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하 칼럼] 건보료 산정기준에서 재산·車 빼야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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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입력 2021-06-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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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하 교수]



지난 3월 공시된 공동주택 가격 인상 파동이 건강보험에까지 몰아치고 있다. 국민의힘 유경준 의원실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요청하여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1월부터 공시지가 인상으로 기존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중 5만1268명이 자격을 상실할 것이라고 한다. 인구 5만명 규모의 서천군·옥천군 같은 군 인구 전체에 해당하는 가입자가 피부양자에서 탈락, 지역가입자로 전환되어 건강보험료를 납입해야 한다.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이 되기 위해서는 소득요건과 재산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 중 재산요건은 재산세 부과기준으로 9억원 이상을 가지고 있거나 9억원 이하라도 재산이 5억4000만원 이상이고 소득이 1000만원 이상이면 피부양자 자격이 상실된다. 그동안 재산이 9억원 혹은 5억4000만원 이하였던 피부양자가 이번 공시가격 인상으로 졸지에 보험료를 내게 된 것이다. 새로 주택을 구입한 것도 아니고 그냥 살고 있는 집값이 올라서 새로 보험료를 납입하게 된 것이다. 집값이 9억원으로 상승한 피부양자는 다른 소득이 전혀 없다 하더라도 월 20만원 정도의 보험료를 납입해야 한다. 이들 중 일부는 피부양자 자격만 잃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받고 있던 기초연금도 못 받게 될 수도 있다. 정부는 피부양자 탈락으로 보험료를 납입하게 된 사람들에게 보험료의 50%를 2022년 6월까지 경감해 준다 하지만 그야말로 일시적인 미봉책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보험료 산정기준에 소득 이외에 재산과 자동차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건강보험료를 산정할 때 재산을 기준으로 하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유일하다. 우리나라에서 재산을 건강보험 산정기준에 포함시킨 것은 1988년과 1989년, 당시 의료보험을 농어촌지역과 도시지역에 확대할 때였다. 그때는 지역가입자의 상당수를 점하던 자영업자의 소득을 파악하기 어려워 소득을 추정하는 용도로 재산이 보험료 부과기준으로 사용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상거래의 주요수단이 카드로 변하면서 이제 자영업자 소득도 대부분 노출되고 있다. 더욱이 현재의 지역가입자는 자영업자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직장가입자였던 봉급생활자가 은퇴하면서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렇게 되자 은퇴로 지역가입자로 전환된 이후 소득은 거의 없어졌는데도 불구하고 건강보험료는 더 많아지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도 2017년 건강보험료를 소득 중심으로 전환하는 정책을 추진했지만 최종 국회를 통과한 개편안에서는 재산에 대한 보험료 부과 비중을 일부 낮추기는 하였지만 2022년에 시행될 2단계 개편 시에도 재산은 보험료 부과기준으로 그대로 존치할 예정이다.

우리나라 건강보험료는 보험료라기보다는 세금에 가깝게 인식되고 고소득자와 저소득자 간의 보험료 격차가 350배에 이르는 강력한 소득재분배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보험료는 원칙적으로 이용자 부담의 원칙이 중요하고 세금부과에서 적용되는 응능의 원칙은 부차적이어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건강보험료는 부지불식간에 사실상 조세와 유사하게 자리잡았다. 직장가입자에게는 소득에만 보험료를 부과하면서 지역가입자에게는 소득 이외에 재산과 자동차에 부과하는 것은 더 이상 정의롭지 않다. 자동차에 대한 건강보험료 부과도 그렇다. 롤스로이스 타는 사람은 당연히 보험료를 내야 한다. 하지만 롤스로이스와 건강보험료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롤스로이스 타면서 보험료를 안 내는 사람이라면 세금도 안 내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고, 이 사람은 국세청에서 조사해서 알아서 할 일이지 건강보험이 롤스로이스 타는 사람 찾아다니면서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리나라는 기초연금 지급 시에도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하고 국민기초생활보호 대상자 선정 시에도 그렇게 한다. 언뜻 보기에는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주거수단에 불과한 집이나 전세보증금을 소득으로 환산하여 대상자에서 제외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소득보장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하거나 빈곤하게 만들 위험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원점 상태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

재산에 대해 우리사회에 만연한 이 같은 기준들은 재산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무관하지 않다. 재산의 원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발생된 소득을 소비하지 않고 저축하는 과정에서 축적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소득에 대해서 적어도 한번은 세금을 징수하기 때문에, 재산은 이미 세금을 납부한 것이거나 세금 안 낸 재산은 처분과정에서 세금을 납부하게 되어 있다. 정당하게 모은 재산까지 사시적으로 보면, 누가 저축을 하려고 할 것인가. 개인, 가계, 기업 할 것 없이 생산한 것을 저축 없이 모두 소비했다면 오늘날의 번영된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투명한 국가가 되었다. 국세청이 가계와 기업의 소득 흐름을 꿰뚫어 보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 이상 재산을 소득을 의제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필요가 없다. 일단 국민건강보험 보험료 부과기준에서 재산과 자동차를 제외하고, 기초연금·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등 각종의 복지급여 산정기준에서 재산을 반영하는 방식도 합리적으로 조정해 나가야 할 때이다.
 
김용하 필자 주요 이력 
 
△성균관대 경제학 박사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전 한국경제연구학회 회장 △전 한국재정정책학회 회장 △현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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