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심서 2021] '유럽의 엔진' 독일 만든 메르켈의 '4D' 리더십

이수완 논설위원입력 : 2021-10-11 16:08
우리도 박수 받으며 떠날 리더가 필요하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베를린 총리관저에서 총선을 앞두고 마지막 각료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베를린= AP·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시대가 곧 막을 내린다. 국민들의 따뜻한 박수 속에 떠나는 그의 모습을 보면 대통령의 불행한 말로가 반복되는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과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다. 메르켈의 리더십 하면 흔히 포용과 통합 그리고 실용주의로 표현된다. 그러나 유럽난민이나 탈원전처럼 사안에 따라 그는 소신 있고 투지가 넘치는 원칙주의자로 변하기도  했다. 누구보다도 겸손하고 소박하며 부지런했다. 유연하지만 강했고, 책임감이 남다른 지도자였다. 그가 무려 16년이나 총리로 재임하면서 높은 인기와 강력한 지도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측면을, 대선을 앞두고 '아수라판'으로 향하는 우리 정치권은 국민과 함께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메르켈은 독일이 동서로 분단되었던 냉전 시절인 1954년 7월 서독의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당시 수많은 동독인들이 자유를 찾아 서독으로 탈출하는 상황인데도 루터 교회 목사이던 메르켈의 아버지는 목회활동을 위해 가족과 함께 동독의 템플린(Templin)이라는 작은 도시로 이주했다. 1961년 동독의 공산당 정부는 서독으로 이주하는 주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동베를린과 서방 3개국의 분할점령구역인 서베를린 경계에 두꺼운 콘크리트 담장을 쌓았다. 공산체제의 조그만 시골마을에서 성장하며 학구적이며 조용히 예배드리기를 즐기던 소녀가 훗날 통일된 독일의 총리를 네번 연임하고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될 줄은 누가 상상했을까? 1990년 동서독 통합 이후 사회적 갈등과 막대한 통일비용으로 경제가 내리막길로 치달으며 유럽의 병자(sick man of Europe) 취급을 받던 독일은 메르켈이라는 뛰어난 지도자 덕분에 '유럽의 엔진'으로 화려하게 다시 부활했다. 그는 부정부패 또는 친인척 비리로 논란이 된 적이 없다. 유머감각이 부족하고 촌스럽고 카리스마가 부족하고 답답하다는 지적은 있었지만, 성실함과 검소함 그리고 탁월한 소통 능력으로 승부했다. 엄마처럼 지극히 푸근한 인상이지만 내면은 강인하고 주도면밀한 진정한 승부사였다. 

동독의 물리학자 메르켈의 정계진출 
 
그는 정계에 입문하기 전엔 물리학자였다. 이러한 배경 때문인지 몰라도 그는 과학자의 냉철한 사고와 마인드로 상대방을 설득해 합의를 이끌어 내는 귀재였다.  메르켈 특유의 포용적인 리더십, 즉 '무티(Mutttti·엄마) 리더십'은 독일에서 화합의 정치를 일구어냈다. 유럽이 시리아 난민 문제와 유로존 재정위기로 분열과 혼란으로 치닫는 심한 몸살을 겪을 때 그가 보인 뛰어난 협상력은 EU라는 어렵게 구축된 연합국가를 해체 위기에서 구해냈다. 그의 입지전적인 정치 역정과 리더십은 그동안 국내외 많은 학자들의 연구대상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물론 일부 국제적 사안에서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등 메르켈의 정치 스타일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가 이룩한 업적에 대한 찬사와 덕담이 독일 안팎에서 압도적으로 쏟아지는 것을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지도자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이런 관점에서 우린 '인간' 메르켈이 어떤 인물이고 그가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보여준 진정한 리더십의 본질과 핵심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냉전시대 표현의 자유가 없던 동독에 살면서 메르켈은 정치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동독의 악명 높은 정보기관인 '슈타지'의 협력 요청을 거부했지만 그렇다고 공개적으로 공산 정권 타도를 요구해본 적은 없다. 그는 물리학 연구를 위해 카를 마르크스 대학(현 라이프치히 대학)에 진학한다. 1982년 물리학자이던 울리헤 메르켈과 이혼한 이후에도 이곳에서 학위과정을 이어가며 1986년에는 양자화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물리학자로서 나름대로 괄목할 만한 커리어를 쌓아갈 무렵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다. 그의 나이 서른다섯 때이다. 1년도 안 되어 독일은 하나로 통일된다. 메르켈이 정치에 뛰어들기로 결심한 것은 이러한 독일의 드라마틱한 격변시기이다. 1991년 초대 통일총리 헬무트 콜은 메르켈의 정치적 후견인이었다. 정치 경력 초기에 '콜의 아이(Kohl's girl)'로 불릴 정도로 콜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지만 그가 불법정치자금 스캔들에 휘말렸을 때 그의 축출에 앞장서는 냉정함도 보였다. 2000년에는 기민당(CDU) 최초의 여성 대표에 선출된다. 동독 출신, 개신교인, 이혼여성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이고 남성 중심이며 가톨릭 중심의 기민당(CDU) 최초 여성대표로 선출된 것이다. 2005년 총선에서 승리해 사민당(SPD)과 좌우 대연정을 구성하는 데 성공하며 독일 최연소이자, 최초의 여성총리가 된다. 

메르켈이 남긴 유산 
 
16년 집권기간 동안 굵직굵직한 국내외 현안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메르켈의 리더십은 돋보였다. 그의 업적을 굳이 몇 가지만 정리하면, 첫째는 국내 정치의 안정과 화합이다. 2차대전 후 패전국 독일은 민주공화국으로 탄생하면서 권력의 집중을 막기 위한 정치 시스템을 도입했다. 대표적인 것이 복수의 정당이 참여하는 다당제 내각제이다. 일종의 합의제 정치 시스템으로, 메르켈 같은 소통력이 뛰어난 화합형 지도자가 제격이다. 메르켈은 4연임 중 한번만 빼고 나머지 3연임(12년)을 제1야당과 대연정을 펼쳤다. 메르켈은 연정을 통해 중도우파였던 기독교민주연합(기민련)의 지지층을 서서히 왼쪽으로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침착한 대응은 정치권을 결집시켰다. 특히, 팬데믹 위기로 국민들이 겪어야 하는 불가피한 고통을 명확하고 솔직하게 알리면서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는 모습은 다시 한번 그의 리더십을 빛나게 하는 순간이었다. 둘째로, 독일의 경제 발전이다. 그는 노동자와 당내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임자인 사민당 소속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채택한 '어젠다 2010'을 밀어붙였다. 동서독 통일과정에서 엄청난 비용지출과 실업난으로 비틀거리던 독일은 연금개혁과 실업수당 축소 등 과감한 국가개조작업을 이어가면서 4차혁명시대를 선도하는 유럽 경제의 최강자로 올라섰다. 경제 개혁을 추진하면서 단기적 성과에 치중하지 않고 멀리 바라보면서 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한 결과이다. 정권이 바뀌면 전임 대통령의 정책 지우기에 바쁜 우리의 정치 현실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메르켈은 시리아 난민 문제, 남유럽 디폴트 위기,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등의 국제 현안 해결에 자신이 적극 나서면서 독일의 위상을 높였다. 독일 전문가인 김호균 명지대 명예교수는 메르켈 총리가 독일을 넘어 국제적인 지도자로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국내 정치 역풍에도 불구하고 시리아 난민문제 해결을 위한 독일의 역할에서 결코 주저하거나 마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난민 수용에서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주변국들에 보이면서 독일이 책임을 다하는 국가라는 모습을 국제사회에 각인시킨 것이다. 

리더십 하면 카리스마와 권위를 우선 떠올리는 게 보통이지만 메르켈의 리더십은 조직의 리더가 하인(servant)처럼 낮은 자세로 구성원을 위해 섬기고 봉사하는 '서번트 리더십'과 유사하다. 1970년 미국 학자 로버트 그린리프(Robert Greenleaf)가 주창한 것으로, 지도자가 위에서 군림하지 않고 구성원에 대한 사랑과 봉사·헌신으로 조직을 하나로 묶을 때 경쟁력이 배가된다는 이론이다.  메르켈에게는 '서번트 리더십'을 뛰어넘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많은 독일 국민들은 각종 불협화음을 마법같이 사라지게 만드는 그의 비범한 능력을 그리워할 것이다. 2017년 메르켈이 정치무대를 떠나겠다고 선언한 이후 그의 리더십에 대한 온갖 찬사가 쏟아져 나왔다. 그중에서 2019년 8월 31일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전 IMF 총재(현 ECB 총재)가 메르켈 총리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면서 한 연설이 필자에겐 가장 인상이 깊다.

'4D' 리더십

라가르드 총재는 메르켈의 리더십 스타일은 독일의 위대한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평균율 클라이버 곡집(Well-Tempered Clavier)을 연상시킨다고 말한다. 그는 메르켈이 신중하고(measured), 체계적이고(methodical), 잘 조율된(well-tempered) 접근방식으로 적절한 의견을 내놓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4가지 기술이 뛰어나다고 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이를 4D(diplomacy, diligence, determination and duty)라고 일컬으며 메르켈의 리더십에 대한 예시를 제시했다.

첫째, Diplomacy(외교)이다. 메르켈은 기후변화, 무역갈등, 난민유입 등 각종 문제에 있어 각국이 '국제 오케스트라단'의 일부라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오케스트라단 지휘자에겐 마법의 지휘봉은 없다. 또 여러 가지 다른 악기들이 함께 연주되기 때문에 불협화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한계도 잘 인식하고 있다. 메르켈은 오랫동안 다자주의 외교의 발전과 국제 협력 확대를 위해 노력하면서 가끔 자신은 솔로 연주가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단독으로 플레이하지는 않는다.  대중들 앞에서 그의 번득이는 유머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거나 각광 받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우린 그와 함께 연주를 하게 된다. 어느새 그의 영도를 따르며···.

둘째는 Diligence(근면)이다. 메르켈은 회의에 참석하기 전 가장 준비를 잘하는 참석자였다. 그는 자신이 가져온 브리핑 자료보다 항상 상세하게 알고 있다. 그는 복잡한 문제를 체계적으로 분석해 여러 파트로 분리해 장단점을 분석한 이후 단계적으로 해결방법을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메르켈은 그날그날 필요한 통계숫자를 꼼꼼히 챙긴다. 각종 기자회견에서도 그는 과학자 출신답게 숫자를 정확하게 제시한다. 

셋째는 Determination(투지)이다. 메르켈은 부드러운 인상에도 불구하고 내면적으로 놀라울 정도로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의 강한 정신력은 협상 테이블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그는 어려운 협상도 서로가 도저히 넘지 못하던 선을 넘게 해 타협이라는 중요한 결과물을 탄생시키곤 한다. 협상 결과는 모두에게 조금은 만족스럽지 않지만 그래도 아무런 합의가 없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의 투지와 결단력은 남유럽 재정위기 시 재정지원 문제로 해체 위기에 몰렸던 유럽연합을 하나로 묶게 했다.

마지막으로, Duty(책임감)이다. 라가르도 총재는 메르켈 리더십의 핵심요체를 책임감으로 보았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메르켈은 자신의 막중한 책임감에서 매일 힘을 얻는다. 그가 꼼꼼하게 자신의 일을 챙기는 것도, 이성적 조율로 문제의 해결방법을 생각하는 것도 모두 이러한 책임감에서 비롯된다. 메르켈은 세상 일들이 '마음의 문제(matters of heart)'라고 언급하곤 했다. 그는 오랫동안 독일의 운명이 유럽의 번영과 평화에 달려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유럽은 그에게 '마음의 문제(matters of heart)'였다. 정치 선진국이 되려면 우리에겐 메르켈처럼 진솔하고 국민을 위해 자신의 마음을 다하는 책임감 있는  정치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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