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가망신·발본색원' 발언 쏟아낸 정부, 뒤에선 "처벌 불가능"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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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환 기자
입력 2021-03-16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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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재 수단 질문에 변 장관 "현재 직접적·명시적으로…"

  • 업무 관련성 입증해도 '미실현 이익' 처벌할 규정 없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투기 의혹에 현행법상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정부가 알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정부·여당 주요 인사 입에서 나온 “패가망신시키겠다”거나 “발본색원하겠다”, “강제 처분하겠다”, “엄정 처벌하겠다”는 등의 발언은 알맹이 없는 구호에 불과했던 셈이다.

16일 공개된 국토교통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9일 "여러 위원님께서 걱정하신 것처럼 현재 직접적으로, 명시적으로…."라며 제재 수단에 말을 흐렸다.

이는 장경태 민주당 의원이 "업무보고에 직무배제와 인사조치 정도만 명시돼 있는데 추징과 몰수 등의 강력한 조치가 있어야 될 것 같다. 대책이 무엇인가?"라는 질의에 대한 답변이다.
 

16일 오전 참여연대와 경실련 관계자들이 서울시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변창흠 장관이 말을 흐리자 장경태 의원은 "제재할 수단이 없으시다는 거지요?"라고 물었고 변 장관은 "정보를 유출한 것에 대해서는 입증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만, 비밀에 대한 범위 자체를 넓게 해석한다면"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업무 관련자가 부당한 이익을 취득했을 때 처벌토록 한 '부패방지법' 제87조에는 "취득한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이라는 취득 여부에 관한 단서가 달린다.

땅을 사두기만 했을 뿐 아직 보상받지 않은 이번 사안에 적용할 수 없다. 이에 관한 지적이 나오자 변 장관은 투기 의혹 당사자들이 어떤 이득도 실현하지 않은 상태라는 점을 인정했다.

종합하면, 어떻게든 투기 의혹 당사자들의 업무 관련성을 입증하고 비밀의 범위를 넓게 해석하더라도 미실현 이익에 관한 처벌 규정 자체가 없다는 얘기다.

변 장관은 국토위 회의 서면보고에서 "업무 관련성 없는 직원들이 내부 정보를 이용할 경우 처벌이 곤란하고 통제장치가 부실해서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고 했다.

더 문제는 첫 단추인 업무 관련성부터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LH 사태가 시작된 다음 날(지난 3일) 국토부는 투기 의혹을 받는 직원들이 경기도 광명·시흥 토지를 지난 2018년 4월부터 2020년 6월까지 매수했다고 밝혔다.

본지 취재 결과 LH와 국토부가 광명·시흥 신도시 논의를 시작한 시점은 빨라야 올해 초다. 시점상 내부 정보를 이용해 투기했다는 점을 입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에서는 선언적 발언이 쏟아지는 중이다. 지난 14일 정세균 국무총리는 "투기 의심자들에 대해 신속하게 강제처분 조치를 추진하겠다"며 법에도 없는 공언을 했다.

정세균 총리는 지난 8일에도 "비리 행위자를 패가망신시켜야 할 것"이라며 "한 줌의 의혹도 남지 않도록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공개된 국토부·LH 관계자 1만4000명 대상 1차 전수조사 결과, 추가된 투기 의혹 대상자가 7명에 불과해 "투기와의 전쟁"이라는 구호가 무색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중이다.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16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처벌 조항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썩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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