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의 눈물] [르포] "하루 하나 팔기도 힘들다"…시내점 줄줄이 폐업 수순 밟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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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지 기자
입력 2021-04-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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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말 오후에도 한산한 세계 1위 韓 면세시장

  • 외국인 관광객 없고 일부 '다이궁' 들만

'스르륵, 스르륵' 화려하게 꾸며진 공간 속에서 적막감을 깨는 소리는 오직 에스컬레이터 소리뿐이다. 직원들은 높은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만 하염없이 바라본다. 25일 오후 2시 국내 명실상부한 1등 면세점이자 지난해 세계 2위였던 롯데면세점이 운영하는 서울 소공동 명동본점 이야기다. 

이날 돌아본 명동본점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이라면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던 명품 코너도 한산했다. 면세점 입구에서부터 줄을 서다가, 개점과 동시에 중국인 관광객과 다이궁(代工·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물건을 구입해 판매하는 중국인 보따리상)이 '오픈런'을 하던 때와는 영 딴판이다. 같은 건물 1층 인산인해를 이루는 롯데백화점 본점과 더욱 비교됐다.

그나마 대기줄이 있는 곳은 우리나라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뿐이었다. 다이궁으로 보이는 극소수 중국인이 상품을 구매 중이었고, 중국인 한 명이 라이브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외 몇몇 다이궁들은 벽에 기대어 휴대전화로 실시간 주문을 기다리는 모양새다. A브랜드 직원은 "이정도는 평소보다 손님이 많은 편"이라면서 "외국인 관광객이 못 오는 상황이다 보니 평일에는 물건 하나 못 파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서민지 기자]

해외패션잡화가 몰린 9~11층은 사정이 나았다. 12층은 직원 외 손님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B브랜드 화장품 담당자는 "다른 지점에 있다가 주말에 파견을 오게 됐다"면서 "(해당 점포가) 그나마 면세점 중에서는 손님이 있는 편인 것 같다"고 타 점포의 심각성을 전했다. 롯데면세점은 △명동본점 △월드타워점 △코엑스점 △부산점 △제주점 모두 다섯군데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 2위이자 지난해 세계 3위 면세점이던 신라면세점이 운영하는 서울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국내 1, 2위 면세점의 현실이 이렇다 보니, 다른 면세점의 상황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일단 시내면세점에 손님 유치를 하려면 하늘길이 뚫려야 하는데, 백신 보급이 빨라지고 있다지만 당분간은 여의치 않아 보인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외국인 관광객은 90% 이상 줄었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 2월 외국인 방문객 수는 4만4044명으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방문객 수가 크게 줄며 국내 면세점 매출 중 외국인 매출은 1조1037억원으로 지난 1월(1조3448억원)보다 크게 줄었다.

25일 오후 신라면세점 서울점. [사진=서민지 기자]

내국인 매출은 549억원을 기록하며 전월 대비 43.4% 증가했지만, 이마저도 비출국자가 이용할 수 있는 제주 지정면세점에서 발생한 건이 대부분이다. 지난해 매출이 40% 이상 감소한 국내 면세점 빅4(롯데·신라·신세계·현대백화점)의 합산 영업손실만 3155억원에 달한다.

코로나19 여파가 장기화되면서 시내면세점 철수가 잇따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롯데면세점 명동 본점, 신라면세점 서울점은 자가 점포라 그나마 낫지만 임차 점포는 더는 견디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미 신세계면세점은 개점 3년 만인 오는 7월 17일 서울 강남점을 철수하기로 했다. 연간 150억원에 달하는 임대료를 감당해야 하는데, 고난의 시기가 언제 끝날지 모르다 보니 득보다 실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당장 롯데면세점 코엑스점은 내년 특허 만료를 앞두고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졌던 시내면세점 사업은 2017년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보복 이후 수익성이 극감해 한차례 폭풍을 겪었다.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사드 보복을 기점으로 발을 끊으면서 면세점 시장이 다이궁 위주로 재편됐고, 각사는 다이궁 모시기에 거액의 송객수수료와 마케팅비를 지출하며 출혈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19년 한화 갤러리아면세점과 두산 두타면세점에 이어 탑시티면세점과 에스엠면세점 등 중견·중소 면세점까지 경영상의 이유로 시내면세점 특허를 조기 반납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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