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영의 재팬 플래시] 아베노믹스 對 기시다노믹스, 日경제의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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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영 前뉴시스 도쿄특파원·日와세다대 국제관계학 박사
입력 2022-02-04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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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영 전 뉴시스 도쿄특파원·일본 와세다대 국제관계학 박사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간에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지금의 기시다 내각 출범에는 아베의 막후 지원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래서 현 기시다 정권을 두고 두 차례에 걸친 아베의 집권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에 이은 ‘아베 4기 내각’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기시다와 아베는 같은 자민당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정치적 성향이 다른 파벌이다. 아베가 우파라면 기시다는 중도에 가깝다. 따라서 기시다가 집권 후에는 아베와 거리 두기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했다. 작년 10월 집권한 기시다 총리가 취임 후 첫 시정방침 연설 등을 통해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자 아베의 견제도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흥미진진한 형국이 펼쳐지고 있다.

기시다는 지난해 집권 과정 때부터 자신의 경제정책으로 ‘새로운 자본주의’를 내세웠다. “역사적 규모의 경제·사회 변혁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새로운 자본주의’를 통해 세계의 흐름을 주도해 가겠다”는 등 거창한 수사가 동원되었는데, 핵심은 ‘성장과 분배’ 둘 다 잡겠다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논리다. 적극적인 임금 인상으로 중산층을 두껍게 하고, 소비 활성화로 디플레이션을 극복해 성장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일본판 ‘소득주도성장론’을 연상시킨다.

기시다 총리는 집권 직후 지식인을 중심으로 ‘새로운 자본주의 실현 회의’를 결성했다. 지난달 18일 세계경제포럼(WEF)이 온라인으로 주최한 ‘다보스 어젠다 2022’ 특별연설에서는 “‘새로운 자본주의’를 통한 일본 경제 부흥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밝히는 등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의 구상을 역설하고 있다. 기시다는 직접 시사 월간지 ‘분게이슌주(文藝春秋)’ 2월호에 '내가 지향하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그랜드 디자인'이라는 제목으로 기고를 하기도 했다. 지난달 21일 미·일 화상 정상회담에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자신의 ‘새로운 자본주의’를 설파해 바이든에게서 “나의 대선 공약을 듣는 것 같다”는 맞장구를 받기도 했다.

지난달 17일 일본 국회에서 행한 기시다의 시정방침 연설도 초점은 ‘새로운 자본주의’에 모였다. 그리고 새해 예산을 논의하는 일본 국회(일본 회계연도는 4월 1일부터 이듬해 3월 31일까지)에서는 지금 ‘새로운 자본주의’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새로운 자본주의’는 도대체 어떤 경제정책 방향을 추구하고 있고,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에 얼마의 예산을 배정하고 있는지를 따져 보고 있다. 그러나 의원들은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한다.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는 지난달 26일 기시다 총리를 비롯한 전 각료가 출석한 가운데 사흘에 걸친 대정부 질의를 끝냈다. 사흘 동안 여야 의원 34명이 질의에 나섰는데, 이 중 12명이 ‘새로운 자본주의’에 관해 물었다. 아사히신문은 당시 예산위원회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총리의 간판 정책인 ‘새로운 자본주의’가 무엇인지를 놓고 많은 시간이 허비됐다. 야당 측에서 그동안의 경제정책이 어떻게 바뀌는지 이념적이 아닌 구체적으로 알려 달라고 요구하는데도 총리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각료 경험이 있는 자민당 의원조차 ‘(정부가) 무엇을 하고 싶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토로한다.”(아사히신문 1월 27일자)

‘새로운 자본주의’는 대담한 금융정책과 기민한 재정정책, 성장전략 추진 등을 담고 있어 큰 골격에서는 기존의 아베노믹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세 가지는 아베노믹스의 축을 이루는 이른바 ‘3개의 화살’이다. 그런데도 아베는 직접 반격에 나섰다. 그것도 직접 신문에 칼럼을 썼고 게다가 한 번이 아니라 아예 연재를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1월 19일에 첫 포문을 열었고, 26일에도 이어졌다. 일본경제신문(닛케이)에 연재되는 아베의 칼럼은 일본의 정치·경제·대외관계 등 국정 전반에 관해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밝히는 형식이다. 그러나 첫 회부터 기시다 내각에 대한 견제 심리를 숨기지 않고 있다.

아베는 첫 칼럼 서두에서 기시다 내각 출범 직후 실시된 중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예상외로 압승을 거둔 데 대해 이렇게 자평했다. “총선거 직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내가 지원한 다카이치 사나에(전 총무상)가 선전해 정조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보수 부동층을 집결할 수 있었던 것이 컸다.” 기시다 정권이 누구 덕에 이 정도의 기반을 잡았는지 잊지 말라는 은근한 경고로 들리지 않을 수 없다.

아베는 이어 자신이 말하고 싶은 본론으로 들어간다.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 공격 타깃이다. “(앞으로) 정권 운영의 열쇠가 되는 것이 ‘새로운 자본주의’의 구체화일 텐데, 지금 이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기시다씨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목표로 한다’고 하고 있지만, 분배에는 기초 자금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서 아베는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내 정권에서 추진해 온 경제정책 ‘아베노믹스’ 이외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과감한 금융정책, 기동성 있는 재정 지출, 그리고 규제 완화 등을 통한 성장전략으로 경제를 성장시켜 나가야 한다. (기시다의 경제정책이) 요리 자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양념을 어떻게 할 것인가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베노믹스라는) 이 기본 축을 바꾸어서는 안 된다.”

기시다의 ‘새로운 자본주의’ 추진 전략으로는 과학기술 연구에 대한 과감한 투자, 디지털 전원도시 구상에 의한 도시와 지방의 격차 해소, 민간 부문의 분배 강화, 교육 지원 강화 등이 제시되고 있지만,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가시지 않는다. “기시다 총리 자신도 모르는 것 아닌가?” “당장은 텅 빈 ‘새로운 자본주의’”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다만 ‘새로운 자본주의’에서 강조되는 몇 가지 캐치프레이즈(구호)가 아베노믹스와 차이를 분명하게 부각하고는 있다. 가령 “분배 없이 다음의 성장은 없다”라거나 “임금 인상이 경제성장을 촉진한다” “신자유주의의 전환” 등이다. 아베는 작년 12월 26일 유명 TV 프로에 나와서는 “‘새로운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적 의미로 해석되면 시장도 마이너스로 반응한다”면서 ‘아베노믹스’를 바꾸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일본 내에서 찬반 양론이 부닥친다. 아베노믹스가 실질적인 임금 인상이나 양극화 극복에는 사실상 실패했다는 관점에서는 분배를 강조하는 새로운 시도를 환영한다. 노조는 물론 지지하는 쪽이다.

그러나 일본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분배의 편중이 아니라 생산성의 침체라는 관점에서는 비판론이 거세다. 임금 인상이 기업의 수익성을 악화시켜 결과적으로 오히려 임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 언론에는 “바닥불황으로 몰아넣는 ‘기시다노믹스’의 위험한 참모습” “‘새로운 자본주의’의 무서움을 아시나요” 같은 제목의 전문가 기고문이 등장하기도 한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새로운 자본주의’를 내세운 ‘기시다노믹스’가 등장하면서 ‘아베노믹스’와 충돌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은 그만큼 일본 경제가 아직도 ‘잃어버린 10~30년’의 긴 터널을 제대로 벗어나지 못한 채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는 과정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일본의 고뇌는 최근 한국에서도 화제가 됐던 노구치 유키오(野口悠紀雄)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의 고백에서 절절해진다. 그는 언론 기고문에서 “2030년쯤 일본은 어떤 기준을 적용해도 선진국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될 것”이라며 “20년 뒤 일본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한국에 두 배 이상 뒤처질 것이며, G7 회원국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바뀌어도 일본은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우리는 과연 일본의 이런 모습을 마냥 즐길 수 있는 처지인가. 일본의 현재 모습에 우리가 겪고 있는 여러 문제가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외면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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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가 어느정도 길래? 

노구치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는 일본의 손꼽히는 원로 경제학자다. 도쿄대 응용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대장성(현 재무성) 관료로 들어갔다가 미국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일본 와세다대학 등에 재직하며 100여 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그런 그가 일본의 주요 경제 전문지에 잇달아 실은 기고문을 통해서 지적하는 일본 경제의 현황과 전망은 우울하기 그지없다. 일본의 1인당 GDP는 2015년부터 OECD 회원국(38국) 평균치 이하로 떨어졌다. 2020년 구매력평가 기준 1인당 GDP는 일본이 4만1775달러로 한국(4만3319달러)보다 뒤떨어졌다. 한국은 19위, 일본은 23위에 해당한다. 평균 임금도 한국이 4만1960달러로 일본(3만8515달러)을 앞섰다고 평가했다.

노구치 명예교수는 일본 경제가 이 모양이 돼버린 것은 근본적으로 기술 혁신을 이루지 못한 채 생산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전통적으로 일본의 최강기술로 꼽히는 자동차 분야마저도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 경제가 온통 잿빛만은 아닐 것이다. 오랫동안 축적된 일본의 기초과학 기술과 자본은 언제라도 경제 부활의 발판이 될 것이다. 1990년대 들어 일본의 경제 침체가 본격화한 것은 미국이 급팽창하는 일본의 경제력을 억제하기 위해 일본의 엔화 가치를 대폭 상승시킨 플라자 합의(1985년) 때문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제 미국은 중국과의 대결 등을 의식해 일본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일본 경제에 우호적 환경을 조성하려는 움직임을 가시화하고 있다. 한국이 주시하고 교훈을 얻어야 할 대목 아닐까.


조윤영 필자 주요 이력

△이화여대 북한학 석사 △일본 와세다대 국제관계학 석·박사 △뉴시스 도쿄특파원 △<北朝鮮のリアル(북한의 현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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