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진의 ‘異意있습니다’] 새 검찰총장, ‘귀족 검사’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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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진 논설위원
입력 2021-03-2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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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석열은 한 번이면 족하다.

“아이고 전 아닙니다. 사실, 뭐··· 답은 정해져 있다더라고요.”
벌써 10년 가까이 지난 어느 해 이른 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도 새 검찰총장을 선임하는 절차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고 여러 명의 이름이 하마평으로 떠돌고 있었다. 그중 한명에게 인사 겸 덕담을 하려고 전화를 걸었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그는 "비록 후보군에 올라가기는 했지만 답은 정해져 있다"며 아쉬움이 섞인, 그래서 다소 어색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최종 후보군에 들어갔다는 보도를 접했을 쯤이라 ‘나도 기대하고 있다’는 식의 인사치레를 하려 했었는데 괜히 머쓱해지고 말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이런저런 취재의 부산물로 확보한 사실관계의 조각을 맞춰보면, 당시 검찰총장의 자리를 거머쥔 사람은 임명권자의 먼 친인척뻘이었다. 사돈의 팔촌이라고, 촌수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먼 사이었지만 어쨌거나 혼맥과 혈연으로 엮인 관계였던 것은 분명했다.

게다가 그는 특정대학 출신으로 서울중앙지검과 대검, 법무부 등 검찰 주요보직을 거치며 쌓은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이른바 '귀족검사'였다.

언론하고도 가까워서 친한 기자들의 명함만 모아도 족히 한 상자쯤은 됐고, 일찌감치 개인 홈페이지를 열고 자신의 이름이 거론된 기사들을 시기별‧보직별로 차곡차곡 모아 놓았을 정도로 언론플레이에 능한 인물이기도 했다. 애시당초 그의 하마평이 다른 후보들을 압도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원인이 뭐였든 지금 돌이켜보면 ‘답이 정해져 있다’는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요새 유행하는 말마따나 ‘답정너’였던 거다. 경쟁자들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실제 임명권자의 마음을 바꾸는 건 고사하고 언론의 관심을 끌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총장 자리에 앉을 사람이 늘 정해져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답이 나와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경우는 그전에는 물론 그 이후에도 있었다. 대표적인 경우를 들라면 2019년 윤석열 총장 때가 아닐까 싶다.

[사진=연합뉴스]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찰총장 신분으로 징계를 받으면서도 징계취소 소송을 내며 버티다가 얼마 전 갑자기 정치를 하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간 윤석열 전 총장은 서울중앙지검장 시절부터 '떠오르는 해'였다. 감히 대적할 자가 없었다. 

무엇보다 언론이 앞장서서 윤석열 띄우기에 나섰으니 대세로 자리잡는 것은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사시 9수’라는 약점이 장점으로 포장되고, 나이차가 엄청나게 나는 결혼마저도 '뒤늦은 순애보'로  꾸며질 정도였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봉욱 당시 대검차장이나 이금로 전 법무차관 등의 이름이 거론됐지만 사실 격식 갖추기에 불과했다. '차기는 윤석열'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한 사람만 거론하기는 어색하니 이런저런 인물의 이름을 거론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설명일지 모르겠다.  

물론 ‘윤석열은 안 된다’는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검찰을 아는 인물이나 윤석열의 사람됨을 눈여겨본 사람들은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윤석열은 안 된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들은 윤 전 총장을 향해 "전형적인 검찰주의자로 국민적인 검찰개혁 요구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인물로서, 적폐청산 수사에 적극적이었던 것도 사실 국민적 요구나 촛불혁명의 정신에 동의했기 때문이 아니라 검찰조직을 위해서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노른자위 보직만 거친 특수통으로, 정치검사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날카로운 비판도 나왔다. 한 차례 좌천을 겪은 것은 그의 영웅담을 완성시키는 '미장센'의 일부일 뿐 정의로움을 입증할 그 어떤 증거도 되지 못한다고 일갈했다. 

심지어 그가 박근혜‧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고, 전직 대법원장까지 구속하는 등 적폐수사에 앞장선 것도 실은 "정권 초기에는 전 정권 수사로 개혁요구 지연, 정권 후반에는 현 정권 수사로 개혁동력 약화"라는 전통적인 검찰의 ‘개혁 회피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라는 직설적인 비판도 있었다.

"윤석열은 윗사람을 들이받는 것으로 출세한 인물"이라는, 당시만 해도 매우 자극적 비판도 있었다. 

‘성골 특수통’인 채동욱‧최재경 라인이 한상대 전 검찰총장을 몰아낸 2012년의 ‘검란사건’의 주동자 중 한 사람인 데다, 그를 일약 ‘정의로운 검사의 아이콘’으로 각인시킨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2013년)는 말도 실은 선임자(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를 국정감사장에서 공개 비난하는 와중에서 나온 게 아니더냐는 거다.

‘적폐수사 마무리’를 두고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과 충돌한 것은 ‘들이받은’ 수준에도 끼지 못할 정도인데, 이처럼 ‘들이받는 것으로 출세’를 한 사람이 검찰총장이 되면 '앞으로 들이받힐 사람’이 과연 누구겠느냐는 우려였다.

막판에 불거진 이 같은 지적에 청와대도 적잖이 고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조국 당시 민정수석 역시 윤석열 불가론 쪽에 가담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대세를 뒤집기는 역부족이었다. 잠시의 주춤거림이 있었을 뿐, 결론은 결국 윤석열이었다. 

‘윤석열빠’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맹목적이고 일방적인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번 쏠린 사람들의 마음은 그 어떤 비판에도 여지를 내주지 않았다. 오히려 윤석열에 대한 비판이 강하고 날이 설수록 그를 변호하는 움직임이 늘어난다고 할 정도였다. 

검찰총장 자리에 앉을 인물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해서 굳이 나쁘게 볼 일은 아니다. 임명권자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여론이 쏠리는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결과적으로 잘못된 인사였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정해진 추천 절차와 검증을 거쳐야 하지만 결국에는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윤석열은 윤석열 한명으로 족하다. 한번 속았으면 됐다. 꼼꼼하고 촘촘한 평가보다 대중의 평가나 이미지에 의존한 인사는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된다.

누구보다 비정치적일 줄 알았는데 역대 그 어떤 자보다 정파적이었던 검찰총장을 또 보고 싶지는 않다.

물론 사람의 속마음이야 일일이 다 까볼 수는 없다. 사람이라는 게 원래 속마음도 숨길 줄 알고 때론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살아온 환경이나 과거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노른자위만 골라서 다닌 귀족 특수통 검사는 다른 길을 가지 못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들이 적어도 기득권 체제를 해소하는 길을 가지는 않을 거다. 누가 제 발 밑을 헐겠느냐는 말이다.

최소한 학벌과 ‘라인’을 앞세우고 현란한 ‘언론플레이 기술’을 자랑하는 그런 자가 새 검찰총장이 되는 꼴은 이제 안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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