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윳값 전쟁] 세계서 가장 비싼 우유 먹는 한국인...치솟는 가격 잡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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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라 기자
입력 2021-09-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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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유가격 정하는 '생산비 연동제' 8년 만에 수술대

  • '용도별 차등 가격제' 유력 검토 중…미국서 운용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판매 중인 우유. [사진=연합뉴스]


비싼 우윳값을 놓고 정부와 낙농업계가 맞붙었다.

원유(우유 원재료) 가격 상승으로 유제품 가격까지 덩달아 오르자 정부는 원윳값 결정 체계 개편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정부가 낙농가를 보호하기 위해 지난 2013년 도입한 '생산비 연동제'를 8년 만에 수술대에 올려 손보겠다는 것이다.

반면 낙농업계는 정부가 직권을 남용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낙농업 상황은 모른 채 정부가 독단적으로 가격 결정 체계 개편을 밀어붙인다는 지적이다.
 

우윳값 추이 [그래프=농수산물유통정보 갈무리]

 
"가격 결정 체계 손보지 않으면 시장경쟁력 잃는다"
정부는 시장 수요가 줄어 우유가 남아도는데 계속해서 가격이 오르는 왜곡 현상을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정부는 낙농산업 중장기 발전 방안 마련을 위한 '낙농산업 발전위원회'를 출범시키며 연말까지 원유 가격 결정 체계를 개편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드러냈다. 직접 가격 결정에 참여해 '밀크인플레이션(Milk Inflation·우유 제품발 물가 인상)'이 현실화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

국민 한 사람당 흰우유 소비량은 매년 감소 추세다. 지난 한 해 동안 국민 1인당 흰우유 소비량이 26.3㎏으로 1999년 24.6㎏ 이후 가장 적었다.

우유를 찾는 소비자가 감소하는 추세지만, 최근 낙농진흥회는 원유 가격 인상을 선포했다. 2018년 이후로 지금까지 ℓ당 926원을 유지해왔지만, 이번 달부터 ℓ당 947원으로 21원(2.3%) 올렸다. 앞서 정부가 물가 상승 등을 이유로 원윳값 인상을 6개월 유보하자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재 원유 가격은 생산비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반영한 '생산비 연동제'로 결정한다. 2013년 구제역으로 낙농업계가 피해를 보자 정부가 수급 안정을 위해 도입한 제도다. 통상적으로 시장에서 가격은 수요와 공급 원리로 정해진다. 그러나 연동제 도입 이후 수요 변화와 관계없이 우윳값이 결정돼 원유 가격이 계속 올랐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림축산식품부 역시 시장 수급 상황을 반영하지 않는 가격 결정 체계로 고질적인 생산 과잉을 초래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당장 원유 가격 결정 제도를 손보지 않으면 우리나라 유제품이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2026년부터는 유럽연합(EU)·미국 등에서 들어오는 치즈와 우유에 적용되는 관세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지난 20년간(2001~2020년) 국산 원유가격은 72.2% 올랐다. 일본(33.8%)과 유럽(19.6%), 미국(11.8%) 등 주요국 대비 큰 폭으로 인상된 것. 가격 조정 없이는 국산 원윳값이 수입산보다 비싸져 유제품 수입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에 FTA가 시행되면 국산 원유는 가격경쟁력에서 더 밀릴 수밖에 없다.

농식품부는 '쿼터제' 개선도 예고했다. 쿼터제는 수요량 이상의 생산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이 때문에 계속해서 우유 수요가 감소하는데도 공급은 줄지 않는 문제를 낳았다. 공급이 줄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우윳값은 올랐다. 결국 우유를 찾는 사람은 줄어드는데도 공급량과 가격은 계속해서 상승 곡선을 그리는 왜곡 현상을 초래했다.

정부는 지난 1년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산자·수요자·전문가·소비자가 참여하는 낙농진흥회를 통해 제도 개선을 논의했지만,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김인중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지난달 25일 세종시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낙농산업 발전위원회 첫 회의에서 "원유 가격 결정 요인이 다른 많은 요소를 고려하지 못하고 생산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우리 원윳값 결정 체계가 수급 조절 기능을 하고 있느냐는 측면에서 생각하면 공급 과잉을 조금 심화하는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 물가 안정 챙기기에만 급급...직권남용 멈춰라"
낙농업계는 정부의 원유 가격 결정 참여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올바른 농정 수립과 축산농가 생존권 대책은 마련하지 않은 채 물가 안정 챙기기에만 급급하다는 게 이들 입장이다.

한국낙농육우협회는 지난 3일 '대한민국 우유는 죄가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협회는 성명서에서 "농식품부와 유업체가 결탁한 잘못된 여론전으로 인해 대한민국 우유가 언론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구제역 파동 당시 우유가 부족했지만 원윳값이 오르지 않은 것은 생산비를 고려해 가격을 결정하는 체계를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원유 가격 연동제를 합리적으로 개편하려면 국제 기준에 맞는 낙농제도 개편을 병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축산관련단체협의회는 지난달 24일 성명서를 내고 "원유 가격 동결을 위한 낙농가 회유·압박도 모자라 위법한 행정명령을 발동하면서 불법적인 직권남용을 행사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정부가 사룟값·인건비·환경규제 등 생산자물가를 폭등시켜 놓고 원유 가격이 물가 상승 주범인 양 몰아세웠다"고 쏘아붙였다. 이들은 김현수 농식품부 장관을 향해 책임지고 물러나라며 대정부 투쟁도 예고했다.

이 같은 낙농업계 반대에 원유 가격 결정 체계를 손보겠다던 정부 움직임에 제동이 걸렸다. 원유 생산자인 낙농업계가 반대하면 이사회 자체를 열 수 없어 제도 개선 논의도 시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15명의 낙농진흥회 이사 가운데 7명이 생산자 측 이사다. 이사 가운데 3분의2가 출석해야만 이사회를 개의할 수 있다.

일단 정부는 낙농업계와 계속해서 논의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원윳값이 인상되면 가공유는 물론 우유를 재료로 쓰는 빵이나 과자, 커피, 아이스크림 등 2차 가공식품 가격 인상도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치솟는 물가를 관리해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원윳값 인상으로 초래할 수 있는 밀크인플레이션을 막아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다.

현재 정부는 생산비 연동제 대안으로 '용도별 차등 가격제'를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이는 음용유와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치즈·버터·분유 등 용도별로 가격을 다르게 정하는 제도다. 현재 미국을 비롯해 세계 주요 국가에서 운용 중이다. 

정부는 낙농산업 발전위원회 논의를 뒷받침하기 위한 전문가 연구용역을 실시해 제도 개선 최종안을 연말까지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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