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신중국 이후 첫 모라토리엄 도시"…'지방 소멸' 우려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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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재호 특파원
입력 2022-01-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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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이룽장 허강시, 공무원 채용 취소 화제

  • 재정난에 회생절차 돌입, 도시급 첫 사례

  • 인구유출 속 경제 황폐화, 부동산 '직격탄'

  • "중앙교부금에 목매는 지방" 갈수록 심화

  • 習 지역 격차 해소 강조에도 회의론 비등

최근 극심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헤이룽장성 허강시의 시내 전경. 지역경제 악화로 부동산 시장이 차갑게 식은 가운데 아파트 한 채를 5만 위안(약 940만원)에 판다는 전단이 눈에 띈다. [사진=웨이보]

중국에서 처음으로 재정난을 이기지 못하고 모라토리엄(채무 지급 유예) 상황에 빠진 도시가 나왔다.

'석탄의 고장'이라고 불리는 헤이룽장성의 허강(鶴崗)시다. 

석탄 채굴에 의존하던 지역 경제가 쇠락하면서 인구가 빠져나가고 그로 인한 세수 감소로 재정난이 가중돼 인구가 추가로 유출되는 악순환의 덫에 빠진 결과다.

이 같은 위기에 직면한 지방정부가 한두 군데가 아니라는 게 더 큰 문제다. 헤이룽장성을 포함한 동북 지역 37개 도시 중 34곳이 인구 감소에 시달리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역 격차 해소를 입버릇처럼 외치지만 동서 간 혹은 남북 간 불균형은 갈수록 확대되는 모습이다. 

여기에 저출산과 고령화 악재까지 더해져 중국에서도 지방 소멸 현상이 가속화할 수 있는 우려가 제기된다.

◆"집 한 채에 600만원" 유령도시 된 허강 

지난해 12월 23일 허강시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당초 예정돼 있던 공무원 채용 전형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허강시 측은 "재정 중정(重整·재정비) 계획 실시로 재원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며 사정을 설명했다.

'재정 중정'은 파산 위기에 빠진 지방정부의 재정 건전성 개선을 위한 조치로, 법정관리 또는 기업회생과 비슷한 개념이다.

해당 지방정부가 떠안은 부채에 대한 이자 지급액이 전체 예산 지출의 10%를 넘어서는 등 재정난이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발동할 수 있다. 

재정 중정 절차가 개시되면 채무 상환 유예와 대환 자금 지원 등이 이뤄지는 대신, 전력·수도 등 민생과 직결된 항목 외에는 예산 지출이 제한된다. 

구체적으로는 △신규 투자 사업 중단 △기업 보조금 지원 중단 △인원·조직 축소 △출장·판공비 등 경비 절감 등이다. 

제일재경 등 중국 언론들은 "신중국 수립 이후 도시 규모의 지방정부에서 재정 중정이 이뤄지는 건 허강시가 처음"이라고 전했다.

앞서 2018년 쓰촨성 쯔양시 옌장구와 안웨현의 사례처럼 구(區)·현(縣)급 지방정부에서 재정 중정이 실시된 적은 있다. 

스정원(施正文) 정법대 교수는 "허강시는 재정 적자가 심각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공무원 채용을 취소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2020년 허강시의 예산 수입은 23억 위안에 그친 반면, 예산 지출은 수입보다 6배 많은 136억8000만 위안에 달했다. 적자를 메우기 위해 104억7000만 위안의 지방 교부금이 지원됐다.

재정난이 심화한 건 석탄 채굴에 기대 온 지역 경제의 쇠락 때문이다. 

이미 2011년 중국 국무원이 세 번째로 지정한 자원 고갈형 도시 25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폐광은 늘어 가는데 2·3차 산업이 성장하지 못한 탓에 많은 인구가 외지로 빠져나갔다. 2010년 105만8000명이었던 상주 인구가 2020년 89만1000명으로 10년 새 15.81% 감소했다. 

보통 65세 인구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로 분류되는데, 허강시는 이 비율이 16.45%로 집계됐다.

인구가 줄어들면서 세수 감소와 더불어 부동산 경기 침체도 심각해졌다.

2020년 기준 부동산 개발 투자는 2억5000만 위안으로 전년 대비 29.3% 급감했다. 

뉴펑루이(牛鳳瑞)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은 제일재경에 "허강시와 같은 수축형 도시는 부동산 거래가 원활치 않고 가격도 낮아 토지 관련 세수 역시 적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정보 업체인 안쥐커 홈페이지에서 허강시를 검색하면 '허빈난샤오구 62㎡형 방 2개짜리 매매가 5만5000위안' 등의 게시물이 수두룩하게 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로는 집값이 더 떨어져 3만 위안(약 562만원)짜리 매물까지 등장했다.

웨이보 등 주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허강시 배춧값 부동산'이라는 비아냥 섞인 키워드가 화제를 모으기 했다.
 

[그래픽=이재호 기자]

◆인구 줄고 빚은 늘어, 지방정부 위기 확산 

지방 소멸 위기가 허강시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발표된 제7차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동북 3성(랴오닝·지린·헤이룽장성)에 소재한 37개 시(市)급 이상 지방정부 가운데 2010~2020년 기간 중 인구가 증가한 곳은 선양·다롄·창춘 등 3곳뿐이었다.

허강시의 인구 감소폭은 그리 큰 편도 아니다. 헤이룽장성의 하얼빈과 치치하얼, 지린성의 쑹위안 등은 100만명 이상 급감했다.

헤이룽장성 쑤이화의 경우 전체 인구의 30%에 해당하는 170만명이 줄어들기도 했다.

인구 유출 못지 않게 지방정부를 옥죄는 건 재정 건전성 악화다. 중국수석경제학자포럼의 린차이이(林采宜) 부원장은 지난해 발표한 논문에서 2020년 기준 31개 성급 지방정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을 소개했다.

리스크 경계선인 100% 이하는 상하이(67%)와 광둥성(71%), 베이징(78%), 저장성(79%), 장쑤성(84%) 등 5곳이었다. 중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동부 연안 지역이 대부분이다.

이에 반해 서부의 칭하이성(506%)을 비롯해 헤이룽장성(355%)과 네이멍구자치구(305%) 등 12개 성은 200%를 웃돌았다.

빚더미에 올라앉은 지방정부는 중앙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웨카이증권이 중국재정연감과 중국세무연감 통계를 정리한 자료를 보면 2019년 기준 국가 재정에 대한 기여도가 플러스(+)였던 성급 지방정부는 9곳이다.

광둥성(8307억 위안)이 나라 곳간을 가장 많이 채워 줬고 이어 상하이(8202억 위안), 베이징(7310억 위안), 장쑤성(4091억 위안), 저장성(3274억 위안), 산둥성(2152억 위안) 등의 순이었다.

반대로 중앙으로부터 교부금을 가장 많이 받아 간 곳은 쓰촨성(2381억 위안), 헤이룽장성(2255억 위안), 허난성(2138억 위안), 신장위구르자치구(2085억 위안), 간쑤성(1924억 위안), 시짱자치구(1739억 위안), 구이저우성(1739억 위안) 등이다. 

시 주석은 다 함께 잘 살자는 '공동부유(共同富裕)'를 새로운 국정 어젠다로 제시하며 지역 격차 해소를 강조하는 중이다.

중국은 지난해 말 중앙경제공작회의를 열고 올해 거시경제 운용의 큰 그림을 그리면서 지방 재정에 대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회의는 "지방정부의 음성적 부채 증가를 막고 잠재적 리스크를 완화해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베이징 소식통은 "대도시는 상대적으로 자원이 풍부하지만 경제·산업·인구 모두 위축되고 있는 3·4선 도시들은 재정 악화가 불가피하다"며 "중국판 지방 소멸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커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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