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영화보다 더한 아수라장 '화천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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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입력 2021-09-28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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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위원]


2016년 개봉한 영화 '아수라'가 재조명 받고 있다. '아수라'는 개봉 당시에는 지나친 허구에다 잔인하다는 이유로 흥행에 실패했다. 그런데 최근 ‘대장동 택지개발 의혹’과 맞물려 새삼 화제다. 국민의힘 홍준표 후보는 “꼭 ‘아수라’ 영화를 보는 기분이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미 영화를 봤던 이들은 다시보기를, 그러지 않은 이들도 왓차에서 뒤늦게 찾아봤다는 후기가 잇따르고 있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요즘 재개발 열풍에 한몫 챙기려 서로 물고 뜯고 아주 난리가 났다”는 정우성의 독백에 기시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영화 속 대사가 대장동 택지개발에서 고스란히 재현됐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배경이 되는 도시는 분당 인근 ‘안남시’다. ‘안남시’는 안산시와 성남시를 결합한 가공 도시다. 영화 '배트맨'에서 뉴욕을 ‘고담시’로 설정했듯, '아수라'에서는 성남시를 ‘안남시’가 대체한다. 영화에서 악인들은 대규모 개발 사업 이권을 놓고 격돌한다. 이권과 정치적 성공에 눈 먼 악덕시장(황정민)과 뒷일을 처리해주는 대가로 검은돈을 받는 비리 형사(정우성), 그리고 독종 검사(곽도원)가 축을 이룬다. 그리고 별반 나을 게 없는 나쁜 놈들끼리 물고 물리는 악행을 일삼는다. 영화 속 안남 시장은 “천당 위에 분당, 분당 위에 안남”이라며 대규모 개발사업을 앞세워 온갖 악행을 자행한다.

여기까지 듣고 보면 ‘대장동 택지개발 의혹’과 흡사하다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감독은 개봉 당시 100% 허구라고 했지만 영화적 상상력은 현실이 됐다. 수사를 통해 진상은 가려지겠지만 사건의 중심에 성남시장이 있고, 법조계 고위 인사와 야당 정치인, 언론사 간부, 시중은행 부행장 출신이 망라돼 있다. 거론되는 이들은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권순일 전 대법관, 박영수 전 특별검사, 강찬우 전 수원지검장, 김수남 전 검찰총장, 곽상도 국민의힘 국회의원(탈당), 머니투데이 부국장 출신 김만배 화천대유 대표, 이현주 KTB투자증권 사외이사 등이다. 대한민국 1%에 속하는 내로라하는 이들이 특정 사업을 중심으로 모였다는 점에서 아수라장을 연상케 한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은 ‘이재명 게이트’로 명명한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 게이트’로 맞서고 있다. ‘이재명 게이트’가 됐든 ‘국민의힘 게이트’가 됐든 우리 사회가 가진 자들의 놀이판으로 전락한 건 분명하다. 게이트라는 음습한 단어가 암시하듯 썩은 내가 진동하는 건 분명해 보인다. 2015년 대장동 개발 로비 의혹 수사 당시 박영수 전 특검은 남욱 변호사 변론을 맡았다. 남욱은 화천대유 김만배 대표와 동업 관계를 맺고 대장동 사업을 기획한 인물이다. 박영수 특검은 화천대유 고문으로 활동했고 딸도 여기에서 일했다. 또 권순일 대법관은 이재명 경기지사 공직선거법 위반 대법원 판결 당시 무죄 의견을 냈다. 그는 퇴임 두 달 뒤 화천대유 고문으로 위촉돼 월 1500만원 고문료를 받았다. 김수남 전 검찰총장과 강찬우 전 수원지검장도 화천대유 법률 고문과 자문으로 활동 중이다. 곽상도 의원 아들은 화천대유 직원으로 근무하다 상식을 넘어선 퇴직금 50억원을 받고 퇴사했다.

이재명 지사는 “1원이라도 이득을 봤다면 공직과 대선 후보직을 사퇴하겠다”며 연관성을 부인했다. 그가 밝혔듯 사사로운 이득을 챙겼으리라고 믿지 않는다. 하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게 한 둘 아니다. 사업자 선정 일주일 전에 ‘화천대유’ 설립, 사업제안서 제출 다음날 1조5000억원짜리 사업자 선정, 사회적 통념을 넘어선 초과이득 배당이 그렇다. 특히 화천대유가 아파트 용지 5필지를 수의계약으로 받아 사업을 시행한 건 의문투성이다. 대장동 택지개발은 강제 수용을 통해 반값에 사업 부지를 확보했다. 토지 원가가 낮기에 누구든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당시 아파트 용지 경쟁률은 182대1에 달했는데, 화천대유는 수의계약으로 확보했다. 화천대유는 1조8000억원 매출에 4500억~4800억원 상당을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무늬만 공공개발일 뿐 사실상 대놓고 밀어줬다는 의혹에 답해야 한다.

권순일 대법관이 화천대유 고문으로 위촉된 과정에 대한 해명도 필요해 보인다. 그러지 않을 경우 화천대유 김만배 대표가 이재명 지사와 권 대법관의 중간 고리 역할을 했다는 합리적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화천대유는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개발 방식을 변경함으로써 막대한 이익을 챙긴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재명 지사는 “5500억원 상당 개발 이익을 성남시에 돌렸다. 재임 당시 최대 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 해도 과도한 이익이 민간업자에게 흘러간 것까지 정당화되지 않는다. 당시에도 비정상적인 수익 배분에 문제를 제기한 실무진이 있었고 그를 다른 부서로 배치했다는 내부 증언까지 나왔다. '중앙일보'는 27일 “당시 유동규 기획본부장은 민간 사업자에게 돌아가는 과도한 이익을 막아야 한다는 실무진 의견을 묵살했다”고 보도했다. 만일 이재명 지사가 이를 몰랐다면 무능하다.

영화 '아수라'에서 비리 형사 한도경은 “이기는 게 내편이다”고 내뱉는다. 그는 박성배 시장과 김차인 검사 사이를 오가며 현실적인 힘을 좇는다. ‘국민의힘 게이트’일지 ‘이재명 게이트’일지 명확한 실체 규명이 시급한 한편으론 누가 덜 나쁜 놈인가를 가리는 것으로 끝날 것이라는 우려를 떨치기 어렵다. ‘대장동 택지개발 의혹’이 “이기는 게 내편”인 정쟁으로 귀결된다면 절망적이다. 경실련은 얼마 전 고위공직자 부동산 실태조사에서 청와대 참모와 국회의원, 장·차관들이 부동산 부자 1%에 속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약자는 한없이 소외되고 강자는 턱없이 오만한 구조가 여기에서 비롯됐다. 그들만 행복한 리그에서 사회적 약자들은 어디에 기대야 할지, 또 대선은 더 갖기 위한 권력다툼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해나 아렌트는 <진실과 정치>에서 “정치가들이 진실만 말한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 정치가의 미덕이 정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거짓말은 대중 선동가만이 아니라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들의 정당한 기술로 여겨진다”고 했다. 정치인의 말을 믿는 국민은 없지만 ‘대장동 택지개발 의혹’이 교묘한 거짓과 술수에 그쳐서는 안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유력한 여야 주자 두 명이 수사 선상에 오른 20대 대선은 정상이 아니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학교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학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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