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영의 재팬 플래시] 日 '후쿠시마' 극복의 기나긴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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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영 前뉴시스 도쿄특파원·日와세다대 국제관계학 박사
입력 2022-03-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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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영 전 뉴시스 도쿄특파원·일본 와세다대 국제관계학 박사



21세기 들어 일본의 최대 사건을 꼽으라면 단연 2011년 도호쿠(東北) 지역에서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과 그에 따른 후쿠시마 원전 사고일 것이다. 이것이 일본에 끼친 정치·경제·사회적 충격과 일본 국민이 받은 정신적 상처는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 사회는 ‘후쿠시마’의 터널을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 어쩌면 그것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이미 일본 사회의 근본을 일정 부분 변화시켜 놓았는지도 모른다. 일본 현대사를 후쿠시마 이전 시대와 후쿠시마 이후 시대로 가를 수 있을 만큼 말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졌을 때 필자는 일본 유학 중으로, 그 과정을 일본 속에서 지켜보았다. 또 한국 언론의 특파원으로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를 비롯해 복구 현장을 취재하기도 했다. 일본 국민과 함께 생생하게 ‘후쿠시마’를 보고 느끼며 그 여파를 체험하면서 일본의 다양한 측면을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11년 전인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이 일본 도호쿠 지방 태평양 연안 일대를 강타했다. 일본 관측 사상 가장 강력한 지진이었고, 1900년 이후 세계에서 네 번째로 격렬한 지진이었다. 진원은 미야기현 오시카반도 동남쪽 약 130㎞, 해저 24㎞ 지점이었는데, 이로 인해 높이 40m의 쓰나미가 치솟은 것으로 추정됐고, 일본 해안에 밀려들 때 파고도 최고 14~15m에 달했다.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 등 도호쿠 3개 현의 해안 지대가 순식간에 쓰나미의 습격을 받았고, 그 참혹하고 끔찍한 모습은 재난 영화의 장면들처럼 생생하게 전 세계에 중계됐다. 부두에 정박해 있던 배들이 종이배처럼 뒤집히고 해안가 집들은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자동차들이 바다에 둥둥 떠내려가고 사람들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도저히 현실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모습들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충격적 비극이었지만, 그나마 이건 자연재해라고 자위라도 할 수 있었다. 일본 사회를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은 결정타는 그다음이었다. 후쿠시마 원전들이 차례로 침수된 것이다. 비상용 발전기마저 정지되는 바람에 냉각장치가 멈추고 노심을 식혀주어야 할 냉각수가 차단됐다. 결국 핵연료가 용융(멜트다운)하고 수소폭발에 의해 원자로의 콘크리트 격벽이 무너지면서 대규모 방사성물질이 누출되었다. 1986년 소련 체르노빌에 이은 인류 역사상 두 번째 대규모 방사능 유출 사고였다.

참사 규모 못지않게 일본을 경악시킨 것은 원전 사고의 원인과 대처 과정이었다. 그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인재(人災)’였던 것이다. 원전을 지키던 방파제는 해일 최대 높이 6.1m를 상정해 만들어 초대형 쓰나미에는 무용지물이었다. 사실 후쿠시마 원전을 운영하던 도쿄전력은 2008년 후쿠시마에 최대 15.7m의 쓰나미가 올 가능성에 대해 예측했지만 수백억엔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방파제 증축을 포기했다. 비상 발전설비는 바다와 가장 가까운 건물의 지하에 설치하는 어처구니없는 설계 실수도 드러났다. 냉각수가 차단돼 원자로 온도가 올라가면 바닷물이라도 투입해 열을 식혀야 하는데 도쿄전력은 원자로를 못 쓰게 될 걸 우려해 주저하다 바닷물 투입 타이밍을 놓쳐 수소폭발을 부르고 말았다.

‘후쿠시마’에서 보인 인간의 실수와 허둥지둥은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이 와중에 도쿄전력이 정부에 정확하고 신속한 보고를 하지 않은 정황도 속속 드러났다.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던 위기관리 시스템이 원전과 함께 한순간에 붕괴하는 현장이었다.

아사히신문 주필을 지낸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는 후쿠시마 사고 후 민간 차원의 검증위원회를 주도해 사고 원인과 정부의 대처 과정 등을 치밀하게 조사해 사고 1년 뒤인 2012년 3월 조사보고서를 작성했고 이를 토대로 ‘후쿠시마 원전 대재앙의 진상’이라는 책을 냈다. 여기에는 당시 일본 정부가 도쿄와 수도권 인구 3500만명을 피난시킨다는 극비 시나리오를 작성한 것으로 돼 있다. 또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마저 사고 직후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미국이 “도대체 지휘소가 어딘지 모르겠다”고 개탄하는 이야기도 실려 있다. 후나바시는 “일본은 관료 조직이든 민간기업이든 부문별·부서별로는 최고의 해답을 잘 찾아내지만, 그것을 모아 총체적인 해결책을 끌어내는 데는 서툴기 짝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후쿠시마’가 일본의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내 버린 것이다.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가 나기 1년 6개월 전인 2009년 8월 총선에서 야당 민주당이 압도적인 의석 확보로 자민당의 54년 집권을 끝내는 역사적인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에서 보인 형편없는 위기관리 능력으로 간 총리가 사임한 데 이어 2012년 12월 총선에서는 자민당에 참패하고 아베의 최장기 집권의 길을 열어주었다. 이후 일본 야당은 사분오열되면서 재집권의 길은 시야에서 아득히 멀어져 갔다. ‘후쿠시마’는 일본 정치지형에서 꿈틀대던 변화의 저력마저 송두리째 뽑아버린 것일까.

아베 정권은 일본의 ‘후쿠시마’ 극복 노력과 그 성과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2020년 도쿄올림픽 유치에 총력을 기울여 성공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개최가 1년 연기되는 등 온갖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그것은 마치 ‘후쿠시마’ 극복의 길이 아직도 요원함을 상징하는 듯했다.

실제로 ‘후쿠시마’는 아직도 신음 중이다. 사고 원전 주변은 아직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금단의 땅이다. 못 쓰게 된 원자로를 안전하게 처리하는 데는 앞으로 수십 년이 더 걸릴지도 모른다. 사고 지역 주민들의 귀향도 미완으로 남아 있다.

원자로를 식히는 데 사용하다 오염된 바닷물을 희석해 바다에 방류하는 문제도 한국 등의 저항에 부닥쳐 있다. 사고 지역의 농수산물에 대한 일본 국내외의 꺼림칙한 시선도 말끔히 씻어내는 데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어쨌든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일본 정부의 힘겨운 노력은 앞으로 원전 자체를 어떻게 다루어 나갈 것인지에 모일 것으로 보인다. ‘후쿠시마’의 충격이 워낙 컸던 탓에 일본 국민의 원전 반대 여론은 60~70%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현실을 마냥 외면할 수만도 없을 것이다.

일본의 에너지 자급률은 2018년 기준으로 11.8%로 OECD 35개 회원국 중 34위다. 한국은 16%로 33위다. 일본이나 한국은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되는 석유, 석탄, 천연가스로 전력을 생산해야 한다. 후쿠시마 이후 일본의 원자력 발전소 가동이 중지되면서 화력발전 비율은 더욱 높아졌다. 2018년 화석연료 의존도는 85.5%로 2010년에 비해 4.3% 늘었다. 원전이 중단되면서 전기료도 올라 그렇지 않아도 침체한 경제의 발목을 더욱더 조였다.

결국 일본 정부는 2018년 에너지 기본계획에서 원자력을 ‘기간(基幹) 전원’의 하나로 삼고 2030년까지 전체 전력의 20~22% 수준까지 높이겠다고 결정했다. 후쿠시마 사고가 나기 직전 해인 2010년 원자력은 전체 전력의 25.1%였다. 2020년 2월 기준으로 일본에서 가동 중인 원전은 9기로, 전체 전력 생산의 6% 정도인데 이를 20% 수준까지 끌어올리려면 원전 30기가 가동돼야 한다. 탄소중립을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원전 확대는 불가피하다.

이런 가운데 시마네현 마쓰에시의 우에사다 아키히토(上定昭仁) 시장이 지난 2월 이 지역의 시마네 원전 2호기 재가동을 용인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미 지난해 9월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안전 심사를 거쳐 재가동을 승인한 상태였다.

특히 시마네 원전 2호기 재가동 문제가 주목받는 것은 후쿠시마 제1원전과 같은 ‘비등수형’이기 때문이다. 비등수형은 핵분열로 물을 끓여 그 증기로 발전기를 돌리는 원리다. 체르노빌도 비등수형이었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총 54기의 원전 중 재가동을 승인한 9기는 모두 가압형 원전으로, 시마네 원전 2호기가 가동하게 되면 후쿠시마 사고 후 처음 가동하는 비등수형 원전이 된다. 원전을 둘러싼 일본 내 논란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후쿠시마’ 충격은 세계로 퍼져나갔다. 원전이 전체 발전량의 70%를 차지하는 프랑스는 그 비중을 50%까지 낮추겠다고 했지만 최근에는 다시 원전 확대로 돌아섰다. 독일은 재빨리 탈원전을 선언하고 러시아의 천연가스 수입에 의존하다가 우크라이나 사태로 곤경에 처하게 됐다.

아마도 한국은 ‘후쿠시마’의 비극 속에서 세계에 ‘웃음’을 준 유일한 국가가 아닐까 싶다. 한국 대통령은 임기 시작과 함께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1368명이 사망했다”고 일본도 깜짝 놀랄 소식을 전하며 돌연 탈원전을 선언했다. 그러고는 5년 임기의 끝자락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를 거론하며 “원전을 향후 60년간 주력 기저 전원으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며 원전 가동 확대를 서두르라고 다그쳤다. ‘후쿠시마’로 온갖 시련을 겪고 있는 일본이 정작 한국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짓고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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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박스)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피해 규모
 

동일본 대지진은 지진으로 인한 거대한 쓰나미가 도호쿠 지역의 해안 도시들을 덮치면서 피해가 속출했다.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사망자는 1만5899명, 실종자는 2526명으로 파악됐다. 완파된 건물은 12만1992채, 반파된 건물은 28만2920채에 달했다. 일본 정부는 피해 규모를 16조9000억엔(약 170조5000억원)으로 추산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국제원자력 사고등급(INES) 기준으로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같은 최고 등급(7)이다. 못 쓰게 된 원자로를 없애는 폐로 작업은 30년 후인 2051년에 끝낸다는 목표다. 원전 주변에는 용융된 핵연료 찌꺼기를 식히는 냉각수에 빗물과 지하수 등이 유입돼 섞이면서 고농도 오염수가 계속 생기고 있다. 도쿄전력은 하루 140t씩 불어나는 이 오염수를 핵물질 정화 장치로 처리한 뒤 탱크에 담아 보관하고 있는데, 무한정 보관할 수 없어 바닷물에 희석해 바다에 방류할 계획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수습에는 하루 평균 4000여 명이 투입되고 있으며 수습 비용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이라 정확한 추산도 어렵다. 폐로 과정에만 8조엔(약 83조원)이 드는데, 주민 피해 배상, 오염물질 저장시설 정비 등 총비용이 21조5000억엔(약 224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추산부터 최고 81조엔(약 840조원)에 달할 수 있다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다.
 

 

조윤영 필자 주요 이력

△이화여대 북한학 석사 △일본 와세다대 국제관계학 석·박사 △뉴시스 도쿄특파원 △<北朝鮮のリアル(북한의 현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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