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 나우] ⑤ 코로나보다 무서운 '34조'…일본, 적은 적자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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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입력 2021-07-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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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소 땐 일본은 IOC에, IOC는 NBC에 천문학적 비용 손배소…폐막식 이후 후폭풍 우려

주먹을 맞대는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왼쪽)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사진=IOC 제공]

지난해 3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는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과의 통화에서 2020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을 연기하기로 합의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범유행을 선언한 지 12일 만의 일이다. 이는 올림픽 사상 최초의 연기로 기록됐다.

여성 비하 발언으로 지난 2월 옷을 벗게 된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 회장은 당시 "도쿄올림픽 규모는 애초 계획과 같거나 축소될 수도 있다"는 말을 남겼다.

시간이 흘렀지만, 전 세계와 일본 내 코로나19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그래도 일본 정부와 IOC는 개최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가 총리 바통을 이어받았어도 개최 의지는 여전했다. 

일본 정부와 IOC, 누구 하나 선뜻 '취소'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일본 내에서는 무려 하루 5000~7000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했는데도 말이다. 일본 내에서 부정적인 여론만 80%에 달했다. 그런데도 올림픽을 취소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중계권 판매로만 3조원 벌어들이는 IOC, 입김 샌 미국 NBC

미국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IOC는 도쿄올림픽 중계권 판매로만 26억5625만 달러(약 3조500억원)를 벌어들인다. 이는 올림픽 개최로 발생하는 IOC의 전체 수익 중 73%에 달하는 수치다 .

IOC나 취소 권한이 없는 일본 조직위 중 한 곳이 대회 취소를 선언한다면 손해배상소송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물론, IOC는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는 여분의 자금을 마련해 두고 있다. 윤강로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 원장에 따르면 "IOC는 올림픽 한 회를 개최할 돈을 축적해 둔다. 문제가 생기더라도, 올림픽을 통해 다시 수익을 창출하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미국 NBC다. NBC는 1988년부터 하계올림픽, 2002년부터 동계올림픽에 대한 미국 중계권을 보유하고 있다. 계약 규모만 43억8000만 달러(약 5조원)다.

2014년 5월에는 2032년까지 올림픽을 중계하기로 연장했다. 연장 금액은 77억5000만 달러(약 8조9100억원)에 육박한다.

취소를 외치는 순간 NBC가 IOC에 소송 화살을 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NBC는 도쿄올림픽에 14억5000만 달러(약 1조6600억원)를 투자했다. 바흐 위원장이 "막상 올림픽이 개막하면 일본 여론도 바뀔 것"이라는 말이나, "가장 잘 준비된 올림픽" 등으로 말하고 다니는 이유 중 하나다.

올림픽 취소는 NBC에도 손해다. NBC는 이미 12억5000만 달러(약 1조4300억원)의 광고비를 받은 상황이었다. 올림픽이 개최되지 않는다면 모두 돌려줘야 할 판이었다.

천문학적인 돈의 흐름에 IOC와 일본 정부 모두 입을 닫은 셈이다. NBC는 막대한 투자만큼 입김도 세다. 모리 전 회장의 옷을 벗길 때도 일조했다. 당시 NBC는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다른 인물이 조직위를 대표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그들의 뜻대로 여성인 하시모토 세이코(橋本聖子)가 조직위를 이끌게 됐다.
 

텅 빈 올림픽 경기장 [연합뉴스]

◆무너진 올림픽 3대 성공 요소

올림픽 성공의 3대 요소는 '꽉 찬 경기장', '자원봉사자' 그리고 '개최국 선수들의 경기력'이다.

삼위일체가 돼야 올림픽이 완벽하게 성공한다는 정론이다. 하지만 도쿄올림픽에서는 이미 한 가지가 무너졌다. 바로 '꽉 찬 경기장'이다.

도쿄올림픽이 개최되기 직전인 이달 초, 일본 정부는 도쿄 등에 4차 긴급사태를 선포했다. 매서운 '코로나19 확산세'가 이유였다. 

긴급사태 여파로 일본 정부는 결국 전체 올림픽 경기 중 96%를 무관중으로 결정했다. 지난 22일 조직위는 입장권 판매량을 발표했다. 겨우 4만장이었다. 이는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 전체 좌석(6만6806석)의 60%에 해당한다. 올림픽 전체 경기가 A매치 축구 경기보다 관중이 적은 셈이다.

일본 매체 등에 따르면, 전체 33개 종목 경기에 363만장의 입장권이 팔렸지만, 긴급사태 발효 후 359만장이 자동으로 환불됐다. 이로 인한 손실만도 약 9000억원에 달한다. 

사람이 오지 않으니 호텔 등 숙박시설 취소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에 대해 일본 민간연구소인 '노무라소켄(野村總硏)'은 "약 1500억엔(약 1조5600억원)을 손해 봤다"고 추정했다.

또 하나의 요소인 '자원봉사자'도 흔들렸다. 8만명이었던 자원봉사자 중 1만명이 코로나19 사태로 그만뒀다. 개회식이 열리는 도쿄 국립경기장에서는 우크라이나 자원봉사자가 한 여성 자원봉사자를 성폭행하기도 했다.

이제는 올림픽 성공 3요소 중 '개최국 선수들의 선전'만이 남은 상태다. 이조차 성공하지 못한다면, 도쿄올림픽은 '역대 최악의 올림픽'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다. 
 

일본 선수들 앞에서 발언 중인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사진=IOC 제공]

◆일본 "개최는 어쩔 수 없는 선택" 

미국 포브스에 따르면, 도쿄올림픽의 총비용은 280억 달러(약 32조원)다. 이는 전 대회인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의 총비용(137억 달러)과 비교했을 때 2배 이상이다.

일본은 그만큼 준비에 공을 들였다. 앞으로의 수익으로 메울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모든 것이 틀어졌다. 1년의 연기나 취소 모두 일본에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스포츠 경제학 등을 전문으로 하는 미야모토 가쓰히로 간사이대학교 명예교수는 "1년 연기되면 경제 손실이 6408억엔(약 6조68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취소됐으면 어땠을까. 포브스가 밝힌 바처럼 일본 정부가 1조600억엔(약 11조원), 도쿄도가 1조4100억엔(약 14조7000억원), 조직위가 6000억엔(약 6조2600억원) 등 도합 3조700억엔(약 32조원)을 집행했다.

이 중 이미 1조600억엔(약 11조원)을 사용한 상황이었다. 만약, 취소가 결정된다면 이 돈부터 고스란히 먼지가 된다.

여기에 연쇄적인 피해를 추산해 보면 최소 12조원부터 최대 34조원까지 손해를 본다는 전망이 나온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일본 국민에게 신망을 잃게 된다. 개최 전부터 크고 작은 사건·사고를 덮기 위해 '부흥 올림픽'이라는 의의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신망은 형용할 수 없는 가치다.

결국, 일본은 큰 적자(취소)와 적은 적자(연기 개최) 중에서 적은 적자를 택했다.

사실, 올림픽은 아무리 잘해도 적자다. 그래서 '적자 올림픽'이라고도 불린다. 역대 올림픽 중 1994 릴레함메르동계올림픽과 1996 애틀랜타올림픽을 제외하면 모두 적자가 났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당시에는 적자액이 적었기 때문에 '흑자' 대신 '성공적'이라는 말이 붙었다.
 

도쿄 도심에서 진행 중인 올림픽 반대 시위.  [연합뉴스]

◆우려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은 진행 중 

2020년 개최를 목표로 뒀던 도쿄올림픽이 천신만고 끝에 지난 23일 시작됐다. 개회식에서는 또 하나의 기록을 남겼다. 사상 최초 '무관중' 올림픽 개회식이다.

외교 사절 등 900여명만이 현장에서 개회식을 지켜봤다. 스가 총리는 애가 타고 있다. 저조한 외교 성적 때문이다. 일본을 방문한 국가와 국제기구가 15곳이 고작인 상황이다. 이는 2012 런던올림픽 80명,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40명에 비하면 너무나도 적은 수다.

코로나19 방역도 문제다. 연일 올림픽 관련 확진자가 늘고 있다. 출전해야 하는 선수가 코로나19에 확진돼 출전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윤강로 원장은 "IOC 존립의 목적은 올림픽을 치르는 것이다.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일본의 적자 폭은 최종 정산해봐야 알 수 있다. 전망이 밝지는 않지만,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스포츠 정신으로 개최돼야 할 올림픽이 돈에 얽혀, 돈에 묶여 끌려다니고 있다. 폐막식 이후 '적자 후폭풍'은 불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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