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영 칼럼] 미·중 갈등, ‘타자(他者)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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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 교수
입력 2021-04-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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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외교대교수, HK+국가전략사업단장]

미·중간의 눈치 싸움이 여전하다. 지난 4년간 전개된 미국의 강력한 대중 압박 정책은 코로나19 발원 논쟁으로 갈등이 더욱 증폭되면서 ‘혼합형 갈등’ 양상을 보여 왔다.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부과는 작년 1월, 1단계 합의에도 불구하고 양자 관계를 안정시키지 못했다. 또 미국의 공격에 대한 중국의 피동적 저항이 반복되면서 양자 갈등을 규범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 창출에도 실패했다. 특히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중국의 의도적 회피가 반복되면서 상호 불신의 골만 깊어져 양국 관계의 불문율이었던 ‘싸우기는 하지만 파국으로는 가지 않는다’는 투이불파(鬪而不破)마저 위협받는 지경이다. 여기에 갈등의 원인을 상대방의 책임으로 전가하면서 많은 국가들을 ‘선택적 공황’으로 내모는 타자의 함정(他者陷穽)까지 만들어내면서 미·중 관계의 불확실성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압박 의지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의 첫 번째 정상 통화와 3월 18일 블링컨 국무장관과 양제츠 외교담당 정치국원과의 알래스카 회담에서도 잘 드러난다. 미국은 비핵화나 보건·환경 분야 등 ‘미·중 이익이 교차하는’ 영역에서는 협력을 밝혔지만 중국의 불공정한 경제적 관행과 민주 가치와 관련된 홍콩 탄압 문제, 신장(新彊) 위구르 지역에서의 인권 유린, 대만을 포함한 남중국해 역내에서의 독선적인 행동에 대한 근본적인 우려를 강조했다. 당연히 중국은 대만, 홍콩, 신장 위그루 문제는 중국 내정이라면서 주권과 영토 보전과 관련된 중국의 핵심 이익을 존중하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되받아쳤다. 향후 주도권을 둘러싸고 자신들의 입장 피력으로 바이든-시진핑 시대 미·중 관계의 첫걸음이 시작됐다.

미국은 2017년 말 발간된 ‘국가안보전략보고서’에서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지목하고 전면적인 ‘미중 전략 경쟁’을 선언했다. 이는 중국의 시장경제화와 민주화를 추구했던 대중 연계와 변화정책의 폐기였다. 2020년 5월의 ‘대 중국 전략보고서’는 ‘미·중은 전략적 경쟁관계이며 중국은 경제적·가치적·안보적 측면에서 미국에 도전하는 국가’로 규정하고, 중국의 도전에 맞서 미국인과 국토, 미국식 삶을 보호하고, 미국의 번영을 증진하며, 힘을 통한 평화의 보존 및 미국의 영향력 증대를 목표로 하는 ‘미중 신 냉전 시대’를 공표했다. 이를 계승한 바이든 행정부는 3월 ‘잠정 국가안보전략(interim National Security Strategy)’에서 중국을 ‘경제, 외교, 군사, 기술력을 결합해 안정적이고 열린 국제 체계에 계속 도전하는 잠재력을 보유한 유일 경쟁자’로 지목하며 '중국 견제'를 외교정책의 핵심으로 내세웠다. 특히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다른 민주주의 국가와의 협력 강화와 미국에 대한 신뢰 회복을 통해 글로벌 리더십을 확고히 함으로써 미국이 국제 의제를 설정토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압박 지속에 대해 중국은 ‘미국식 이데올로기’의 강요라며 반발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대중 압박을 세 가지 측면에서 이해한다. 첫째는 미래 패권과 국제 질서 주도권에 대해 ‘원칙적 현실주의’를 기반으로 한 미국의 강경파들이 중국이 이미 직접적으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면서 부상한 중국이 종국적으로는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철저히 파괴할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는 국력과 실익을 둘러싸고 중국의 국력이 이미 미국에 버금가거나 일부는 초월해 미국의 선제적 이익에 도전하거나 미국의 이익 창출을 저해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강공책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쟁 우세와 대중 관계에서의 주도적 지위 상실을 우려한 일부가 중국의 체제와 국가 목표에 대한 적의(敵意)를 증폭시켜 양국 관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인식한다. 또 하나는 제도와 문화 그리고 이데올로기를 둘러싼 논쟁이다. 중국을 서방 민주제도와 문화를 위협하는 최대의 도전자로 간주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철저히 배제하려는 압박을 하고 있다는 인식이다. 그러나 이제 국제무대의 중심국가로 성장한 중국은 당초 미국이 구상한 ‘미국 주도 질서 내의 중국’을 이미 초월한 새로운 경쟁자가 되었다. 미국을 당장 극복할 수는 없지만 미국 경제력의 70%에 달하는 국민총생산액과 코로나 방역의 우월성을 기반으로 한 애국주의 민간 정서도 고양되어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의 아킬레스건인 ‘보편 가치’를 내세워 중국을 압박하자 더 이상 미국은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라면서 미국의 대 중국 공격을 악의적인 중국 폄훼로 인식하고 있다. 미국 퓨 리서치센터의 지난달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대중 호감도가 20%에도 못 미친다고 하니 향후 양 국민들의 갈등도 미·중 관계의 또 다른 저해요소로 등장했다.

또 중국은 바이든 대통령이 추구하는 소위 ‘민주 동맹’에 대응해 우군 확보에 열중이다. 북한에 대한 지원과 북핵 공조는 물론 왕이 외교부장을 내세워 러시아와의 공조, 사우디아라비아와 터키, 이란,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오만 등을 방문해 신장과 홍콩 인권 문제 등을 내세운 미국 등 서구의 대 중국 제재를 비난하며 중동 지지를 얻는 데 주력했다. 4월 3일에는 정의용 외교장관을 대만을 마주보고 있는 푸젠성(福建省) 샤먼(廈門)에서 만나 한·중 외교장관 회담도 열었고, 싱가포르를 포함해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아세안 국가들과도 만나 대미 견제를 가속화할 방침이다.

이제 미·중 관계는 무역 전쟁과 과학·기술전쟁을 넘어 민주 가치와 인권 등 보편가치 논쟁을 기반으로 한 본격적인 체제 갈등으로 진입한 형국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언급대로 중국이 ‘민주 정체가 현재같이 복잡한 상황에서는 비효율적인 체제’라고 생각한다면 ‘민주’와 ‘전제(專制)’를 둘러싼 갈등은 더욱 증폭될 것임이 자명하다. 그렇지 않아도 미·중 사이에서 고민인 우리가 또 다른 ‘타자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한국의 정체성을 보다 분명히 해야 한다.
 
강준영 필자 주요 이력

▷대만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 중국 정치경제학 박사 ▷한중사회과학학회 명예회장 ▷HK+국가전략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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