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어항 속에 빠진 중국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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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재호 특파원
입력 2021-04-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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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려동물 붐 관상어 시장도 급팽창

  • 20대 주력군 활약에 14조원대 성장

  • 개·고양이보다 비용 부담 덜해 인기

  • 1인가구 급증에 따른 고독경제 산물

  • 팍팍한 현실 잊는 심리적 보상 출구

지난해 11월 12~15일 열린 광저우수출입상품교역회 행사장 내 반려동물관 전경. 관상어 관련 부스들이 젊은층 관람객으로 북적대고 있다. [사진=바이두 ]


중국 광저우의 한 정보기술(IT) 업체에서 근무하는 양빈(陽彬)씨는 매주 일요일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1시간 거리인 화디완(花地灣) 시장을 찾는다.

화디완은 세계 최대의 관상어 도소매 시장이다. 하루 종일 시장을 누비며 각양각색의 관상어들을 구경하다가 그중 몇 마리를 골라 사오는 게 양씨의 유일한 낙이다.

장쑤성 쉬저우 출신으로 타향살이 3년째인 그는 "부모님도, 고향 친구도, 연인도 없다"며 "집 안에 생명체가 있으면 외로움이 덜할까 싶어 관상어를 키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중국의 젊은층 사이에서 이른바 '수이쭈(水族)'로 불리는 관상어 애호가들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1인 가구가 확대되면서 전체 반려동물 시장이 급성장 중이지만 관상어 관련 시장의 성장세가 유독 가파르다.

개나 고양이를 기르는 것보다 비용 부담이 덜해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주링허우(九零後·1990년대 출생) 세대의 새로운 취미로 자리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996(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일주일에 6일 근무)'에 치이는 양씨는 "귀가하면 얼추 밤 11시"라며 "개를 키울까 했지만 온종일 좁은 방에 방치돼 있을 걸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수이쭈 저우칭(周慶)씨는 "물고기는 어항을 벗어날 수도, 물을 떠날 수도 없다"며 "아등바등 살아가지만 계속 생존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게 꼭 내 모습과 닮았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애묘가 위협하는 수이쭈

시장조사기관 CBN데이터에 따르면 중국 반려동물 소비시장 규모는 2015년 978억 위안에서 지난해 2953억 위안으로 3배가량 성장했다.

2023에는 4723억 위안(약 81조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반려동물 시장의 대표 주자는 뭐니 뭐니 해도 개와 고양이다. 각각 46%와 31%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그 뒤를 잇는 게 관상어 시장이다. 2015년 15.3% 수준이던 점유율이 2019년 27.3%로 2배 가까이 뛰며 애묘 시장을 위협 중이다.

조사기관마다 수치가 다르지만 업계에서는 지난해 기준 관상어 관련 시장 규모를 800억~870억 위안 정도로 추산한다.

최근 3년간 대형 전자상거래 플랫폼~15일 열린 광저우수출입상품교역회 행사장 내 반려동물관 전경. 관상어 관련 부스들이 젊은층 관람객으로 북적대고 있다. [사진=바이두 ]
 
 
중국 광저우의 한 정보기술(IT) 업체에서 근무하는 양빈(陽彬)씨는 매주 일요일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1시간 거리인 화디완(花地灣) 시장을 찾는다.
 
화디완은 세계 최대의 관상어 도소매 시장이다. 하루 종일 시장을 누비며 각양각색의 관상어들을 구경하다가 그중 몇 마리를 골라 사오는 게 양씨의 유일한 낙이다.
 
장쑤성 쉬저우 출신으로 타향살이 3년째인 그는 "부모님도, 고향 친구도, 연인도 없다"며 "집 안에 생명체가 있으면 외로움이 덜할까 싶어 관상어를 키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중국의 젊은층 사이에서 이른바 '수이쭈(水族)'로 불리는 관상어 애호가들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1인 가구가 확대되면서 전체 반려동물 시장이 급성장 중이지만 관상어 관련 시장의 성장세가 유독 가파르다.
 
개나 고양이를 기르는 것보다 비용 부담이 덜해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주링허우(九零後·1990년대 출생) 세대의 새로운 취미로 자리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996(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일주일에 6일 근무)'에 치이는 양씨는 "귀가하면 얼추 밤 11시"라며 "개를 키울까 했지만 온종일 좁은 방에 방치돼 있을 걸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수이쭈 저우칭(周慶)씨는 "물고기는 어항을 벗어날 수도, 물을 떠날 수도 없다"며 "아등바등 살아가지만 계속 생존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게 꼭 내 모습과 닮았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아주경제DB]

◆애묘가 위협하는 수이쭈
 
시장조사기관 CBN데이터에 따르면 중국 반려동물 소비시장 규모는 2015년 978억 위안에서 지난해 2953억 위안으로 3배가량 성장했다.
 
2023에는 4723억 위안(약 81조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반려동물 시장의 대표 주자는 뭐니 뭐니 해도 개와 고양이다. 각각 46%와 31%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그 뒤를 잇는 게 관상어 시장이다. 2015년 15.3% 수준이던 점유율이 2019년 27.3%로 2배 가까이 뛰며 애묘 시장을 위협 중이다.
 
조사기관마다 수치가 다르지만 업계에서는 지난해 기준 관상어 관련 시장 규모를 800억~870억 위안 정도로 추산한다.
 
최근 3년간 대형 전자상거래 플랫폼 징둥에서 관상어 관련 제품을 구매한 사용자 증가율은 32%에서 147%로 수직 상승했다.

CBN데이터는 '2019 반려동물 소비 생태계 빅데이터 보고서'를 통해 관상어 관련 제품 소비 규모가 개 사료와 고양이 사료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수요가 늘다 보니 시장 내 경쟁도 치열할 수밖에 없다. 타오바오에 입점한 업체 간 경쟁 순위를 살펴보면 관상어가 고양이 간식과 개 간식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12만개 입점 업체 중 매월 흑자를 내는 곳은 5200개 정도다. 평균 객단가가 19위안으로 개 사료(84위안)나 고양이 사료(80위안)보다 훨씬 낮다. 업체 간 출혈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20대 새 주력군 부상, 여성보다 남성

중국신문주간은 베이징의 한 관상어 판매상을 인터뷰한 내용을 게재했다.

20년 넘게 관상어를 판매해 온 쑨(孫)씨는 "최근 2~3년 새 젊은층 고객이 급증했다"며 "가격을 묻고는 별다른 흥정 없이 구매한다"고 말했다.

한 노신사에게 금붕어 2마리를 팔며 10위안(약 1700원) 때문에 실랑이를 벌였던 시절과는 천양지차라고도 했다.

손씨는 젊은 고객을 위한 온라인 판매도 시작했다. 그는 "필터 설치와 수초 배치 등 어항 내 조경, 심지어 물고기 종류와 수량까지 적정한 수준으로 넣은 어항을 통째로 사 가는 고객들이 많다"며 "일종의 원스톱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또 "과거에는 재복(財福)을 기원하는 등 특정한 목적을 갖고 관상어를 기르는 사람들이 많아 다양한 요구 조건이 있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어항을 인테리어 소품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중국신문주간은 "더 많은 '주우허우(九五後·1995년 이후 출생)' 세대들이 퇴직 세대가 즐기던 취미 생활에 빠져 들고 있다"며 "일종의 힐링 수단으로 자리잡은 분위기"라고 전했다.

바이두 통계에 따르면 지역별로는 바다와 접한 산둥성과 허베이성, 광둥성, 장쑤성 등에 수이쭈가 대거 분포하고 있다. 대도시 중에는 베이징에서 관상어 기르기가 크게 유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대로는 30~39세가 가장 많았고 20~29세(35%)가 뒤를 이었다. 특히 여성보다 남성(63%) 비중이 높은 게 눈에 띈다. 전체 반려동물 소비 시장에서 여성(60%) 비율이 남성을 압도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에 대해 심리 분석 전문가인 장다성(張大生) 헤이룽장대 교수는 흥미로운 해석을 내놨다.

장 교수는 "인간의 잠재의식에서 물은 어머니의 자궁이나 고향을 상징한다"며 "남성은 무의식적으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심리가 여성보다 강하다"고 분석했다.

이어 "남성은 물고기가 유영하는 걸 바라보면서 일종의 안전감이나 회귀감을 느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심리학자는 "개나 고양이와 달리 관상어를 기른다는 건 어항 내 모든 요소를 완전히 통제한다는 의미"라며 "이 같은 행위가 남성적 특성에 더 어울린다고 볼 수 있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2년 전 수이쭈 대열에 합류한 20대 대학생 왕융강(王永剛)씨는 "어종별 특징을 파악하고 고르는 것부터 수조 관리법, 수용성 비료 사용법 등까지 모바일 동영상을 통해 습득하고 있다"며 "관상어 관련 커뮤니티에는 자기가 보유한 어항을 찍은 동영상이 하루에도 수십 편씩 올라온다"고 귀띔했다.

그는 "용어가 전문적이고 손도 많이 가는 취미 생활이다 보니 커뮤니티 회원도 대부분 남성"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최대 관상어 도소매 시장인 광저우 화디완 시장의 한 판매상 내 수조들. [사진=바이두 ]


◆고독 경제의 또 다른 산물

중국 내 1인 가구와 독신 인구가 급증하면서 수년 전부터 '고독경제(孤獨經濟)'가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1인 가구 비중은 1990년 6%에서 2018년 16.7%로 확대됐다. 성인 남녀 중 독신자 수는 2억4000만명에 달한다.

혼인율은 2015년 9%에서 2019년 6.6%까지 떨어진 반면, 이혼율은 2.8%에서 3.4%로 치솟았다.

고독경제는 '1인 경제'보다 훨씬 씁쓸함이 묻어나는 신조어다. 반려동물 시장이 급성장하는 것도 고독경제의 산물로 볼 여지가 있다.

대졸자 1000만명 시대에 일자리 구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힘겹게 취업을 해도 박봉과 격무에 시달린다.

996 근무제는 중국 청년들의 팍팍한 삶을 확인할 수 있는 세태다.

양씨는 "물고기를 기르는 건 현실에서 바라기 힘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심리적 보상 같은 것"이라며 "스스로 영혼을 위로하는 의식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그는 얼마 전부터 번식에 성공한 관상어를 온라인을 통해 타인에게 팔기 시작했다.

양씨는 "고객 대부분이 한밤중에 사러 온다"며 "그들도 나처럼 달을 보고 퇴근하고 주말에도 쉬지 못하니 밤에 찾아올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청년층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고독과 외로움으로 인해 새로운 경제가 출현했다"며 "고독경제는 개인화와 간편화, 자기 만족, 심리적 위안 등의 특징을 지닌다"고 평가했다.

텐센트의 고독경제 보고서는 나 홀로 청년들의 공통점으로 독신, 임대, 타향살이 등을 꼽으며 "도시에서 성공하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해소하기 위해 고독소비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신문주간은 1995년생 샤오바이(小白)가 하루를 마무리하는 광경을 이렇게 묘사한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시간 샤오바이는 조심스레 거실로 나와 어항 속 어벤저스 피규어를 교체한다. 오늘 밤 꼭 끝내야 했을 임무다.

얼마 전 개울에서 잡아 온 작은 물고기 서너 마리가 벌써 몇 배로 불었다. 그의 휴대폰에는 수백 장의 물고기 사진이 저장돼 있다. 사진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갓 사귀기 시작한 여자친구를 바라볼 때보다 더 해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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