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교 칼럼] 변이까지 창궐..백신 불평등 더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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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입력 2021-06-24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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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인도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새로운 델타 변이가 보고되면서 전 세계가 다시 긴장하고 있다. 인도발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인 ‘델타 플러스’는 기존 델타 바이러스보다 전파력이 몇 배 강한 것으로 알려져 다시금 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세계 경제가 델타 플러스로 인해 다시 침체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세계 각국이 백신 접종률을 높이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문제는 세계가 촘촘히 연결되어 있어 몇몇 국가들만의 백신 접종률 제고만으로 세계적 대유행을 막을 수 없다는 데 있다. 따라서 세계가 공히 백신 접종률을 높여야 하는데, 선진국과 개도국 간 백신 확보 및 접종률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백신 불평등 문제) 세계가 또 다른 갈등을 겪고 있다.

백신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국제 노력 중 하나는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과 보건’에 대한 논의다. 핵심은 선진국 제약사들이 개발해 특허를 얻은 백신기술을 개도국이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WTO 지식재산권협정(TRIPs)의 적용을 일시 유예(waiver)할 것인지의 여부다. 인도와 남아공을 중심으로 60여 개도국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효과적인 대응과 조기종식을 위해 백신 제조와 관련된 지식재산권 행사가 전면 유예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선진국은 지식재산권의 유예는 새로운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에 부정적 영향을 주어 오히려 코로나 종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특히 지식재산권의 유예보다 백신의 수출제한 조치가 더 큰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EU의 주장은 최근 인도의 백신 수출제한 조치를 간접적으로 비난한 것이다. 세계 제2위의 백신 생산능력을 가지고 있는 인도는 당초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생산해 아프리카로 보낼 예정이었다. 그러나 급작스러운 코로나 환자의 급증으로 인도 정부는 백신 수출을 전면 금지시켰다. 이로 인해 세계적인 백신공동구매배분 프로젝트인 코백스(COVAX)의 아프리카에 대한 백신 공급이 차질을 빚었다. 인도 등 개도국이 한 방을 먹은 셈이다.

이에 인도와 남아공은 백신 특허권의 폐지 기간을 설정하는 수정안을 제시하면서 재차 EU를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당초 EU와 같은 입장이었으나, 자국 내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확보한 백신에 여유가 생기자 백신에 대한 지식재산권의 일시 유예가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이는 중국이 자국 백신인 시노팜을 활용해 개도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다. 또 초과 확보한 백신을 그냥 놔두면 보관비용과 유통시한 문제가 있으니 인심을 쓰면서 기증하는 동시에 인도적 차원에서 개도국의 백신 생산을 지원하는 것은 국제무대에 복귀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미국의 의도와도 부합한다. 그렇다고 미국의 입장이 인도나 남아공 등 개도국의 입장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인도와 남아공 등 개도국은 백신 제조 자체는 물론 관련된 원료를 포함해 치료제까지 일체의 특허에 대해서 지식재산권을 유예하자는 입장인 반면, 미국은 유예는 백신의 제조에 한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EU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EU는 지식재산권의 유예가 아니라도 ‘강제실시권(compulsory license)’과 같은 현행 규정을 적용하면 개도국도 관련 특허를 사용해 백신을 생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강제실시권이란 지식재산권자의 허락 없이 강제로 특허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특허권에 대한 일종의 제약장치로 위급상황에서 적용할 수 있다. 팬데믹과 같은 상황은 세계적 위급상황이니 강제실시권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 EU의 반박논리이다. 그럼에도 개도국이 강제실시권 적용을 꺼리는 것은 이를 활용할 경우 지식재산권자와의 협의를 거쳐 일정 부분 보상을 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돈 문제로 귀착된다.
또한 EU는 지식재산권을 유예해도 개도국이 단기에 백신 생산을 늘리기 어려워 큰 의미가 없다는 주장도 한다. 화이자나 모더나 같은 백신은 특허 내용이 모두 공개되더라도 제약사로부터 제조기술 전체를 이전받지 못하는 한 생산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는데, 이는 대부분의 제약사들이 백신 제조를 위한 기술 중 일부만을 특허로 제출해 보호받고 또 다른 핵심은 영업비밀로 관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식재산권이 일시 유예된다고 해도 개도국의 백신 생산증가가 불가능할 수 있다. 제약사와 생산업체 간 협력이 절대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백신 불평등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백신의 수요 측면에서 백신이 필요한 나라의 실상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백신이 적시 공급된다고 해도 국경에서 이를 신속히 처리하고, 필요 장소로 운송·보관하는 능력 그리고 접종 시설과 관련 의료 인력은 해당국 보건의료의 기본 인프라이다. 이러한 보건의료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백신이 공급된다고 해도 실제 접종률 제고는 별개 문제다.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가 공급된 백신을 반납하고 때론 유통기간을 넘겨 버려지는 백신이 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나타내 준다.

이렇게 보면 백신 불평등 문제의 해결이 결코 간단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지금은 델타 변이의 확산을 막는 것이 시급하다. 최단 시간 내 세계가 집단면역을 달성하지 않으면 델타 변이가 기존 백신의 효능을 떨어뜨리고, 세계 경제를 다시 나락으로 몰고 갈 수 있다. WTO 신임 사무총장의 역할과 선진국과 개도국 간 양보와 희생적 타협이 절실한 상황이다.
 

서진교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학교 농업경제학과 △미 메릴랜드대 자원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얀구원 선임연구위원 △관세청 자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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