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진의 이의 있습니다] 윤석열이 찾아낸 공무원 징계의 개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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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진 논설위원
입력 2021-03-07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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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의 공백 찾아내 이미 나온 징계도 안받아

  • 위대한 법기술자, 더 위대한 법꾸라지

“저 아직 공무원이래요.”
이제 공무원 신분을 벗어났으니 김영란법 규정의 제한을 받지 않는 ‘비싼 저녁’을 사겠다고 전하는 필자의 제안에 후배는 머쓱한 말투로 대답을 했다.

그는 두어달 전 모 정부 부처에서 퇴직했다. 하지만 그는 사표를 내고서도 한동안 공식적으로 공무원 신분을 벗지 못했다. 모두가 그의 퇴직을 알고 있었고 출근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는 열흘이 넘게 공무원 신분을 벗지 못했다. 사직서가 수리된 것은 명백했지만 그와 별도로 '퇴직절차'라는 것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의 공무원 신분은 그때까지만 해도 ‘현재진행형’이었던 것.

그가 사표를 내고도 열흘이 넘도록 공무원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국가공무원법 규정 때문이다.

현행 국가공무원법은 퇴직을 희망하는 공무원이 있을 경우, 내부 감찰부서와 감사원, 검찰, 경찰 등에 사실을 조회해 정직이나 해임, 파면 등 중징계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비위혐의가 존재하는지 반드시 살피도록 돼 있다(제78조의4).

아무 문제없이 멀쩡하게 공직생활을 한 모범공무원도 예외는 아니어서 제 아무리 모범적으로 공직생활을 했더라도 만의 하나 징계사유가 있을 수도 있으니 예외없이 살펴보게 돼 있다. 법령에서는 열흘의 기간을 주고 내부 감사부서나 감사원, 경찰·검찰 등 수사기관에 비위혐의 여부를 조회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만약 이 과정에서 중징계 가능성이 있는 혐의가 발견되면 징계절차를 거쳐 징계를 받거나 징계 대상이 아니라는 결정을 받은 뒤에야 공무원의 신분을 벗을 수 있다. 이처럼 복잡한 퇴직절차를 규정한 것은 중대한 비위를 저지른 공무원이 징계를 받기 전에 사표를 내고 명예롭게 공직을 떠나는 황당한 관행을 막기 위해서다.

공무원이 파면이나 해임 등 중징계를 받게 되면 퇴직금이나 연금에서 상당한 불이익을 받게 된다. 그래서, 과거에는 비위를 저지른 공무원이 자신들의 연금과 퇴직금을 지키기 위해 징계를 받기 전에 사표를 내고 도망가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뇌물을 받은 부패 공무원도 징계나 사법당국의 수사 전에 사표를 내고 도망을 가면 나중에 처벌을 받더라도 연금이나 퇴직금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퇴직을 희망하는 공무원의 징계사유 확인 및 퇴직제한’ 조항(제78조의4)이 생겨났다. 이 조항에 따르면 사의를 표명한 공무원이 형사사건으로 기소됐거나 징계위원회에 중징계 의결이 요구 중인 때, 비위와 관련된 수사가 진행 중인 때, 감사부서에 의해 내부감사가 진행 중인 때에는 퇴직을 허용해서는 안된다.

임면권자가 이런 사항을 모르고 있을 수 있으니, 일정한 기간 동안 퇴직을 미루고 내·외부 감사부서나 감찰기관, 사법당국에 비위혐의 존재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는 것이다. 필자의 후배도 이 경우에 해당했다. 무슨 큰 잘못이나 비위혐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혹시 모르니 살펴보고 확인하는’ 기간을 거쳐야 하는데 그 상태였던 거다.

이는 하급직 공무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실국장급 고위공무원도 마찬가진데, 현직 국회의원인 더불어민주당 황운하 의원의 경우, 검찰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국회의원 임기가 시작될 때까지도 경찰신분을 벗지 못했다.

공직선거법이 ‘사의를 표명한 시점’을 기준으로 선거운동 가능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에 선거운동과 당선 등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임기가 시작된 이후까지 처벌여부나 징계대상 여부마저 결론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경찰청은 사표를 수리하지 못했다.

물론 이 상황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보복성 수사’ 때문이다. 잘 알려진 것과 같이 황운하 의원은 오랫동안 경찰의 ‘검찰 저격수’였다. ‘울산 고래고기 환부사건’으로 검찰의 아픈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든 것은 유명하다. 결국, 그는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이라는 황당한 검찰식 억지수사에 말려들면서 기소를 당하는 억울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황 의원이 기소당하자 경찰은 물론 법조계에서도 ‘윤석열이 황운하 발목을 일부러 잡았다’는 비아냥이 돌았다. 기소를 당하면 경찰 신분을 벗을 수 없게 되고, 그러면 국회의원도 못되게 막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황 의원은 국회의원 임기 시작 직후까지 경찰관 신분을 동시에 유지하는 헌정 사상 최초의 인물이 됐다.

황 의원의 신분문제는 경찰청이 ‘형사처벌이나 중징계 이상의 처분이 내려질 경우, 인사상 기록을 남기는 것은 물론 연금환수나 감액 등 불이익처분을 한다’는 점을 명백히 한 뒤에야 일단 마무리됐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꼬장’에 황운하 의원이 제대로 곤욕을 치른 모양새였다. 검찰에 밉보이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교훈'을 준 사례가 될 법도 하다. 그게 모두 지난해 3월부터 5월 어간에 있었던 일들이다.

[사진=연합뉴스]



그랬던 윤석열 총장이 지난 4일 사직서를 법무부에 냈다. 마지막에 언론인터뷰와 지방검찰청 방문까지 하면서 현직신분을 십분활용해 국민세금으로 선거운동을 했고, 그 다음날 ‘헌법질서’니 ‘법치주의’니 하는 거창한 수식어를 써가며 퇴직 기자회견도 했다.

상식적으로 다음 날 퇴직할 검찰총장이 전날 지방검찰청 순시를 나선 것 자체를 이해 못하겠다. 자신의 선거운동에 국민세금을 쓰겠다는 발상이 아니면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지 황당할 따름이다.

이처럼 상식 밖의 행동을 한 만큼 그가 혹여 다른 문제를 일으킨 것이 없는지 살펴볼 필요성이 다분하다.

굳이 다른 문제를 살펴보지 않더라도 그는 이미 지난해 12월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찰총장 신분으로 징계위원회에 넘겨져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받은 바 있다. 현직 검찰총장 징계처분을 받은 유일무이한 기록의 소유자가 됐지만, 법원의 가처분 수용으로 일단 집행이 미뤄진 상태다.

사실 윤 前총장이 퇴임하려면 먼저 이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소송을 취하하고 징계를 받아야 한다. 굳이 취하하지 않더라도 상황상 ‘소의 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결정이 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에도 징계는 확정이 된다. 이러나 저러나 징계를 받아야 하는 셈이다.

물론, 소송에서 이겨 징계취소 판결을 받아낼 수도 있지만 이 경우, 다시 징계절차에 들어가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그러니까 윤 前총장 입장에서도 취하가 가장 속 편하다.

하지만 윤석열은 징계를 받지 않고 퇴직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공무원징계법 상의 ‘하자’를 찾아내 십분활용했다. 현행 국가공무원법에 따르면(제78조의4) ‘징계의 의결’을 받기 전에는 퇴직을 할 수 없지만 일단 징계의결을 받고 난 뒤에는 어떤 제한도 없다. 정해진 징계양정의 집행이 되기 전이라도 마찬가지다. '징계의결'이 끝났으니, 집행이 안됐다고 해도 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거다.

그러니까 윤 前총장처럼, 징계의결이 된 뒤 법원으로부터 집행정지 가처분을 받아낸 상태라면 아무 제한없이 퇴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죄를 지었고, 죗값이 정해졌는데, 죗값을 치르지 않고도 도망갈 길이 있다는 이야기다.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싶지만, 역대 법원의 판례가 그렇다. 잘못을 저지른 공무원이 죗값을 치르지 않고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하라는 것이 법의 취지인데 법기술자들은 빠져나갈 수 있도록 판례가 구멍을 만들어 준 셈이다.

이런 공백을 만들어 준 법원도 대단하고, 이런 공백이 있다는 것을 찾아낸 윤 前총장도 참 대단하다. 가히 대단한 ‘법 기술자’에, 최고의 ‘법꾸라지’답다.

이런 구멍이 있는지도 모르고 필자는 유튜브 등에서 ‘정직 2개월을 다 받아야 퇴직할 수 있다’고 떠들었는데, 독자들에게 정중히 사과해야 할 것 같다. 윤 前총장과 법원의 위대한 고위 법기술자들에게 한방 먹었고 한 수 배웠다. 일반인은 법을 어길 수 없지만 고위층은 법을 어기더라도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을 만든다는 오랜 교훈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됐다.

퇴직 기자회견장에서 윤석열 前검찰총장이 '무너지고 있다'고 탄식한 법치주의는 적어도 평범한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법치주의'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벌써 며칠 째 반복되는 그의 퇴임 기자회견 영상이 불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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