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속 시한폭탄, 노후건축물⑪·지상좌담] 성장 이면 속 도시의 슬럼화...골든타임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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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선영 기자
입력 2021-08-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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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모습. [사진=연합뉴스]


1980~1990년대 폭발적인 경제 성장과 함께 지어졌던 건물들은 이제 준공 30년이 지난 노후 건축물로 분류된다. 도시미관을 해칠 뿐 아니라 범죄·사고 유발 우려가 높아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재건축 이득을 기대할 수 있는 주택 소유주와 달리 상업용·공업용 건축물 등 비주거용 건축물은 임차인과의 문제, 복잡한 소유관계, 낮은 사업성 등이 얽혀 있어 적기에 재정비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에 본지는 신동우 아주대 명예교수,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 이경호 LH 그린리모델링센터장,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 등 전문가 4인의 좌담을 통해 노후건축물의 올바른 정비사업 방향에 대해 짚어봤다.
 
-도심에 노후 건축물이 늘어나면서 도시 미관을 해치는 슬럼화의 주범이 될 뿐 아니라 주거환경 열악, 안전문제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한 올바른 정비사업으로는 어떤 것이 있나.

신동우 아주대 명예교수(이하 신동우)= "이상적인 정비사업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방향은 정비사업이 인근 주민을 위하고 그들을 위한 근린 생활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정비사업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그 틀을 만들고, 그 안에서 사업주들이 주민들의 삶을 지정하는 획일적인 사업으로 진행된다. 근린생활지역 위주의 오피스(職)·주거(住)·상업시설(商) 공존형 소규모 정비사업을 리모델링을 통해서 활성화시키는 방안 등을 제안하고 싶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이하 이태희)=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프라가 동반되는 정비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 지금 슬럼화되고 있는 지역은 각각의 건물이 매우 낡았다기보다는 지역 자체가 노후화된 문제가 있다.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프라가 확충되는 공급이, 기반시설이 부족한 곳은 과감한 정비사업이 필요하다."

이경호 LH 그린리모델링센터장(이하 이경호)= "노후건축물의 경우 성능이 저하된 환기시설과 창호 등의 시설에 의해 미세먼지와 같은 유해요소 유입 등 주거환경의 질을 낮추는 원인이 되며, 구조안전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를 위한 대안으로 그린리모델링사업은 기밀성이 강화된 고성능 에너지창호와 전열교환기 등의 교체로 미세먼지를 차단하고 구조 안전점검을 함으로써 겨울철 열 손실 없는 환경 조성 및 안전하고 쾌적한 주거환경 제공이 가능하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이하 이은형)= "올바른 정비사업은 기본적으로 사업지의 원주민 정착률을 극대화하면서 도시경관을 저해하지 않는 형태가 돼야 한다. 그래야만 궁극적으로는 도시경쟁력으로 이어진다."
 
-개발사업이 진행되면 자칫 부동산 시장을 자극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는 어떤 것이 있나.

신동우= "현재의 개발사업은 대규모의 노후 주거와 근린 편의시설 등의 재건축에 치중돼 있으며, 투자 비용을 신규 분양에 의해 회수하는 구조로 진행된다. 따라서 투자자인 건설사·시행사·금융사 등 사업 주체는 사업성 극대화를 위해 원주민들의 주거환경 개선보다 부동산 시세를 부풀리는 데 치중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 주민들은 사업에 참여하기 어렵고, 건설사·시행사에 끌려가게 돼 있다. 사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이 같은 문제는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돼 있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도시·건축 차원에서의 규제를 풀어주고 재정 지원을 하며, 중소규모의 정비사업관리 전문기업들을 육성시켜야 한다. 단순히 재개발·재건축 사업보다는 상대적으로 소규모인 주거환경 개선이나 가로주택정비사업을 더 활성화시키고, 그 내용도 '철거 후 신축' 외에 리모델링도 가능하도록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은형= "개발사업은 지역 부동산가격의 상승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현재 가치는 현재 그 상태이기에 형성된 것이다. 여기에 어떤 식으로든 개선이 가해진다면 이는 곧 지역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된다. 때문에 지역가치를 높이는 개발사업은 필연적으로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가져온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를 원치 않는다면 '보존 중심의 도시재생'밖에 없다. 이마저도 현실에서는 낙후되거나 노후 지역을 어떤 식으로든 개선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연결된다."
 
-노후건축물을 모두 정비사업 방식으로 해결하기에는 어려움이 많고 자칫 난개발이 될 수도 있다. 재건축, 재개발, 리모델링 외에 기존 건축물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보완하기 위해 어떤 대책, 혹은 입법이 필요하나.

신동우= "정부의 정책과 제도는 아직 불완전하다. 우려되는 문제점에 대해 정부는 그때그때 시장에 개입해 풀어나가려는 경향이 있다. 정부나 지자체장이 바뀌면 시장은 혼란을 겪게 되고, 이 과정에서의 실책이 난개발을 초래하게 된다. 따라서 정비사업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단속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기보다 지속가능한 규제정책과 제도를 개선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이은형= "정비사업을 원하는 지역은 그렇게 해주되, 원하지 않는 지역은 강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전자의 경우에는 정비사업을 진행시켜 주면 되고, 후자는 소유주들의 자체적인 건축물 정비를 유도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를 위해 현실에서는 보조금을 주거나 용적률 상향을 통해 건축주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다. 세금 경감도 일종의 보조금 형식으로 판단해 추가할 수 있다."

이태희= "재개발·재건축 같은 사업은 지자체 도시정비계획에 따라 진행하기 때문에 난개발이 오히려 적다. 소규모정비법을 적용하면 인프라 확충은 전혀 되지 않고 공급만 이뤄져 난개발 우려가 있을 수 있다."
 
-정부에서는 주택 외 민간 노후건축물에도 그린리모델링 등의 방식으로 공공성을 반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하는가, 혹은 효과적인 방안으로는 어떤 것이 있나.

신동우= "안전 확보와 그린정책의 구현을 위해 민간 노후건축물의 유지관리와 리모델링 과정에 개입하려는 정부의 의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민간 건축물은 그 수익성 가치에 따라 움직이는 부동산 시장의 영역이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재 정책들은 세부적인 시행 모델이 미비한 상태에서 정부의 의지만 일방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단계다. 민간 건축주는 자발적으로 정부의 그린 정책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정부의 그린정책이 아무리 중요해도 건축주에게는 수익성 유지 또는 개선을 위한 건축물의 노후화 문제 해결이 더 우선적인 관심사다. 따라서 '그린리모델링'보다는 '리모델링 위드 그린'의 개념이 더 실효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실행이 가능하도록 리모델링에 대한 지원정책이 필요하다."

이은형= "기본적으로 그린리모델링은 건축비가 싸지 않다. 건축주의 입장에서 초기 가격의 인상 요인이 되는 그린건축물을 굳이 만들 이유가 없다. 그래서 주위 사례 대부분은 공공건축물이다. 결국 비용문제가 크기 때문에 저금리대출이나 보조금, 리모델링 시 용적률 상향 이외에는 대안이 많지 않은 상황이다."

이경호= "현 단계에서 인센티브 없이 자발적으로 그린리모델링을 실현하기에는 제한되는 요소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는 중장기 관점의 탄소중립 실현과 대응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민간에서 그린리모델링 사업이 지속적으로 창출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민간건축물 그린리모델링 이자지원사업의 경우, 그린리모델링 사업을 신청하고 공사비를 대출받으면 이 대출금의 이자 일부를 정부에서 지원한다. 이 과정에서 건축주가 그린리모델링 사업자를 선정해 손쉽게 지원사업 혜택을 받을 수 있어 건축주의 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다."
 
-해외에서는 50년, 100년 가는 유명 건축물이 많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건축물을 찾기 쉽지 않다. 이유는 무엇이며, 앞으로 도시계획을 세울 때 어떤 노력이 필요하나.

신동우= "우리의 건축 방식은 대체로 싸게 대충 짓고, 유지 관리가 부실하다. 일차적인 책임은 건축사와 기술자, 기능공들에게 있겠지만 사업관리에 소홀하고 단기간에 투자 회수를 원하는 발주자와 건축주의 책임도 크다. 이러한 관행과 인식이 변하지 않고는 모범적인 장수명 건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은형= "지금의 건축 현황에는 우리 현대사가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급하게 경제성장이 필요했기에 별다른 문화축적 등이 어려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각 사회의 생활방식과 문화에 맞는 도시계획이 선행돼야 한다. 최근 신도시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왔다. 때문에 지금은 도시계획보다 개별 건축물의 가치를 높이는 데 인센티브를 주거나 일부 강제할 필요가 있다. 송도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데, 도시경관을 중시해서 야간경관도 심의를 엄격하게 하고 있다. 건축물마다 특색있는 디자인을 유도하고, 이런 것들이 모여 도시의 이미지를 형성한다."

이태희= "해외 건축물은 수명이 길고 우리나라는 짧다는 생각은 편향적인 시각일 수 있다. 외국 노후건축물의 경우에도 잘 지은 뒤 꾸준히 잘 관리한 건물만 오래간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은 공공지원을 통해서라도 오래 남기는 것이 맞지만 무조건 수명만 늘리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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