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AI 시대 데이터, 뺏는 자가 내놓게 만드는 자의 것이다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중앙대학교 겸임교수 사진아주경제DB
김동영 한국개발연구원(KDI) 전문연구원·중앙대학교 겸임교수 [사진=아주경제DB]

데이터에는 숫자 이상의 것이 담겨 있다. 특히 플랫폼 비즈니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용자가 언제, 어디서, 어떤 조건에서 서비스를 선택했는지, 수요가 몰리는 시간대와 공급이 비는 구간은 어디인지 등 현장에서 실제 거래가 수십만번 반복되어야만 축적되는 '경험의 결정체'다. 동일한 데이터를 실험실에서 설계하거나 시뮬레이션으로 만들어낼 방법은 없다. 그래서 데이터는 대체 불가능한 자산이다. 아마존이 추천 알고리즘 하나로 전체 매출의 35% 이상을 창출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 알고리즘의 진짜 경쟁력은 코드가 아니라 수억 건의 구매·검색·이탈 데이터에 있다. 알고리즘은 공개할 수 있어도 그것을 작동시키는 데이터는 복제할 수 없다. 플랫폼 기업의 데이터는 오랜 시간 현장에서 쌓인 행동 패턴의 집합이며 그 자체로 핵심 경쟁우위를 구성한다.

문제는 이 자산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협력을 위해 공유한 데이터가 경쟁의 무기로 전용되거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정당한 가치로 거래되지 못하거나, 용도를 벗어난 형태로 활용되더라도 무형의 자산인 데이터는 그 가치를 지킬 방법이 없다. 공장 설비를 빌려줬다면 반납받으면 그만이지만, 데이터를 공유한 뒤에는 상대방의 서버에서 삭제됐는지조차 확인할 길이 없다. 이것이 데이터 거래가 여타 거래와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이다.
 
이 문제를 가장 일찍 자각한 곳이 유럽이다. 독일이 주도한 GAIA-X 프로젝트는 글로벌 플랫폼에 데이터가 집중되는 구조를 바꾸겠다는 선언이었다. 유럽 클라우드 시장의 66%를 미국 3대 기업이 점유하는 현실에서 유럽 기업의 데이터가 미국 법률의 적용을 받게 되는 구조적 종속을 끊겠다는 것이다. 핵심 원리는 '데이터 주권'이다. 데이터를 제공한 주체가 공유 범위, 접근 권한, 수익 배분 방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Catena-X는 이 원리 위에 세워졌다. BMW·벤츠·BASF 등 140여 개 기업이 참여하는 이 생태계에서는 각 기업이 데이터를 자사 서버에 보유한 채 필요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교환한다. 사용 목적과 범위는 표준화된 정책 코드로 자동 집행돼 약속을 벗어난 활용은 기술적으로 차단된다. 특히 중소기업의 데이터 통제권을 명시적으로 보호해 수직적 공급망에서 하위 부품사가 대기업에 데이터를 일방적으로 넘기는 비대칭을 제도적으로 약화시켰다. 물론 두 모델 모두 거버넌스의 비효율과 확산 속도의 한계를 노출하고 있지만, 통제권을 제공자에게 두는 설계 원리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다. 일본도 같은 인식에서 경제산업성 주도의 우라노스 에코시스템(Ouranos Ecosystem)을 구축하고 있다. 자국 기업의 데이터가 해외 서버에 유출되는 위험을 차단하면서 EU 배터리 여권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Catena-X와 상호연동하되 자국 기업의 통제권은 유지하는 전략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플랫폼과 입점업체, 대형 모빌리티와 가맹 운수업체, 제조 대기업과 협력 부품사 사이의 데이터 비대칭은 점점 깊어지지만, 데이터산업법(2022) 이후에도 B2B 거래에서 제공자의 통제권, 목적 외 사용의 차단, 사후 검증 가능성은 대체로 개별 계약의 몫으로 남아 있다. 한국형 데이터 거래 원칙은 거창한 제도가 아니라 누구의 데이터인지부터 분명히 적어두는 데서 출발한다.
 
이 사례들이 보여주는 교훈의 본질은 데이터를 강제로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내놓는 것이 유리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제공자의 통제권이 보장되고, 공유의 대가가 투명하게 돌아오며 목적 외 사용이 차단될 때 기업들은 비로소 자신의 데이터를 꺼내놓기 시작한다. Catena-X에 140여 개 기업이 참여하는 것은 강제가 아니라 인센티브의 결과다. 각자가 보유한 작은 데이터 조각들이 신뢰할 수 있는 규칙 위에서 결합될 때 어느 한 기업이 혼자서는 만들 수 없었던 가치가 탄생한다. 디지털 경제판 '오병이어의 기적'이다. 나만 먹으려고 음식을 숨겼을 때는 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의 물고기는 턱없이 부족해 보였지만, 모두 모인 빵과 물고기는 모두가 배불리 먹고도 충분했다는 일화다. 빵과 물고기가 오천개로 늘어난 것이 기적이 아니라 경직되고 숨겨 놓은 자원이 공개되도록 유인을 만들었다는 점이 기적이다. 개별 기업의 제한된 데이터가 안전한 거래 원칙 위에서 연결될 때 그 총합을 넘어서는 가치가 창출된다. 데이터를 강제로 빼앗는 쪽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내놓게 만드는 원칙을 먼저 세운 쪽이 생태계를 이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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