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기 6중전회 8~11일 베이징 개최
  • 毛·鄧 절대권력 확립 무대로 활용돼
  • 習, 세번째 역사결의로 권위 높일듯
  • 내년 당대회 앞두고 지도부 밑그림
  • 계파 대신 기술관료 新친위대 부상

1938년 열린 중국 공산당 6기 6중전회에 참석한 주석단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 둘째가 마오쩌둥. 국제 공산 진영으로부터 마오의 지위를 인정받은 계기가 됐다. [사진=바이두]


중국 공산당의 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19기 6중전회) 개최가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매 5년마다 열리는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구성되는 중앙위원회는 보통 임기 중 7차례의 중전회를 개최한다.

주요 경제 정책이 논의되는 3중전회나 공산당의 발전 방향이 드러나는 4중전회 등과 달리 임기 말의 6중전회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엔 다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권위와 집권 정당성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격상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시진핑 이전 중국의 절대 권력자였던 마오쩌둥(毛澤東)과 덩샤오핑(鄧小平)도 각각 1938년과 1981년의 6중전회에서 1인 체제를 확립한 바 있다.

한·중 수교 30주년인 내년 시 주석은 재집권에 성공할 것이 유력하다. 수교 뒤 첫 10년이 탐색기였다면, 이후 10년의 밀월기와 10년의 갈등기가 이어졌다.

한국은 시진핑 체제가 유지될 중국과 새로운 10년을 모색하게 됐다. 장기 집권을 자축하는 사전 세리머니 성격이 짙은 이번 6중전회에서 나올 메시지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1981년 개최된 11기 6중전회에서 '건국 이래 당의 약간의 역사 문제에 관한 결의'를 거수로 의결하는 모습. 이를 통해 마오쩌둥의 유산을 청산하고 덩샤오핑이 실질적인 최고 지도자로 등극했다. [사진=신화통신]


◆중국 권력 향방 드러냈던 6중전회

중국 공산당은 오는 8~11일 베이징에서 19기 6중전회를 개최한다.

2017년 19차 당대회 이후 6번째 열리는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중전회)라는 의미인데, 시 주석의 권력 강화 무대로 활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시대 때의 사례를 반추해 볼 만하다.

1938년 9월 29일부터 11월 6일까지 산시성 옌안에서 6기 6중전회가 열렸다. 마오쩌둥이 제창한 '4개 복종(四個服從)'이 채택된 회의다.

'개인은 조직에 복종한다', '소수는 다수에 복종한다', '하급은 상부에 복종한다', '전 당은 중앙위원회에 복종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1935년의 정치국 확대회의, 이른바 쭌이(遵義)회의에서 마오를 지도자로 인정했지만 왕밍(王明) 등 소련 유학파는 여전히 불복하는 중이었다.

6중전회는 마오의 당내 핵심 지위를 공고히 다지는 계기가 됐다.

공산주의 국제 연합인 코민테른의 게오르기 디미트로프 총서기는 소련에 머물던 왕자샹(王稼祥·후일 초대 주소련 대사)을 중국에 파견해 "중국 공산당의 정치 노선은 정확하다. 마오를 중심으로 친밀하고 단합된 분위기를 조성하라"는 지시를 하달했다.

공산 진영이 마오의 리더십을 인정하자 펑더화이(彭德懷)나 천윈(陳雲) 등 핵심 간부들도 "지도자는 오랜 투쟁 속에서 나타나며 마오의 지위는 정확한 영도를 통해 얻어진 것"이라며 거들고 나섰다.

왕밍 등은 더이상 소련을 뒷배 삼아 마오에 대항하기 어려워졌다.

마오 역시 훗날 "(1938년의) 6중전회에서 중국의 운명이 결정됐다"고 회고했다.

당시 당 총서기였던 장원톈(張聞天)은 마오에게 자리를 넘기려 했지만, 마오는 시기상조라며 거절했다. 장원톈은 "여전히 내가 총서기였지만 1939년부터 모든 중요한 문제는 마오가 결정했다"고 술회한 바 있다.

그로부터 43년이 지난 1981년 6월 개최된 11기 6중전회는 덩샤오핑이 마오의 뒤를 이어 자신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자리였다.

1976년 마오가 사망하자 공산당은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 등 중국 현대사의 오점을 어떻게 평가·정리할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1979년 과거 30년을 결산하는 취지의 결의문 초안이 만들어져 1980년 10월 4000여명의 고위 간부들에게 배포됐다.

실제로는 5600명 넘는 고위 간부가 초안 내용에 대해 격론을 벌였는데, 이 와중에 덩샤오핑은 "마오의 과오를 과도하게 서술하지 말라. 우리 당과 국가에 먹칠을 하는 일"이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결국 1981년 6중전회는 '건국 이래 당의 약간의 역사 문제에 관한 결의'를 채택하며 마오가 일으킨 문화대혁명을 좌경 편향 오류로 규정했다.

이 회의에서 덩은 후야오방(胡耀邦)을 당 주석으로 내세우고 스스로는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맡으며 실질적인 최고 지도자가 됐다.

마오의 유산을 청산하고 실권을 잡은 덩은 개혁·개방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에 발맞춰 중국도 고속 성장의 길로 접어들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7월 1일 열린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 연설 도중 주먹을 불끈 쥐며 만세를 외치고 있다. [사진=CCTV 캡처]


◆新친위세력 떠오른 50대 기술관료

중전회는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되며 일반적으로 베이징 중심인 톈안먼 서쪽 시창안제(西長安街)의 징시(京西)호텔에서 열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덩이 '흑묘백묘(黑猫白猫·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이론을 주창하며 개혁·개방의 기치를 세운 11기 3중전회가 개최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1959년 설립된 징시호텔은 인민해방군이 직접 운영해 중국에서 가장 안전한 호텔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19기 6중전회도 이곳에서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회의 결과는 모든 일정이 종료된 이후 관보(官報) 형식으로 발표된다.

최대 관심사는 공산당 역사상 세 번째 '역사결의'가 채택될지 여부다. 이미 '당의 100년 분투의 중대한 성취와 역사 경험에 관한 결의'라는 긴 이름의 결의안 초안이 상정돼 있는 상태다.

첫 역사결의는 1945년 6기 7중전회 때 이뤄졌는데, '약간의 역사 문제에 관한 결의'를 통해 중국은 소련식 교조주의와 결별하고 독자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두 번째 역사결의는 앞서 언급한 1981년 11기 6중전회 때 채택됐다.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마오에 대해 "과오보다 공이 크다"고 평가함으로써 내홍을 수습하고 덩 중심의 지도 체제를 수립했다.

이번 6중전회에서 논의될 세 번째 역사결의 내용을 놓고 의견이 분분한데, 어떤 결론이 나오든 시 주석이 마오나 덩과 같은 반열에 오르게 된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중국 공산당의 지난 100년 역사를 총정리하며 마오와 덩 시대를 모두 긍정하는 식으로 내부 결속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내년 20차 당대회를 앞두고 새로 구성될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단과 25명의 정치국원, 중앙위원회를 이루는 중앙·후보위원 등 차기 지도부 인선을 위한 밑그림이 그려질 지도 관전 포인트다.

시 주석의 경우 2018년 헌법 개정을 통해 3연임 제한을 없앤 만큼 재집권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소 5년은 시진핑 체제가 지속될 전망이라 후계 그룹에 대한 관심도는 많이 낮아진 게 사실이다.

눈에 띄는 건 6중전회 직전에 지방정부 수장들이 대거 교체됐다는 점이다.

지난달 중순 이후 헤이룽장·장쑤·장시·후난·윈난성과 시짱(티베트)·광시좡족자치구 등 7곳의 당서기와 푸젠·장쑤·랴오닝·허베이·장시성 등 5곳의 성장이 새 얼굴로 바뀌었다.

중복 지역을 감안해도 전체 31개 성급 지방정부 중 3분의1에 해당하는 곳의 최고 지도부가 물갈이된 셈이다.

특히 중앙부처와 국유기업에서 다년간 활약하며 성과를 인정받은 기술관료(테크로크라트)들이 중용되는 모습이다. 류링허우(60後·1960년대 출생자)가 대부분이라 연소화도 진전됐다.

중국 '우주굴기'의 상징인 항천과기그룹 당서기를 역임한 장칭웨이(張慶偉) 후난성 서기와 주택건설부 부부장을 지낸 왕닝(王寧) 윈난성 서기,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 근무 시절 '재계 저승사자'로 불린 쉬쿤린(許昆林) 장쑤성 성장 등이 대표적이다.

홍콩 명보는 "다양한 지역과 영역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고 대승적 안목을 갖춘 이들이 공산당 후계 그룹에 포함되고 있다는 게 뚜렷한 특징"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을 포함해 내년 중순까지 추가 임명될 지방정부 당서기나 성장들은 20차 당대회 중앙위원회에 진입해 시 주석의 새로운 친위 세력을 이루게 된다.

한 베이징 소식통은 "정치 계파별 나눠 먹기 대신 경험 많은 기술관료가 요직을 맡는 경우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며 "시진핑 1인 체제가 10년간 이어지면서 권력 다툼의 소지가 거의 없어졌다는 방증"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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