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피를 본 아프간 철군, "내 탓이 아니라오"

이수완 논설위원입력 : 2021-09-05 13:37
사과 대신 구구절절 변명만 - 바이든 리더십이 의심받다


 

백악관 상황실 찾은 바이든 (워싱턴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백악관 상황실에서 국가안보팀과 아프가니스탄 상황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미국이 지난달 30일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을 완료하면서 이슬람 수니파 무장조직인 탈레반과의 전쟁은 마침내 막을 내렸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역사상 가장 긴 '20년 전쟁'에 종지부를 찍은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막판 철수 과정에서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이 전개되면서 아프간 전쟁이 초강국 미국에게 굴욕을 안긴 또 하나의 '실패한 전쟁'이라는 국내외 비판을 정당화 시켰다. 바이든 행정부는 그동안 아프간 상황을 너무나 오판하고 있었던 게 분명해 보인다. 미군의 완전 철수 이전에 탈레반은 기습적으로 수도인 카불을 재장악 했고 이후 일어난 보름간의 사태는 미국 역사에서 또 하나의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자타가 공인해온 외교·안보 분야의 백전노장이다. 그는 이번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을 뿐 아니라 대통령의 책임론이 거세지면서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몰리고 있다. 상원의원 36년 동안 외교위원장을 세 차례나 역임한 그는 탁월한 경륜과 전문성을 인정받아 국정 경험이 부족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러닝메이트로 선택 받았다. 부통령 재임 8년 동안 아프간 전쟁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사태 그리고 동북아 정세 등 미국의 주요 외교 전선마다 막후에서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번 아프간 사태 이후 바이든 대통령의 신뢰도는 추락하고 있다. 특히 '모두 내 탓이로소이다'(mea culpa)라고 자신의 실책을 솔직히 인정하는 책임감 있는 모습 대신 구차한 변명만 늘어놓는 대통령의 모습은 실망감을 더해줬다. 

바이든 대통령은 개인적 시련은 많아도 패배를 모르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공감능력이 뛰어난 정치 지도자로 미국의 이익이라면 적이고 동맹국이고 가리지 않고 마구 압박하던 전임자 트럼프 대통령과는 대척점에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올해 1월 대통령 취임사에서 "미국이 돌아왔다"고 선언하며 트럼프와 달리 동맹외교의 재개를 예고했다. 그러다가 지난 4월 중순 돌연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전쟁은 하지 않겠다”며 아프간 철군 계획을 발표했다. 사실상 트럼프 시대 '아메리카 퍼스트'로의 유턴 선언과 다를 바 없다. 미군이 현지의 동맹세력을 배제하고 적군인 탈레반과의 협상을 통해 일방적으로 철군을 결정한 점은 1975년 4월 사이공이 함락하던 베트남전의 마지막 장면과 너무도 흡사하다. 7월초엔 90% 이상의 병력을 바르람 공군기지에서 아프간 정부조차 까맣게 모른채 기습적으로 철수해 '야반도주'라는 비난을 받았다.

미군이 각종 총기류와 장갑차, 블랙호크 공격헬기 등 수조원 상당의 첨단장비를 버리고 철수하자 탈레반의 아프간 수도 카불 함락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였다. 아프간 지역 대부분을 파죽지세로 점령한 탈레반이 카불로 진격하자 아프간 군은 급속히 궤멸됐다. 카불 사수를 외쳤던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정부군을 지휘하기는커녕 현금을 실은 돈가방을 챙겨 헬기를 타고 해외로 도피했다. 8월 15일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하자 수만명의 인파가 탈레반을 피해 국제공항으로 몰려갔다. 일부는 비행기 바퀴까지 매달렸다 추락하는 장면이 SNS를 통해 전세계에 중계됐다. 카불 함락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여름휴가 중으로 켐프 데이비드에 머물러 있었다. 국무장관 토니 블링컨도 롱아일랜드의 햄튼에서 휴가 중이었다. 미국 수뇌부가 아프간 상황을 오판해 탈레반의 진격에 너무나도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미국의 오판 

탈레반이 기습적으로 카불을 점령한 후 바이든의 철군 결정에 호의적이던 미국 내 여론은 급변했다.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서 황급히 백악관으로 돌아온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철수라는 자신의 결정은 옳았고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상황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gut-wrenching)"며 아프간 정치 지도자들이 나라를 버리고 국외로 떠났고 아프간 군인은 싸우려고 하지 않고 무너졌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의 책임이 자신의 상황 오판보다는 비겁하고 무능한 아프간 정권에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바이든은 이어서 "미국의 국익에 전혀 부합되지 않는 전쟁에서 기한 없이 머물며 싸웠던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오랫동안 아프간에서 미국의 사명이 국가재건이나 반군 제압이 아니라 테러리즘 격퇴에 국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고 강변한다. 이 말은 지난 10년간 미국의 아프간 재건과 탈레반 진압작전이 그저 소극적' (half-hearted)이고 성의없는 미션이었음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꼴이 되었다. (아프간 전쟁은 2001년 9·11 사태 이후 알카에다의 수장 빈 라덴의 미국 반환을 거부하던 탈레반을 응징하기 위해 시작되었으나 10년전 빈 라덴이 살해된 이후에도 미국은 국가재건이라는 명분으로 미군을 아프간에 주둔 시켰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아프간 군인이 스스로 싸우려 하지 않는 전쟁에 미군이 참여할 필요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지난 20년 동안 아프간 전쟁에서 미군은 80만명이 복무했다. 이 중 2461명이 희생하고 2만여명이 부상했다. 그러나 탈레반과 싸우다 숨진 아프간 군인의 희생자는 미군 희생자보다 26배가 넘는 6만6000명이 사망했다. 아프간 민간인의 희생자도 4만7000명에 달한다. 이날 '카불 함락' 기념(?) 바이든이 행한 20분간의 스피치를 잘 뜯어보면 2차 대전 이후 세계질서와 평화 수호를 주도해온 미국이 이젠 더 이상 세계의 경찰이 아님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8월 22일 ABC 방송에 출연해 "아프간 정부가 무너질 때까지 몇 개월 또는 1∼2년이 걸릴 것으로 추정했다"며 미국의 오판을 인정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카불 함락 직후 탈레반의 실질적 지도자로 평가되는 압둘 가니 바라다르와의 비밀회담을 위해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부(CIA)국장을 아프간에 급파한다. 미국이 정한 철수시한인 8월 31일까지 양측이 취할 조치를 논의하기 위한 회담으로 그 세부 내용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바이든은 아프간에 남아있는 자국민과 그들에게 협력한 아프간인들의 대피를 하기에 시간이 너무 촉박해 철수시한을 연장해야한다는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 동맹국들의 요구를 묵살했다. CNN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일부 군 참모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대통령은 철군을 조급하게 밀어붙였고 철군시한을 연장하는 문제는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그는 시간을 끌수록 테러리스트들의 공격 위협만 커질 것이라며 시한 내 철군 완료 고집을 꺾지 않았다.

우려는 곧 현실로 나타나곤 한다. 철군시한을 닷새 앞둔 8월 26일 카불 공항 입구는 자폭테러로 미군 13명 등 170명의 희생자가 발생하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미국은 테러를 자행한 것으로 지목된 이슬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아프간 지부 'IS 호라산'(IS-K)의 고위급 2명을 무인공격기에서 발사된 '닌자미사일'로 암살했다. 앞으로도 미국은 아프간에 군대는 파견하지 않고 무인 공격기로 대(對)테러 공습을 지속할 전망이다. 아프간의 철군이 피로 물들면서 50~60% 웃돌던 바이든의 지지율에 부정여론이 긍정 여론을 앞서는 '데드 크로스'(dead cross) 현상이 나타났다. 공화당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의 탄핵론까지 들고 나오고 있다. 공화당은 아프간 사태 관련 대통령의 책임론을 조사하기 위해 행정부에 자료보전을 요청한 상태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정권을 심판하는 중간선거가 내년 말이라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할 듯하다.

탈레반 정권 인정 불가피? 

 IS의 자폭테러와 미군의 희생으로 취임 이후 최대 위기에 몰린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 철군 결정의 씨앗을 트럼프 대통령이 뿌렸다며 자신의 철군 결정이 불가피 했다고 설명한다.  자신의 철군 결정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2월 탈레반과 맺은 미군철수 평화협정을 준수하는 차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탈레반이 알카에다와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은 상태인데도 평화협정에 사인했음을 슬그머니 지적했다. 아프간 철군이 잘못된 결정이라면 자신만 아니라 트럼프도 같이 책임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올해 5월 1일까지 아프간 주둔 미군을 완전히 철수하겠다고 합의한 상태에서 정권을 물려받아 합의를 따르느냐 아니면 합의를 깨고 탈레반의 공세에 맞서기 위해 추가 파병을 하느냐의 협소한 선택지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아프간 전쟁이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패배 중 하나로 남을 것”이라면서 바이든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했다.  트럼프 정부의 철군 협약을 문제 삼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도 아프간 철군을 공약한 사실을 망각한 것처럼 보였다. 

로이터 통신은 카불 함락 23일 전 바이든 대통령과 가니 아프간 대통령이 나눈 대화 내용을 최근 단독 보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군이 30만명의 무장된 군대를 지녔다면 7~8만명의 군대를 가진 탈레반 군대와 비교해 '최고의 군대'라고 치켜 세웠다. 30만명의 군대 규모가 대부분 장부상으로 존재하는 유령군대라는 사실을 미국은 몰랐을까? 바이든 대통령은 철군 수일 전 테러조직 알카에다가 이젠 아프간에서 사라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것도 사실과 다르다. 최근 UN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간의 34개주(州) 중에서 절반가량인 15개주에서 알카에다가 활동하고 있다. 탈레반, 이슬람국가(IS)나 알카에다 모두 무늬만 다를 뿐 이슬람 수니파 근본주의자 무장단체이다. 이 중 탈레반은 아프간 전쟁 이전인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이슬람 율법으로 유일하게 국가를 경영해본 경험이 있는 세력이다. 집권 당시 여성과 아동에 대한 인권침해로 국제사회의 큰 비난을 받았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은 아프간을 다시 장악한 탈레반을 인정할지 고민 중이다. 인권개선, 포용적 정부 개선을 조건으로 탈레반을 인정하고 아프간이 테러의 온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선 미국이 탈레반을 인정하고 협력하는 수밖에 없다. 별다른 선택지가 안 보인다. 탈레반과의 관계를 끊는다면 아프간이라는 세계적인 전략적 요충지에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공백을 틈타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할 우려도 크다. 카불에 입성해 신정부 구성에 나선 탈레반은 원활한 국가 통치를 위해선 미국이 동결한 90억 달러의 국고가 절실하다. 미군 철수 후에도 일단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아프간 철수완료 대국민연설에서 미국이 앞으로 미국의 이익에 집중할 것이라는 '바이든 독트린'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역사상 최대규모의 대공수 작전을 통해 아프간 현지에 있던 미국인 90%가 빠져나온 사실을 내세우며 "대단한 승리"라고 추켜세웠다. 아프간 현지에 빠져나오지 못한 100명이 넘는 미국인과 수많은 현지 조력자들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20세기 최대 위기로 꼽히는 미국과 소련의 쿠바 핵미사일 기지 건설을 둘러싼 군사적 충돌 위기를 극복해낸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은 대통령의 자리가 세상에서 가장 고독하고 외로운 자리라고 했다. 어느 나라이든 위기의 순간마다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는 최고 지도자는 뛰어난 역량과 판단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최고지도자의 솔직함과 용기 그리고 책임감 있는 행동은 국민에게 큰 힘을 준다. 문제가 터지면 책임을 회피하고 사실을 왜곡 시키거나 구구절절 변명만 늘어놓는 지도자는 역사의 진정한 주인공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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