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지금] 가짜 수산업자, 진짜 정치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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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수석논설위원
입력 2021-08-19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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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짜 수산업자 스캔들에서 보는 진짜 정치업자

  • 자기 사업을 위해 정치하는 정치업자 가려내야

  • 대통령 되려면 정치업자 감별 능력 갖춰야



사업자(事業者)는 어떤 사업, 비즈니스를 직접 경영하는 사람을 말한다. 사업자 등록번호 등 법률적으로 쓰이는 용어다. 사업자를 높여 부르면 사업가(家)가 된다. 성공한 사업가라고 말하지 성공한 사업자라고는 안 쓴다. 여튼 사업자는 중립적이고 사무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사업자에서 '사'를 빼고 '업자'라고 할 때 어감은 그리 좋지 않다. 발음대로 ‘업짜’라고 하면 뭔가 ‘사짜’ 냄새가 난다. 사기(詐欺)꾼이라고 할 때의 그 사 말이다. 한자사전에 나오는 ‘사’ 중 사사로울 사(私), 간사할 사(邪)도 ‘사짜’라는 지칭에 중의적으로 쓰기도 한다.

업자와 관련한 쉬운 예로 금융업자과 금융인, 금융자본가를 들 수 있다. “금융업계에 종사하고 있다”는 말은 여러 가지 해석 혹은 상상의 여지를 준다. 시장 상인을 상대로 일수놀이(원금과 이자를 합한 금액을 나눠 매일 받는 일)를 하거나 명동에서 사채업을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대형 시중은행에 다니는 임직원을 떠올릴 수도 있다. 사채업자, 금융인과 달리 자본가, 투자가처럼 호칭 끝에 사업가의 가(家)가 붙으면 같은 금융계 종사자라도 그 격(格)이 사뭇 다르게 들린다.

그렇지만 업종에 따라 ○○업자가 주는 뉘앙스는 그때그때 다르다. 좋다, 나쁘다 가치를 두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수산업자라는 말을 쓸 때는 가치 판단이나 편견 없이 쓴다. 그러나 요즘 ‘가짜 수산업자’가 문제다. 수산업자들이 분노하고 있다.
 

가짜 수산업차 김모씨가 수입 스포츠카를 몰고 있는 모습. [사진=김씨 SNS]


수산업자 타이틀을 내걸고 재력가 행세를 하며 정치인, 검사(檢事), 기자(記者) 등을 상대로 로비를 벌인 이른바 ‘가짜 수산업자 게이트’가 지난 6월 터졌다. 당시 모든 언론은 ‘수산업자 김모씨’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김씨는 자신이 가진 배 수십 척에서 오징어를 잡아 배에서 급속 냉동(선동 오징어)하는 사업에 투자하면 떼돈을 벌 수 있다고 사기를 쳤다.

그러자 수산업 종사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김모씨는 수산업을 하지 않은 가짜 수산업자라는 것이다. 한국수산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수연)은 지난 7월 7일 성명을 발표했다. 한수연은 수산업체를 경영하거나 수산업에 종사하는 어민 등 3만5000여명 회원을 둔 국내 최대 수산업 단체다.

진짜 수산업자들이 모인 조직 한수연의 성명 제목은 ‘언론은 수산업자라는 표현을 쓰지 마라-사기꾼으로 인해 선량한 수산인들 피멍든다’였다. “김씨가 수산업계 재력가 행세를 했지만 실제 수산업체를 운영한 적이 없다. 수산업과 관계없는 사기꾼 수산업자라는 표현으로 자존심이 상하고 억울하다. 언론은 (우리가 입은) 정신적 피해와 상처는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라고 호소했다.

가짜와 진짜를 구분 못하는 언론에 대한 진짜들의 분노, 호소다. 이 지적을 받아들인 대부분 언론사들은 '가짜 수산업자'라고 호칭을 고쳤다.

그런데 정치에도 '업자'가 있다. 정치하는 사람은 정치인이다. 여기에도 비슷한 호칭의 차이가 존재한다. 정치가(政治家)는 정치인보다 한 수 위다. 아무나 스스로를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경험과 경륜, 사람과 세(勢)를 끌어모으는 인품 등이 어우러진 정치가는 쉽게 붙이는 ‘레테르’가 아니다.

가짜 수산업자 사건을 보면서 돈을 노리고 정치에 뛰어든 업자들, ‘진짜 정치업자’들을 떠올렸다. 또 한창 대선 전쟁을 치르고 있는 정치권에 대입해 보며 무수히 많은 정치업자들의 출현을 걱정한다.

우리는 정치꾼, 미국에서는 폴리티코(politico-동명의 정치전문 사이트도 있음)라고 부르는 정치판 한량들과 정치업자는 다르다. 정치꾼은 권력과 명예의 ‘완장’을 차기 위해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자들을 일컫는다. ○○꾼은 노름꾼, 사기꾼에서 보듯 무슨 행위를 하는 걸 낮춰서 부르는 말이다. 정치꾼은 정치인이라는 대접을 받는 걸 즐기면서 그걸 여러 곳에 이용한다. 정치 낭인인 정치꾼은 나름으로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고 말하고 다닌다. 그나마 의리, 낭만이라도 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정치업자는 오로지 돈이다. 정치업자는 간단히 말해 자기 비즈니스를 위해 정치를 하는 사람이다.

돈이 많은 사람이 정치를 하는 것과 돈을 벌기 위해 정치를 하는 건 크게 다르다. 고(故) 정주영-정몽준, 고 김진재-김세연 부자(父子) 같은 전자는 정치꾼이 아닌 정치인, 나아가 정치가를 지향했(한)다. 하지만 후자, 즉 '업자' 출신 일부 정치인의 경우 돈을 목적으로 정치를 한(했)다. 이들이 바로 가짜 수산업자보다 더 위험한 ‘진짜 정치업자’다.

대통령 선거 때만 되면 ‘나중에 한 자리’를 노리고 후보 캠프에 합류하는 정치꾼들과 사뭇 다르다. 진짜 정치업자들은 자신의 지향이나 정치적 이념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자신의 사업을 위해 5년마다 대선 캠프로 달려든다. 4년마다 국회의원 공천을 받기 위해 애쓴다. 불나방은 그저 불을 보고 달려 들지만, 이들은 파리떼와 다름없다.

정치인은 국가공무원법에서 ‘정무직 공무원’으로 정의된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정치공무원이 아닌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정치의 길로 들어선 정치업자들은 나라와 백성의 독(毒)이다. 대권을 노리는 사람이라면 이런 자들을 가려낼 줄 아는 눈을 가져야 한다. 그게 대통령 인사의 출발이자 참정치인 감별사로서 필히 갖춰야 할 대통령의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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