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녁의 참사람' 저자가 읽는 류영모 <다석일지>의 비밀(1) 효신관기(孝神觀記)를 읽는 감동

[2021년에 출간한 다석 류영모 평전 '저녁의 참사람']



지난 8월, 이 땅의 큰 스승 류영모 선생이 하늘로 솟난 지 40년 만에 그의 삶과 사상을 새롭게 정리한 <다석 류영모 평전 - 저녁의 참사람>이 출간되었지요. 수제자 박영호 선생의 감수를 받으며, 2년에 걸쳐 연재한 시리즈물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를 모본(母本)으로 삼았습니다. 저는 이 책을 펴낸 저자이자 아주경제 논설실장인 이상국입니다. 평전이 나온 이후, 기대 이상으로 많은 이들의 관심과 호평을 받은 바 있습니다.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한국의 글로벌한 면모들 가운데서, 독창적인 한국의 사상적 성취 또한 이제 제대로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주셨지요. 이런 격려에 힘입어 평전 출간 직후부터, 류영모의 진면목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다석일지(1956~1974)에 담긴 시편(詩篇)을 재해석하고 이를 토대로 다석사상을 규명하는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그중에서 <저녁의 참사람>에 충분하게 담기지 않은, 다석의 통찰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 작품을 찾아 해설과 함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옷깃을 여미며 날마다 살피고 탐구한다는 뜻을 담아 '다석일지의 비밀'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필자 주]


 

[다석 류영모(오른쪽)와 제자 함석헌.]



▶ 효신관기, 다석의 신효(神孝)사상을 담은 기록

1958년 5월 2일, 68세의 류영모는 '효신관기(孝神觀記)'를 썼다. 다석일지에 담긴 이 귀중한 기록은 아쉽게도 지금껏 제대로 음미되지 않은 느낌이 있다. 효신관기는, 유학의 효(孝)사상을, 신효(神孝)사상으로 확장한 사상적 혁명을 담은 다석의 고유한 신관(神觀)이다.

당시 논어를 깊이 캐물으며 읽고 있던 류영모는, 공자의 생각이 추상적인 인간의 도리를 다루고 있는 게 아니라 신에게서 부여받은 '얼'을 부양하는 구체적인 길을 가리키고 있다고 보았다. 공자가 말한 효는 단순히 인간과 인간 사이의 윤리가 아니라, 신과 인간을 결속하는 신-인(神人)의 윤리임을 포착한다. 그 통찰을 기록으로 남겨놓은 것이 '효신관기'라 할 수 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효(孝)는 신과 인간 사이의 원형적인 효를 '사회 통합'의 형식으로 활용한 것이라고 보았다. 이 생각은, 류영모가 공자의 생각을 넘어서서 효(孝)의 근원적 본질을 추구한 결과이다. 

효경(孝經)은 공자가 제자인 증삼에게 효를 설명하는 형식으로 저술된 경전이다. 당나라 현종은 여러 가지의 효경을 정리하여 '어주(御註)효경'으로 반포하기도 했다. 원나라 시대의 동정(董鼎)은 <효경대의>를 펴냈다. 우리나라에서도 효경은 신라와 고려 때까지 유학교육의 입문서였다. 주자학이 전래되면서 '소학'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효경의 첫 장은 '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라는 문자로 시작한다. 신체와 머리카락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손을 대거나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 몸을 일으켜 도를 행하고 이름을 후세에 날려 부모를 두드러지게 하는 것이 효의 마무리이다. 효경은, 효의 실천방법으로, 봉양(奉養, 부모를 잘 모시는 것), 양지(養志, 부모의 뜻을 헤아려 기쁘게 해드리는 것), 공대(恭待, 표정을 부드럽게 하여 부모를 편안하게 하는 것), 불욕(不辱, 부모를 욕되지 않게 하는 것), 혼정신성(昏定晨省, 저물면 부모의 잠자리를 봐드리고 날이 밝으면 문안인사를 하는 것)과 같은 것들을 제시하고 있다.

▶ 유가의 효경을 업그레이드한 '신효경(神孝經)'

류영모는 부모에 대한 공경과 예법을 강조한 효경을 신효경(神孝經)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효신관기'는 그런 생각을 풀어낸 '류영모 신효경(神孝經)'이라 부를 수 있다. 우선 원문을 한번 읽어보자.

心身父母天地神明은 受之上帝니
심신부모천지신명은 수지상제니

不可不誠敬함이 孝之元也라
불가불성경함이 효지원야라


류영모는, 효경의 앞부분에 이 대목을 넣었다. 그 뜻은 이렇다.

맘과 몸과 아비와 어미와 천지의 신은 하느님(上帝)에게서 받은 것이니
정성과 공경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음이 효의 근원이라


그 다음엔 효경의 원래 첫머리를 넣었다. 그러나 하느님의 존재를 명시한 것이 좀 다르다.

身體髮膚는 受之父母라 不敢毁傷이 孝之始也라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불감훼상이 효지시야라

立身行道하고 揚名於上天하여 以顯上帝함이 孝之終極也라
입신행도하고 양명어상천하여 이현상제함이 효지종극야라

신체발부는 부모에게서 받았으니 감히 훼상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
몸을 일으켜 참을 행하고 이름을 날려 하늘에 이르게 하고 하느님을 두드러지게 하는 것이 효의 진정한 마무리이다


신체발부를 부모에게서 받았으니 이것을 훼상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고 천명한 효경의 대목은 그대로 살렸다. 다만 이 대목을, 부모조차도 상제(上帝, 하느님)에게서 받았다는 점을 천명한 뒤에 실어놓았기에, 효의 원천인 신의 질서에 따른 인간적 효의 시작임을 밝히는 맥락이 되어 있다.

▶ 신에게 효를 다하는 실천방법을 제시

그 다음 구절은 '효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다룬 것이다. 류영모는 여기에서 신(神)에게 복무하는 일이 더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바꿨다. 이름을 날리는 일은 세속의 가치가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더하는 것이며 하느님의 존재를 두드러지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효의 목적임을 밝힌다.

夫孝는 元於事天하고 始於事親하며 中於使公하고 終於立身하여 極於立命하나니라
부효는 원어사천하고 시어사친하며 중어사공하고 종어입신하여 극어입명하나니라

무릇 효라는 것은 하늘을 섬김이 근원이고 어버이를 섬김이 시작이며 공공에 복무하는 것이 그 중간이며 제 몸을 세우는 것이 그 마침이며 하늘 뜻을 세우는 것이 궁극이니라


류영모는, 효경의 대목에서 사군(事君, 왕을 섬김)을 빼고 사공(使公, 공공에 복무함)을 넣어 현대적인 맛을 살렸다. 또 부모를 섬기는 것 위에 근원적으로 하늘을 섬기는 것이란 원초적 단계를 하나 더 만들었다. 신효경의 골격을 세우기 위함이다. 그리고 효경엔 '종어입신'까지만 있지만, 신효경은 극(極, 궁극)이란 단계를 더 넣어, 입명(立命, 하늘뜻을 세움)을 최종단계로 보고 있다. 이렇게 얼개를 확장한 다음, 류영모는 효경의 세부를 섬세하게 재정비한다.

心(神)은 事上而高하고 進思盡忠하고 退思補過하여 將順其美하고 匡救其惡하면 上下能相親이라
심(신)은 사상이고 하고 진사진충하고 퇴사보과하여 장순기미하고 광구기악하면 상하능상친이라


공자의 말인 이 대목은, 류영모에 의해 바뀌었다. 원래는 君子之事上也(군자지사상야)로 시작한다. '군자가 윗사람을 섬기는 것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로 시작하던 것을, 류영모는 心(神) 事上而高(심신 사상이고)로 바꿨다. 군자가 윗사람을 섬기는 일은 세속적인 예법이지만, 맘(心)과 얼(神)로 공경하는 효도는 윗사람을 섬길 뿐 아니라 하늘을 섬기는 일이다. 사상(事上)을 넘어서 사고(事高. 하늘을 섬김)를 넣어놓았다. 그 나머지 내용은 같다. 풀어보면 이렇다.

맘(얼)은 윗사람과 하늘을 섬김에 있어서 앞으로 나설 때는 충성을 다했는지 생각해보고 뒤로 물러나 있을 때는 잘못을 고칠 것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 아름다운 점을 따르고 그 허물은 널리 구하여 고치면 위와 아래가 서로 잘 어울릴 수 있다.

어버이를 중심으로 한 효를, 하늘로 향한 효로 재해석한 것이 특징이다.

心乎愛矣면 遐不謂矣이니 中心藏之면 何日忘之리요
심호애의면 하불위의니 중심장지면 하일망지리요


이 구절은 시경에 나오는 시를 풀어놓은 공자의 말이다.

'사랑에 마음이 담겨 있으면 멀리 있다고 말하겠는가,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으니 언제라도 잊을 리가 없다.'

공자는 이 대목에서 마음(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거리가 문제될 리 없으며, 사랑이란 오히려 그런 거리를 초월하는 것임을 역설했다. 위에서 말한 효의 세목들은, 세상의 여러 가지 장애나 어려움을 핑계로 피하려 할 수 있으나, 효에 대한 진심이 있으면 그 실천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

身(形)은 養親而廣하니 用天之道하고 因地之利하며 謹身節用하여 以養親而以及安社하고 一二克和睦하리라
신(형)은 양친이광하니 용천지도하고 인지지리하며 근신절용하여 이양친이이급안사하고 일이극화목하리라

몸(꼴)은 부모를 봉양함에 있어 널리 하니, 하늘의 도를 활용하고, 땅의 이로움을 비롯하고, 몸을 삼가고 씀씀이를 절제하여 부모를 섬김으로써 그것이 세상을 평안하게 하는 데 닿도록 하고 하나둘 이겨내며 화목하리라.



唐棣之華여 翩其翻而로다 豈不爾思리오마는 室是遠而니라
당체지화여 편기번이로다 기불이사리오마는 실시원이니라

산앵두꽃이 이리 팔락 저리 팔락거리는구나
그대 생각이 어찌 나지 않으리오마는 그대는 멀리 있다네


子曰 未之思也언정 夫何遠之有리오
자왈 미지사야언정 부하원지유리오

공자왈
생각이 미지근해서 그렇지
어찌 멀리 있음 때문이리오

 

[지난 3월 14일 류영모 탄신 131주년을 기려 강원도 평창의 묘소를 찾은 필자(맨왼쪽, 이상국 논설실장), 정수복 다석사상연구회원, 곽영길 아주경제 회장, 김성언 다석사상연구회 총무이사. ]



▶ 사랑하면 구애받음이 없듯, 예수가 그러지 않았던가

얼마 전부터 논어의 자한편에 나오는 이 시를 곰곰이 읽었던, 류영모는 열심히 신효경(神孝經)을 구상하고 있었다. 모든 것은 마음의 문제이지, 지리적인 것이나 물리적인 것이 어떻게 효를 가로막을 수 있겠느냐는 논리를 세우는 말이다. 사랑을 하면 천리를 멀다 않고 가서 보아야 하는 것이고, 산앵두꽃을 함께 보고싶으면 몸이 죽을 판이더라도 그대를 모셔와서 함께 봐야 하는 것이 사랑이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한숨만 쉬는 것은 결코 사랑이라 할 수 없다는 말이다. 효도가 그런 것이 아닌가. 사람에 대한 효도도 그렇지만, 신에 대한 효도는 더욱 그렇지 않은가. 조금만 성가시고 조금만 어렵고 조금만 고통스러우면 핑계귀신들이 달려들어, 효도의 세목들을 무너뜨리고 효도의 성심(誠心)을 희미하게 만든다. 효(孝)신관은, 하늘에 대한 신앙을 원형적이고 현실적인 양상으로 보여준 것이다. '인자(人子) 예수'가 그 효도 시범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효의 신관을 기록해놓고 류영모는 말한다.

"나의 심신이 자라기는 공맹을 통하야 온 말씀, 모세·예수로 나타내인 말씀으로 영양된 것입니다. 인생은 효도란 말씀입니다." 이 말에 필자의 가슴이 벅찼다. 공맹을 통해서 온 말씀인 효도가 나의 마음과 몸에서 자라, 모세와 예수의 기독교 사상의 핵심인 말씀을 키우는 힘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인생은 효도라고 말한다. 부모에게 마음과 몸을 쓰는 효도만큼 신에 대해 마음과 몸을 쓰는 것이야 말로, 귀일(歸一, 돌아가 하나로 됨)로 나아가는 최고의 수신(修身)프로그램임을 천명한 것이다.

▶ 父子有親靈人子(부자유친영인자), 예수는 천하효자

그는 '부자유친'에 관한 한시를 썼다.

自信固執充忠臣 (자신고집충충신)
唯信瞻仰永學士 (유신첨앙영학사)
主心同意聖旨精 (주심동의성지정)
父子有親靈人子 (부자유친영인자)

제 믿음을 굳게 지킴은 충실한 하늘나라 충신이요
오직 믿음으로 쳐다보고 우러르니 영생을 배우는 학생이요
주의 마음과 오롯이 함께 하는 것이 성령의 참뜻이요
하느님과 그 아들처럼 친밀하라는 게 인자 예수다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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