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자본시장이 선도하는 게임 규칙의 변화는 이미 속도를 내고 있다. 이것은 시장 파이를 크게 키우는 동시에 분배도 잘하는, 선관의무를 충실히 지키는 수탁자의무·대리인 체제로 잘 전환하는 것이다. 자유 시장 원리에 네거티브·스마트 규제를 가미해 독점은 막아가면서 자율적으로 만들어가는 생물정치 시대를 의미한다.

기업은 사장의 그릇만큼 크고, 국가는 리더의 사상과 철학의 그릇만큼 발전한다. 그만큼 책임이 막중하다. 그 중심에서 환경·사회·지배구조(ESG)는 지속 가능성이라는 대전제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사회적 가치 측면(S)'을 중점적으로 살펴볼까 한다.
 
ESG 보고서를 공시·인증한다는 것은 이제 ESG가 시급한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인 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는 이미 ESG 인증을 의무화했다. 이들 국가 기업의 95% 이상이 ESG 인증을 하고 있다. 미국은 기업에 맡기고 자율적으로 만들어가자는 분위기가 대세였다. E에 중점을 두면서 환경 전문가가 주로 큰 역할을 하고, S와 G는 자율에 맡겨왔다. 그런데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ESG를 하는 척 위장하는 'ESG 워싱'을 어떻게든 방지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 금융위원회는 자사 2조원 이상인 코스피 상장사에 2025년까지 ESG 의무공시를 하도록 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ESG 경영·지속가능리포트를 만들어 운영 중이고, 금융위와 한국거래소는 자체적으로 ESG 통합정보플랫폼을 만들어 공개했다.

이달 초 국회는 경제·사회·환경 균형과 조화를 통한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 포용적 사회와 기후·환경 위기 극복을 위한 내용을 담은 '지속가능발전기본법'을 통과시켰다. 이런 흐름과 함께 인권정책기본법·중대재해처벌법·산업안전보건법·소비자기본법·개인정보보호법·독점규제 공정거래법과 표시광고 관련 법 등을 통해 ESG 법 집행은 더욱 강화할 것이다. 특히 ESG 허위·과장 공시와 관련해 소비자·투자자가 제기하는 소송도 증가할 전망이다.

ESG 가운데 S는 수탁자책임 정신(G)이 자리 잡혀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다. ESG는 큰 의미에서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말한다. 기업 이해관계자 중 돈을 들고 있는 투자자들이 '투자자 보호'의 하나로 ESG를 요구한다는 측면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원칙인 수탁자(기관투자가) 책임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한 정책 마련과 이해 상충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특히 선관의무·충실의무·이익향유금지·분별관리의무 등 최소한의 수탁자 책임 정신이 자리 잡혀야 자율적인 사회적 가치 실현이 가능하다.

ESG를 이끄는 자본시장에도 S 영역을 위한 생태계 조성이 시급하다. 다 같이 살아갈 수 있는 ESG 경제 모델은 대기업만 살아남는 것이 아닌 영세·중소기업도 함께 상생·공존(S)하며 혁신 기업을 만들어내는 건강한 기업 생태계다. 자본시장도 초기 작은 단계부터 생존이 가능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기업에도 힘의 불균형이 적용돼 약육강식·양극화가 나타난다. 영세한 기업은 초기 안전망과 기회의 장치가 필요하다. 한 예로 국내 소규모 사모펀드 시장은 지금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수탁업무를 하는 은행이 작은 사모펀드 회사는 받아주지 않는다. 설령 받아주더라도 8~10배에 달하는 수수료를 요구한다.

미국에는 이런 문제를 해소해주는 수탁 전문회사가 있다. 대표적인 곳이 US 트러스트(US Trust)·피듀셔리 트러스트(Fiduciary Trust)·시트코(Citco) 등이다. 공공성이 필요하다면 금융투자협회와 한국증권금융을 중심으로 수탁업무 역할을 하는 회사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아니면 시장 원리에 맡겨서 미국처럼 자유롭게 독립 수탁업무회사가 경쟁하는 것도 좋다.

이래야만 작은 사모펀드 회사들도 펀드를 만들 수 있고, 금융시장 약자(S)도 금융업을 할 수 있게 된다. 비로소 금융 창업가 정신(S)도 가능해진다. 또한 금융 투자자 보호는 두텁게 하되 사고가 터졌다고 자본시장을 무리한 규제로 막아서는 안 된다.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바라는 시대정신은 '사람과 공동체 중심 ESG'가 만드는 포용적 사회다. 기업과 민간이 자율적으로 만들어내는 민주주의 규범으로의 ESG, 네거티브·스마트 규제로 만들어 낼 지속 가능한 금융강국, 불평등에서 존엄성으로 전환한 공정하고 건강한 우리 금융·자본시장 모습을 그려본다.

더 욕심을 내자면 ESG가 제대로 역할을 해 우리 정치권까지 변하기를 기대해본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보여준 입법기관과 사법기관을 존중하며 지속적인 자기통제를 실천하는 '상호 관용의 규범'과 '제도적 자제'가 자리 잡혀서 말이다. 


박희정  미국 듀크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기업가정신 전공·워싱턴대 로스쿨 미국법 전공, 전 국회 정무위원장실 총괄 정책비서관, 법무법인 로고스 수석전문위원(미국법·금융·M&A·부동산·입법자문· ESG 부문), 파빌리온프라이빗에쿼티(PE) 고문, 국회 산하 한국조정협회 ESG위원장, 서울혁신파크 운영법인 미래도시환경연구원 특임연구위원, 한국M&A협회 전문위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우리은행

실시간 인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페이지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