 보이고 있다. 반도체는 크게 정보를 기억하는 메모리반도체와 데이터를 연산·제어·처리하는 시스템 반도체로 나뉘는데, 삼성전자는 전체 반도체 매출의 70% 이상이 메모리반도체에서 나오고 있다. 실제로 올해 1분기 삼성전자의 전체 반도체 매출 26조9000억원 중 메모리반도체 매출은 74.8%(약 21조원) 규모였다.

메모리반도체의 단점은 시스템반도체보다 업황 변동성이 크다는 점이다. 가격 상승과 하락이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그로 인해 삼성전자의 반도체부문 실적도 업황에 따라 요동쳤던 게 사실이다. 메모리반도체 '슈퍼 호황기'였던 2018년 삼성전자는 연간 58조9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역대 최대 실적을 냈지만, 이듬해 메모리 업황이 급속히 나빠지자 1년 만에 영업이익이 반 토막(27조8000억원) 나는 경험을 한 바 있다.

때문에 삼성전자는 비전 2030을 통해 시스템반도체 사업 역량 강화에 나서고 있다. 메모리 업황에 따라 전체 실적이 좌우되는 리스크를 줄이고, 안정적 수익을 기반으로 하는 한편 시장의 파이를 키우기 위해서다.

시장 규모 면에서 중앙처리장치(CPU)와 모바일 AP, 이미지센서 등의 시스템반도체 시장이 메모리반도체 시장보다 훨씬 더 크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시스템반도체 시장 규모는 4021억 달러(약 506조원), 메모리반도체는 1538억 달러(약 194조원) 수준이었다. 여기다 인공지능(AI), 메타버스, 6G(6세대 이동통신) 기술 확산에 따라 고성능 시스템반도체 시장은 장기적으로 계속 성장할 전망이다.
 

삼성전자가 올해 1월 그래픽 기능을 대폭 강화해 출시한 프리미엄 모바일AP ‘엑시노스 2200’ [사진=삼성전자]

반도체 M&A 전문가 영입…이재용 사면 불허, 가시밭길 불가피
삼성전자는 선단 공정 확보, 생산능력 확장, M&A 전문가 영입 등으로 시스템반도체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한 분위기 쇄신에 힘쓰고 있다. 최근 1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 콜을 통해 상반기 내 3나노(㎚·10억분의1)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공정 양산을 세계 최초로 시작한다는 계획에 변함이 없음을 밝혔다.

시설 투자도 계속 확대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시설투자액은 역대 최대 규모인 48조2000억원이었는데 이 중 반도체 부문 시설투자가 90.3%(43조6000억원)를 차지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시설 투자액은 2019년 22조6000억원, 2020년 32조9000억원, 지난해 43조6000억원으로 매년 증가했다.

특히 삼성전자가 예고한 시스템반도체 분야 투자가 늘었다. 삼성전자는 2019년부터 2030년까지 총 171조원을 시스템반도체 분야에 투자한다는 계획인데 단순 계산하면 연평균 14조3000억원 규모다.

이 가운데 2020년 착공한 삼성전자 평택 3라인(P3)은 올해 하반기까지 완공해 본격적인 생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현존하는 단일 반도체 라인 가운데 세계 최대 규모인 P3에서 삼성전자는 5나노 로직 제품을 비롯한 최첨단 공정의 반도체를 생산할 계획이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의 20조원 규모 파운드리 공장도 올해 상반기에 착공, 오는 2024년 하반기 생산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에 더해 유망 반도체 기업을 인수·합병(M&A)해 단숨에 사업 구도의 전환을 꾀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를 위해 반도체 M&A 전문가도 영입했다.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의 반도체 M&A 전문가 마코 치사리가 주인공이다. 그는 인피니언의 사이프러스 인수(100억 달러 규모), AMS의 오스람 인수(46억 달러 규모), 마벨의 아콴티아 및 아베라 인수 등 다수의 대형 반도체 M&A 거래를 성사시킨 바 있다.

앞서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DX부문장)은 지난 1월 CES 2022에서 "여러 사업 분야에서 (M&A를) 검토 중이며 조만간 좋은 소식이 나올 것 같다"고 언급한 바 있다. 업계에선 삼성전자의 이번 치사리 영입이 반도체 기업 M&A 추진과 연관돼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래픽=아주경제 그래픽팀]

문제는 총수 부재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 공장 하나를 짓는 데 수조원이 들어가는데 이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삼성전자 내부엔 사실상 이 부회장뿐이다. 삼성전자 임원의 전결 한도는 사장이 3000억~4000억원, 대표이사가 1조원가량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현재 가석방 상태로 경영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잠행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지난해 1월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뒤 같은 해 8월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오는 7월 29일 가석방 형기가 만료되지만,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에 따라 향후 5년간 취업 제한을 받는다.

재계 관계자는 “사면이 되지 않고서는 취업 제한을 피할 방법이 없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말 사면에서 이 부회장을 배제한 만큼 총수 부재에 따른 삼성전자의 정체기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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