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정의 여행 in] 걷다, 머물다, 즐기다… 길위에서 만나는 빛고을 건축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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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광주 기수정 문화팀 팀장
입력 2021-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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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광주비엔날레 앞두고 시작…조성룡 등 국내외 건축가 11명 참여

  • 지하철 내부·공중화장실 등 일상이 무대…구도심 재생 새로운 모델 제시

광주는 민주항쟁과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도시다. '민주화의 성지'가 바로 이곳 광주다. 그래서인지 이곳을 생각하면 늘 마음 한 켠이 뜨겁고, 또 무겁다. '여행'이라는 설렘을 이곳 광주까지 품어올 수 없었던 이유도 그래서였으리라.

하지만 이제 '예향의 도시'로서의 광주, 그 속살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1995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광주비엔날레가 펼쳐졌고,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문화 수도' 공약에 따라 2015년 아시아문화전당이 문을 열면서 음악과 미술, 문학 등 다양한 예술이 꽃피운 고장이 아니던가. 
 

광주영상복합문화관 옥상에서 볼 수 있는 뷰폴리&설치작품 '자율건축'. [사진=기수정 기자]

◆도시, 예술로 채우다

광주에서 새로운 예술을 마주했다. 이름하여 '폴리(Folly)'다. 폴리는 본래의 기능을 잃고 장식적 역할을 하는 건축물을 뜻한다. 하지만 광주폴리는 약간 다른 성격을 지닌다. 공공공간 속에서 장식적인 역할뿐 아니라, 기능적인 역할까지 아우르며 도시재생에 이바지할 수 있는 건축물이 바로 광주의 폴리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개막을 앞두고 시작됐다. 

'역사의 복원'이라는 첫 주제를 안고 시작된 광주폴리에는 건축가 피터 아이젠먼과 매사추세츠공대(MIT) 건축대학장 나데르 테라니, 국내 건축가 조성룡 등 국내외 건축가 11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옛 광주읍성의 자취를 따라 총 11개의 폴리를 설치했다. 

광주의 새로운 시도는 호평을 받았고, 2013년부터는 비엔날레와 무관하게 문화형 도시재생사업 목적으로 추진됐다. 4가지 주제로 이뤄진 폴리 31개가 광주 전역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동구에만 19개의 폴리가 있다. 

광주 요금소(톨게이트)에 설치된 '무등의 빛'과 서구 아시아창작스튜디오에 설치된 '다이크로닉 웨이브: 빛과 바람의 대화' 등 일부 작품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구도심 동구에 집중적으로 설치된 셈이니, 구도심 동구만 다 돌아봐도 폴리 대부분을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심 보행로 한복판, 많은 이가 오가는 콘크리트 바닥이나 지하철 내부, 공중화장실이 모두 폴리의 무대가 된다. 주변 환경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곳곳에 작품이 설치돼 있다. 그만큼 광주 시민들의 일상에 녹아들었다. 건축 기행처럼 폴리를 따라 거니는 시간이 무척 흥미로운 이유다. 
 

도미니크 페로의 '열린 공간'. [사진=기수정 기자]

◆지나치지 말기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길목 곳곳에서 폴리를 마주하게 된다. 

먼저 조성룡 작가의 '기억의 현재화'. 이 작품이 설치된 광주 서석로 7번 길은 가장 많은 인구가 오가는 곳이다. '폴리'인 줄 모르고 지나치는 이도 부지기수다. 

볼록 솟은 콘크리트 언덕에 표현된 격자무늬 문양이 시선을 이끈다. 조성룡 작가가 예전 광주 읍성의 터를 형상화한 폴리다. 수평적인 공간에 돋움장치를 만들어 이곳을 지나는 모든 이가 발걸음의 속도를 늦추고, 한 번쯤 광주 읍성의 역사를 다시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작품이다. 

조성룡 작가는 "이 폴리를 통해 광주시민들이 가슴속에 품었던 추억을 회상하고, 잊힌 역사를 기억하길 바란다"며 "현재 광주의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기억의 현재화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또 다른 폴리가 있다. 도미니크 페로의 '열린 공간'으로, 1973년 이전 광주의 옛 시청이 있었던 곳에 자리하고 있다. 

도미니크 페로는 사거리에 지역민의 다양한 활동을 끌어낼 열린 공간으로서 폴리를 제안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한국 고전 건축물의 나무기둥이나 누각, 처마에서 콘셉트를 가져왔다. 현대 상업지구와 그 거리 속 일상의 생기를 표현하기 위해 포장마차의 구조를 활용했다. 
 

광주 서석초등학교 앞에 설치된 네덜란드 건축가 위니 마스의 폴리 '아이 러브 스트리트'. [사진=기수정 기자]

◆이 길, 사랑하길 

이번엔 학교로 간다. 정확히는 학교 앞 폴리를 만나러. 서울로 7017을 설계한 네덜란드 건축가 위니 마스의 폴리 '아이 러브 스트리트'다.

광주 최초의 근대식 공립 소학교인 '서석초등학교' 앞 110m에 달하는 길에 들어선 '아이 러브 스트리트'는 길바닥에 알파벳 'I LOVE'를 나무와 잔디, 트램펄린, 음악분수 등을 적절히 활용해 재미있게 표현했다. 

'E' 옆에는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대형 칠판을 설치했다. 작품 시작점에 놓인 노란색 계단은 학교와 폴리 전체를 조망하는 최고의 전망대가 돼 주는가 하면, 시민들이 쉬어가는 아늑한 쉼터도 돼 준다. 

계단 위로 올라서니 작가가 표현한 그것이 한눈에 담긴다. 옆에는 교문 안팎을 넘나드는 아이들의 환한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작품도 가슴 한 켠을 훈훈하게 한다. 

폴리가 들어선 후 이 길은 아이들에게는 놀이터로, 광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인기 촬영 명소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광주영상복합문화관 옥상에 조성된 뷰폴리&설치작품 '자율건축'. [사진=기수정 기자]

◆예술 옷 입은 정상 

광주영상복합문화관 옥상에도 폴리가 있다. 뷰폴리&설치작품 '자율건축'이다. 전망대 폴리로 불릴 정도로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이 장쾌하다. 

'체인지(CHANGE)'라고 적힌 철제 구조물이 눈길을 끈다. 마치 업체 광고를 연상케 한다. 

힘을 주어 돌리면 문구가 회전한다. 어떤 방향으로 돌려도 색깔만 바뀔 뿐 '체인지'라는 문구는 그대로다. 구조물 뒤 분홍색과 노란색이 뒤섞인 철골 구조물은 인기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작품 안쪽을 통과하면 앉아서 무등산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하나로 연결된 2개의 구조물은 한국 건축가 문훈과 독일의 미디어 아트 그룹 리얼리티즈 유나이티드의 팀 에들러&얀 에들러가 공동 작업했다. 

광주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는 폴리지만 '폴리 투어'를 염두에 둔다면 하루 꼬박 정성을 쏟아야 한다. 광주 폴리 누리집에 게재된 폴리 지도를 따라가면 조금은 수월하게 폴리 투어를 즐길 수 있다.

'폴리'를 마주하는 것만으로 광주 여행은 퍽 알차다. 우리의 기억 속에는 5월에 머물렀던 광주는 사계절 예술적 감성을 자극하는 명실상부 문화·예술 도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깨닫는 시간이 되리라.

머릿속 광주는 이렇게 각인될 것이다. 머무는 내내 예술적 감동이 가슴을 적시고, 이로 인해 소녀처럼 설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여행지가 바로 광주라는 것을. 
 

조성룡 작가의 폴리 '기억의 현재화'. [사진=기수정 기자]

뷰폴리에서 바라본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경. [사진=기수정 기자]

전망대 폴리로도 불리는 뷰폴리&설치작품 '자율건축'. [사진=기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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