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안 없었다"…이용주 감독이 말하는 '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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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21-04-23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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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복' 이용주 감독[사진=CJ ENM 제공]


이용주(51) 감독은 줄곧 '두려움'에 관해 고민해왔다. 인간이 가지는 원초적인 감정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솔직해야 했다. 그는 오랜 시간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들여다보고 골몰해왔다.

그 결과 비범한 능력을 가진 소녀에게 구원받으려던 이들의 잔혹한 비밀을 그린 공포 영화 '불신지옥', 첫사랑과 비겁하게 도망친 기억에 관한 두려움을 담은 멜로 영화 '건축학개론'이 탄생했다. 두 작품 모두 핵심 주제는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이용주 감독이 9년 만에 내놓은 신작 '서복' 역시 두려움에 관해 말하고 있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기헌이 복제인간인 서복과 동행하며 두려움을 마주하고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이야기다. 죄인과 구원자 그리고 삶과 죽음을 오가며 사색하는 '서복'은 이용주 감독이 오랜 시간 고민한 원초적인 두려움이었다. '불신지옥'의 확장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 개봉 후 여러 가지 논쟁이 벌어진다는 건 그만큼 극장 밖에서 영화가 시작된다는 이야기기도 하다. '서복'을 둘러싼 여러 가지 고민과 이용주 감독의 생각들을 함께 듣고 나눌 수 있었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나눈 이용주 감독의 일문일답이다

영화 '서복' 이용주 감독[사진=CJ ENM 제공]


영화가 공개된 뒤 '과학 소설(SF)' 분야인가 아닌가로 논쟁이 있었다
- '서복' 공개 후 느낀 건 '관객, 기자들이 이렇게 분야(장르)에 예민했던가?'였다. 저는 글 쓰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에 '갈래(장르)' 자체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갈래라는 건 곧 클리셰처럼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주된 분위기를 나누기 때문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사회과학이나 사극은 이야기와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미술 배경의 일부인 셈이다.

관객들이 점점 더 취향이 확고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관객 수요(니즈)에 따라 분야(장르)를 나누는 것이 점점 보편화하는 것 같다
- 아이러니하다. '살인의 추억'만 하더라도 당시 대작 영화로 분류됐다. 하지만 그 작품이 전형적인 분야(장르) 영화는 아니지 않나. 분야가 충돌한다. 그런 점이 매력적인 부분으로 꼽혀왔는데 '서복'이 개봉한 2021년에는 오히려 분야 안에 갇혀있다는 느낌이 든다. 누군가는 '165억 투자금이 들어간 대작 영화인데 익숙한 포맷이 아니라'고 한다. 그 말인즉슨 어떤 법칙을 따라가야 한다는 거다. 다양성 측면에서 좋아 보이지 않는다.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등 영웅 영화를 보면 구성(플롯)은 다들 비슷하다. 같은 구성을 하고 이야기를 펼치는 건 개인적으로 매력적이지 않다. '서복'을 보며 '관객들이 이런 점들을 기대하는구나!' 생각이 들면서도 '더욱더 재밌게 만들어야겠다' 싶다. 익숙하지 않더라도 재밌다는 생각이 들게끔 말이다.

영화를 만들 때 '두려움'이라는 핵심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확장해나간다고 했다. '서복'의 출발점, '두려움'은 무엇이었나?
- 원초적인 두려움이다. '죽음'이다. 영화 '불신지옥'의 확장판이라고 생각한다. '불신지옥'을 찍고 거기에서 하고 싶은 말이 더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죽음'에 관한 두려움에 관해 고민한 모양이다
- 그렇다. 개인적인 일도 있었고 나이를 먹다 보니 자연스레 죽음에 관해 생각하게 됐다. 정확히 말하자면 '죽음'보다는 '두려움'에 초점이 더 맞춰져 있다. '나는 왜 죽음을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사는 건 두렵지 않은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했다.

영화 '서복' 이용주 감독[사진=CJ ENM 제공]


여느 사회과학 분야(SF)와 다른 점은 '관찰자'가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만들어진 자'의 사유가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관찰자'의 사색이 담겼다
- 그렇다. 저는 '서복'이 초월자 혹은 절대자라고 생각했다. 약간 신 같은 개념이다. 그를 인간의 영역에서 바라보고자 했다. '불신지옥' 속 소진(심은경 분)이 그런 것처럼. 그 친구는 복제인간이 아니라 신들린 아이지만…. 맥락적으로는 같다. 초월자가 기적을 행하고 인간 영역의 사람들이 그에게 믿음을 가지게 되는 과정이다.

그런 요소들이 종교적인 이미지로 다가오기도 한다. 물, 방주, 절대자 등등
- 특정 종교를 염두에 둔 건 아니다. 두려움은 믿음을 잉태한다. 두렵기 때문에 믿음을 가지게 되고 믿음이 두려움을 억제할 수 있다. 실패에 관한 두려움을 상쇄하는 심리 치료 같은 거다. 인간이 죽음에 관해 느끼는 두려움은 숙명이다. 자유로울 수 없다. 영원히 도망치려고 하는 거고. '서복'은 이 같은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거고 그걸 깨달은 기헌이 서복을 향해 총을 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등장하는 '원형'의 이미지도 같은 맥락인 것 같다. 새 떼가 원형으로 날아가거나 돌무덤 같은 것도 어떤 패턴이나 균형을 가지고 있더라
- 원형의 패턴이 있다. 저는 그게 궁극의 형태라고 생각한다. 우주, 물의 이미지를 반복하려고 했다. 물리적이라기보다 심상적으로 영화의 색깔이 되었으면 했다. 

기헌 캐릭터도 흥미롭다. 그가 가진 죽음의 두려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신파적 요소를 추가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모두 지워버렸다
- 몇몇 분들이 '기헌이 이해가 안 간다'고 하시더라. '왜 이리 죽음을 두려워하냐'는 반응이었다. 저는 당연히 기헌을 이해할 거로 생각했는데. 이야기의 핵심 주제를 위해 죄책감이라는 요소 빼고는 모두 지웠다. 각색 과정에서 기헌이 아닌 기헌의 아들이 시한부라는 설정도 있었는데 본래 주제가 훼손되더라. 그래서 다 지워버린거다.

'박보검 외에는 대안이 없다'라고 했다. 어떤 이유였나?
- 서복 배역(캐스팅)에 있어서 몇 가지 조건이 있었다. 첫재는 남자일 것, 두 번째는 10대나 20대일 것.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주연 배우는 (박)보검 씨밖에 없었다. 그리고 글을 쓸 때 생각했던 서복의 이미지와 많은 부분 일치했다. 소년 같기도 하고 어른 같기도 한 모습이나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눈빛이 그랬다. 천사 같기도 하지만 무섭기도 한 그 눈빛이 정말 좋았다.

영화 '서복'[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기헌과 서복의 관계도 다양하게 느껴졌다. 죄인과 구원자의 모습도 강했지만 어떤 모습은 육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 시장에서 서복은 아기처럼 표현됐다. 이것저것 구경하고 싶어 하고 말도 안 듣고…. 컵라면을 먹는 장면도 그렇다. 그런 모습들이 혼재돼 '얘는 누구지?' '얘는 뭐지?' 헷갈리게 하려고 했다. 그런 아이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가도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으니 더욱 혼란은 커진다. 영화 속 기헌도 마찬가지다. 서복에게 늘 화를 내다가도 그의 작은 행동에 겁을 먹기도 한다. 예측할 수 없는 존재에서 고해하게 되는 관계와 흐름을 쓰기 시작한 거다.

영화가 시종 '담백하게' 흐른다. 마지막 장면은 특히 그렇다
- 내부적으로도 고민이 많았다. 마지막 장면에서 기헌이 서복에게 총을 겨눌 때 너무 건조한 게 아니냐는 우려였다. 주변 제작진들이 많이 걱정하니까 자신도 겁이 나더라. '난 이게 맞는 거 같은데….' 그때 힘을 실어준 게 공유 씨다. 공유 씨가 '마지막 장면의 건조한 감정이 좋아서 선택한 거'라고 해줬고 믿음을 가지고 밀고 나갔다. 용기를 준 거다. 마지막 장면은 한편으로는 서복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총을 쏘는 거니까. 슬프기도 하지만 의연한 느낌이 들었으면 했다. 감정을 너무 세게 그렸다면 감정을 교류한 서복에 관한 슬픔이라고 한정되었을 거다.

'서복' 마지막 장면이 그렇듯, 영화감독에는 '선택'의 시간이 오는 것 같다. '이게 맞다'라고 확신하기가 정말 힘든 것 같다
- 그럴 때 저는 제 취향을 믿는다. 관객들이 큰 감정이 밀려오는 걸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건 제 취향이 아니다. 제작비가 비싸면 손익분기점(BEP)이 높아지니까 약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본으로서의 재미는 떨어지는 거 같다. 영화 개봉을 두고 흥행도 무척 중요하다. 산업으로서 기본적인 수익 창출은 무시할 수 없으니까. 일단 손익분기점을 넘자, 최소한의 도리는 하자는 생각이다. 다만 저는 시간이 지나도 회자 되는 영화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사진=CJ ENM 제공]


'서복'을 두고 관객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길 바라나?
- 그런 건 없다. 그저 즐겨주면 좋겠다. 지침(가이드 라인)을 주는 건 이미 영화를 잘 못 만들었다는 거다. 제품 사용 설명서 같지 않나. 다만 그런 생각은 든다. '직접적 표현'이 불편하고 오그라들었다고 하는데 '이 질문을 어떻게 돌려서 해야 하나?' 하는 의문점이다. 영화 속 질문이 직설적이라고 느끼는 건 보통 그렇게 물어보지 않기 때문이다. 불편한 질문이다. 대답하기 힘든 것이니까. '서복'이기 때문에 그렇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고 이 질문을 회피하던 기헌이 응시하는 게 결국 구원이다.

'서복'의 질문을 감독님이 받는다면?
: 그 질문을 불편하다고 느끼는 건 '답을 할 수 없어서'다. '답하지 어려운 질문을 하다니…' 하는 거지. 하지만 그 질문은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인은, 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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