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희 칼럼] 디즈니 플러스 국내 진출과 생태계의 역학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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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창희 미디어미래연구소 센터장
입력 2021-09-0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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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창희 미디어미래연구소 센터장]



류승완 감독이 연출한 '모가디슈'가 손익분기점인 관객 수 300만을 돌파했다. 류승완 감독의 오랜 팬으로서 모가디슈가 극장 개봉을 택한 것에 대해 우려가 컸다. 넷플릭스 판매를 택했다면 손쉽게 제작비를 보전할 수 있는데 모가디슈는 극장 개봉을 선택했고, 그 선택은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둔 셈이다(물론, 모가디슈가 넷플릭스를 포함한 다른 OTT 사업자와 어떤 협상을 펼쳤는지는 당사자들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극장 개봉을 택하지 않고 넷플릭스를 최초 유통창구로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도 아니다. 창작자나 제작자 입장에서 제작비를 보전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장점이 있다는 취지다). 국내 관객 수만으로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는 것이 유력해진 데다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고, 극장 상영 종료 후에도 2차 유통을 통해 추가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블의 '블랙 위도우'는 미국에서 극장 개봉과 더불어 디즈니 플러스에서도 유료로 공개되었다. 주연과 더불어 기획으로 제작에 참여한 스칼릿 조핸슨은 블랙 위도우가 디즈니 플러스에 동시에 공개되어 입은 손해를 배상받고자 소송을 걸고 디즈니의 중재 요청을 거부했다. 여기에는 물론 금전적인 이유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스칼릿 조핸슨이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비약이 있을 수 있지만 영화인으로서 전통적인 영화산업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디지털 대전환 환경에서 기업들의 경쟁우위 전략을 다루고 있는 램 차란과 게리 윌리건의 책 <컴피티션 시프트>에서는 이제 기업 간의 경쟁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 간의 경쟁을 봐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디지털 환경에서 산업과 산업을 수직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디즈니와 같이 독자적으로 콘텐츠, 플랫폼, 테마파크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자신에게 유리한 생태계 지형을 형성할 수 있는 사업자는 그렇지 못한 사업자에 비해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시장 환경이다. 극장 개봉 후 후속 창구로 넘어갔던 극장 위주의 영화 생태계는 다른 생태계로 바뀌어 나가고 있다. 아마도 전통적인 영화 생태계를 지키고자 하는 쪽과 디지털 환경의 특성을 활용하여 경쟁우위를 창출하고자 하는 쪽의 경쟁과 대립은 계속될 것이다.

디즈니 플러스가 국내 진출을 앞두고 있다. 미디어 분야에 관련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디즈니 플러스가 언제 국내에 진입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왔을 것이다. 디즈니 플러스의 국내 진출 소식이 전해지자 "넷플릭스 주도의 SVOD 시장이 크게 변화할 것이다", "국내 OTT 사업자들의 사정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같은 다양한 전망이 쏟아져 나왔다. 이와 같은 전망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생태계의 단면을 도려내어 특정 영역의 경쟁 상황만을 봐서는 생태계의 역학을 조망하기 어렵다. 넷플릭스 진출 이후 국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난 부분은 플랫폼보다는 콘텐츠 제작분야였다는 것은 미디어 생태계의 전반적인 구도 속에서 변화를 살피지 않으면 특정 분야에서 벌어지는 시장 행위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시사한다.

디즈니는 국내 유료방송 플랫폼에서 자신의 콘텐츠를 거둬들이고 있다. 디즈니 플러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국내 유료방송 시장은 사실상 콘텐츠 차별화가 이뤄지지 못해 왔다. 이제는 오리지널뿐 아니라 자사 플랫폼에서만 이용할 수 있는 익스클루시브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이 플랫폼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 콘텐츠 제작과 확보를 둘러싼 경쟁과 보다 유리한 환경에서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한 생태계 창출 경쟁도 보다 치열하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넷플릭스의 국내 콘텐츠 투자는 넷플릭스에 긍정적으로 작용했지만 국내 콘텐츠 제작산업 입장에서도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국내에서 확보하기 어려운 수준의 제작비를 투자받고 국내 제작인력과 콘텐츠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넷플릭스를 통한 유통보다 효율적인 방식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국내에 과감한 투자를 하기 시작하면서 국내 시장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제작비 수준이 높아졌다. 또한, 방영권을 포함한 IP를 국내 사업자가 확보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중국 자본의 국내 유입이 이뤄지면서 우려되던 국내 제작시장의 공동화 문제는 이제는 넷플릭스와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가느냐에 달려 있을 정도다.

디즈니 플러스의 국내 진입은 아마존, HBO와 같은 다른 글로벌 사업자들도 언제든지 국내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내 미디어 생태계 입장에서 글로벌 사업자들과 어떠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로벌 사업자들과 같이 생태계를 형성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우리의 입장에서 유리하도록 전략적인 활용이 필요하다.

국내 이용자들의 눈높이를 고려하더라도 높아진 제작비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 되었다.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사업자의 투자를 받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넷플릭스가 주도권을 가진 상황이 아니라 복수의 글로벌 사업자가 국내에 진출할 경우 콘텐츠 투자를 받을 때 오히려 국내 사업자에 유리한 계약이 가능할 수도 있다. 콘텐츠 제작 투자를 받더라도 IP의 상당부분을 국내 사업자가 확보할 수 있는 거래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넷플릭스 국내 진출 후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디즈니라는 더욱 거대한 미디어 제국이 OTT를 통해 국내에 들어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이를 새로운 생태계의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생태계에 적응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끊임없이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끊임없는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기회가 찾아온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노창희 필자 주요 이력 

▷중앙대 신문방송학 박사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 ▷미디어미래연구소 방송통신·디지털경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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