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은 내 인생을 어떻게 바꿨나?] ③심야의 아시아 음악방송, 20년 한국생활의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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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숙 국제경제팀 팀장·최지현 기자
입력 2021-09-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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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4년 우연히 들었던 독특한 한국 음악에 매력 느껴

  • 역사에 대한 관심 속 시작한 한국 생활 20년 가까이

어쩌면 음악이 나를 한국으로 데려오는 입구였을 수도 있어요.

모든 것의 시작은 어쩌면 심야의 음악방송일 수도 있다. 1994년 당시 후지텔레비전에서 방영됐던 아시아N비트(アジアNビート)라는 심야의 음악방송은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사사 히로코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시아 여러 나라의 음악을 소개하는 방송에서 사사는 K-POP(케이팝)을 처음 만났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부르는 '발해를 꿈꾸며'와 듀스의 음악은 기존의 일본 음악과는 다른 묘한 끌림이 있었다. 음악의 분위기도 달랐지만, 랩이나 춤은 당시 일본 대중문화계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함을 던져주었다.
 

1994년 당시 일본 후지텔레비전의 '아시아N비트'에 출연한 듀스(오른쪽 2명).[사진=유튜브 갈무리]

아마도 그 방송을 보지 않았다면 지금 한국에 있지 않았을 수도 있겠네요.

사사는 20년도 훨씬 넘은 당시의 일을 회상했다.

음악을 워낙 좋아했던 청소년이었기에 사사의 관심은 곧 한국으로 향했다. 대학교에 입학한 해 7월 학교에서 마련한 단기 어학연수 프로그램 중 중국과 한국 중 한국을 선택한 배경에도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호감과 호기심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한 달을 지내며 사사의 인생은 서서히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의 1개월은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시간이었다. 만나는 한국 사람은 모두 친절했지만, 지나친 호기심으로 사사를 비롯한 일본 친구들을 대했다. 우선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사사는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기는 했지만, 근현대사에 속하는 한국 식민지 시대에 대해 자세히 배우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가 한국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역사와 한·일 관계에 대해 물었다. '과거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삼았던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것이다. 곤혹스러웠기에 제대로 된 대답은 못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이들이 자신에게 예외없이 똑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에 대해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한국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대할까' 하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사사 히로코 한국사이버외대 조교수.[사진=유대길 기자(dbeorlf123@ajunews.com)]


이후 일본에 돌아간 사사를 다시 한국으로 돌려세운 것은 일본 아사히신문에 작게 난 광고였다. 한일공동워크숍이라는 프로그램이 열린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으로 휴가를 갈 시기와 맞아떨어졌다. 숭실대 1개월 체류 당시 남았던 의문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기에 프로그램에 신청을 했다. 워크숍은 일본 강제징용 문제 등 한·일 간의 역사 갈등과 화해를 다룬 프로그램이었다. 양국의 젊은이들이 참여했다. 그리고 그 여름 이후 사사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2000년대에 찾은 한국은 좀 달라져 있었습니다. 대놓고 앞에서 일본과 한국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았죠. 뭐랄까, 1990년대 후반 일본 문화 개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라서일까요? 사람들은 역사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한국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건넸어요."

사사가 한국을 찾은 것은 본격적으로 한국어를 공부하고 싶어서였다. 음악을 좋아하게 되면, 일단 그 음악의 언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 순서였다. 한국에 와서 어학당을 다니고 일본어를 가르치면서 아마츄어 음악밴드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머무는 시간은 1년에서 2년으로, 점차 늘었다. 결국 20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심야의 한 프로그램 속 음악에 이끌려 한국으로 들어선 사사는 이제 사이버한국외대 조교수를 맡고 있다.

얼마전에는 한국 케이팝이 일본 커뮤니티 언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소논문을 발표했다. 한국어는 일본의 케이팝 팬들의 언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또 다른 언어 체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는 특정 스타의 팬을 지칭하는 환(ファン)을 대신해 팬(ペン)이라는 말을 쓴다. 한국어에서 F를 발음할 때 ‘ㅍ’으로 발음하는 점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그밖에도 한국 아이돌 팬 문화에서 사용하는 단어들, 예를 들면 아이돌의 사생활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팬을 일컫는 줄임말인 사생(サセン)이나, 직접 공연장에서 영상을 찍는 직캠(チッケム), 팬 미팅을 뜻하는 팬미(ペンミ) 등이 번역 없이 그대로 사용되면서 문화 접촉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다.
 

사사 히로코 사이버한국외대 일본어학부 조교수가 2021년 발표한 논문.[자료=KISS]

모르겠다.

사사는 케이팝 팬들의 증가가 한·일관계 개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솔직한 답을 내놓았다.

한국 음악을 좋아하지만, 한·일 관계나 역사에는 관심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케이팝 젊은 층에서 인기를 얻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한·일 과거사에 이전보다 관심이 더 많아진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지적이다.

과거에도 한류 열풍은 있었지만, 한·일 관계에 대한 대중의 여론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한편에서는 혐한을 추종하는 일본 극우세력들은 케이팝 팬들에 대해 심한 반감을 표하기도 한다.

사사는 지금도 열렬한 케이팝 팬이다. 물론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대상은 바뀌었지만, 한국 음악은 여전히 매력적이라고 본다. 케이팝이 사사를 사로잡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끈끈한 팬덤이다.

그는 "일본에서는 다른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좋아하면 약간 경계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그러나 한국은 달라요. 서로를 격려하고 정보를 나누면서 팬덤을 키우기 위해서 열정적으로 노력하죠. 이런 모습들은 트위터에서도 나타나면서 같은 케이팝 팬들끼리는 끈끈한 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케이팝 팬이 되면서 사사의 팔로어도 많이 늘었다. 일본인들이 접하기 힘든 콘텐츠를 번역해서 올리기도 하고, 방송 일정 등을 공유하기도 한다. 대가 없이 다른 팬덤의 구성원과 마찬가지로 우리 '애들'을 키우기 위한 과정이다.

이른바 덕질을 하고 나서 사사는 많이 행복해졌다고 한다. 케이팝 아티스트들의 가장 큰 특징은 팬들과의 소통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일부 상업적인 것도 있지만, 팬들과의 접점을 여러 곳에서 만들어 낸다. 팬들이 팬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리 행위를 엄격하게 막지 않는 것도 케이팝 확장에 큰 역할을 했다고 사사는 생각한다.

"일본은 아이돌 소속사에서 사진이나 영상들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어요. 팬들이 사진을 찍어 굿즈들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다시 파는 이른바 '홈마' 문화도 일본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것입니다"라고 사사는 말했다. 유튜브와 소셜미디어에 배포되는 다양한 영상 등은 팬들의 창조적인 음악과 아티스트 소비를 가능하게 했다고 사사는 짚었다.

그는 "한국 아티스트들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 문화가 퍼지는 전 세계적인 네트워트에 준비돼 있던 사람들처럼 느껴졌어요"라고 지적했다. 음악적인 매력도 있지만, 팬덤과의 긴밀한 소통을 통한 자유로운 콘텐츠의 유통 등이 케이팝의 매력을 더욱 끌어당겼다는 것이다. 사사는 내년쯤 친구들과 일본에서 책을 출판할 계획이다. 한국에서 20년 가까이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제대로 보기'를 주제로 하는 책을 만든다.

음악은 인기가 있지만, 여전히 일본은 한국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꼬여가고 있는 양국의 관계 개선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사사 히로코 한국사이버외대 조교수.[사진=유대길 기자(dbeorlf123@ajunews.com)]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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