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 칼럼] 내로남불의 귀환자들 - 추미애, 조국, 황교안의 참전(參戰)을 보며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유창선 시사평론가
입력 2021-03-16 20: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유창선 시사평론가]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은 여야 후보들의 캠프만이 아니다. 그동안 정치의 한복판에서 떠나 있어야 했던 인물들이 정치의 계절을 놓치지 않고 경쟁적으로 참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법무부 장관 시절 1년 내내 윤석열 검찰총장과 싸우다가 결국 민심 악화를 초래하여 장관직에서 물러나야 했던 추미애 전 장관의 행보는 단연 뉴스급이다. LH투기 의혹이 문재인 정부에 메가톤급 타격을 주고 있는 와중에 그는 “부동산 시장의 부패 사정이 제대로 되지 못한 데는 검찰의 책임이 가장 크다”면서 생뚱맞은 검찰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이제 와서 검찰이 대형 부동산비리 수사를 하면 제대로 할 수 있고 정의롭다는 전 검찰총장 윤석열의 입장은 무엇이냐"며 윤석열 때리기의 재점화에 나선 것이다. 이에 앞서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 사건과 관련해서 대검찰청의 무혐의 결론이 나오자 "노골적으로 제 식구 감싸기를 했다"면서 "윤석열의 검은 그림자의 위력"이라는 글을 SNS에 올렸다.

이제는 법무부 장관이 아니라 여권의 대선 후보를 꿈꾸는 위치로 변했지만, 윤석열 때리기에 몰두하는 추 전 장관의 모습에는 변함이 없다. 아마도 그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다면 검찰개혁의 완수가 최고의 구호가 되지 않을까 짐작될 지경이다. 다만 부동산 문제까지도 검찰의 책임이라는 ‘기-승-전-검찰’ 주장이 얼마나 여론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LH발 부동산 파문으로 정권에 대한 민심이 흉흉해지는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책임이라고는 인정할 줄 모르는 또 한 번의 궤변으로 받아들여질 위험이 커 보인다. 실제로 추 전 장관이 윤석열 때리기를 재개하자, 윤석열의 지지율은 어김없이 껑충 뛰었다. 추미애발 머피의 법칙이다.

그런 추 전 장관을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처지에서 응원해 왔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각종 현안들에 대한 발언에 나선 지 오래다. 모든 개인에게는 표현의 자유라는 것이 있으니 그 자체를 뭐라 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보궐선거에 나선 야당 후보의 ‘입시비리’ 의혹을 공유했다가 삭제한 일은 그냥 지나치기에는 거북하기만 하다. 그는 얼마전 자신의 SNS에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의 자녀 입시비리 의혹 '충격’"이라는 제목의 언론 기사를 공유했다.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도 아닌 조 전 장관이 다른 누구의 ‘입시비리’를 거론하는 광경이야말로 진짜 ‘충격’이었다. 배우자인 정경심 교수가 1심에서 징역 4년의 유죄 판결을 받고 감옥살이를 하게 되고 조 전 장관의 공모 부분도 인정된 것이 딸의 ‘입시비리’ 혐의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조 전 장관이 공유한 기사와는 달리 박 후보의 딸은 해당 대학에 응시조차 한 일이 없음이 알려져 신빙성 자체가 없어졌다. 그러자 조 전 장관은 문제의 공유 기사를 삭제했지만, 어떻게 ‘입시비리’ 의혹을 남의 일처럼 제기하는지, 그런 광경이 태연하게 가능한 정신세계에 대한 궁금증은 그대로 남는다. 조 전 장관이 여러 정치 현안들에 대해 다시 목소리를 높이기 이전에 했어야 할 일은, 1심에서 유죄 판결이 내려진 11개의 혐의에 대한 사과, 그리고 그것을 방어하기 위해 부부가 함께 쏟아냈던 수많은 거짓말들에 대한 사과가 아니었을까.

자신들이 범했던 잘못들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등장하여 남의 잘못을 당당하게 훈계하는 광경은 여권 지대에서만 그치지는 않는다. 최근 정치 복귀를 선언한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의 전신) 대표의 모습 또한 마찬가지이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지났다”던 그는 “국민과 함께 늑대를 내쫓을 수 있기를 바라고 바란다”는 포부를 밝히며 재기의 행보에 나섰다. 지난해 총선에서 ‘보수정당 몰락의 책임자’라는 오명을 쓰고 물러났던 그였지만, 1년도 되지 않아 복귀하여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야권의 사저 공세에 대해 문 대통령이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라 비판한 것을 가리켜 "대국민사과를 해야 할 분이 오히려 성을 내서는 안 된다"며 "아무리 '내로남불'을 국시로 한다지만 정말 '염치없는 일'"이라고 쓴 소리를 날리기도 했다. 황 전 대표 자신이 내로남불 얘기를 꺼냈기에 하는 말이지만, 내로남불로 치면 그 자신도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농단 사태로 탄핵 당하고 물러났는데, 그 정부의 2인자였던 황 전 대표는 제대로 된 사과 한번 없이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규탄하는 야당의 투사가 되었다. 같은 얘기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법이다. 누구든 비판의 자유는 있겠지만, 듣는 사람들은 비판할 자격을 따져가며 그 얘기를 듣는다. 그래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이 와중에 황 전 대표가 정치에 복귀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묻게 된다.

이들 세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보궐선거도 다가오고 대통령선거도 머지않은 마당에, 이들의 참전이 자기 진영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추미애가 윤석열을 때릴 때마다 윤석열의 지지율은 상승하곤 했다. 조국이 논란거리를 낳을 때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하락하곤 했다. 황교안이 전면에 나설 때마다 제1야당의 지지율은 하락하곤 했다. 그래서 이들은 자기 진영 내부의 ‘X맨’들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런데도 이들은 기어코 귀환을 고집한다.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내로남불의 정치는 성찰하지 않는 삶의 태도에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결국 자기애에 갇힌 오만과 독선의 정치로 귀결된다. 성숙한 인간일수록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미덕을 실행하고, 미성숙한 인간일수록 자기가 세상에서 최고라는 허영에 갇혀 산다. 성찰의 시간을 건너뛴 내로남불의 정치가 이런 식으로 돌아오는 것은 결코 반갑지 않은 일이다. 렘브란트의 작품 <돌아온 탕자>의 아버지가 돌아온 아들을 두 손으로 꼬옥 품어주었던 것은 그 아들이 무릎 꿇고 참회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로남불의 정치에는 성찰도 참회도 찾아볼 수가 없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