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폐업 위기 호텔업계, '지옥고' 청년에 천국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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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수정·윤주혜 기자
입력 2021-03-08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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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못 버틴 3‧4성 호텔, 줄줄이 휴‧폐업

  • 코로나로 지옥고에 갇힌 청년들 "미래 더 깜깜"

  • "호텔거지? 호텔방 누군가에겐 지옥 아닌 천국"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대학생·청년의 주거안정을 위해 청년 맞춤형 공유주택 '안암생활'을 지난해 공급했다. 안암생활은 코로나19 여파로 장기간 공실 상태에 있었던 도심 내 관광호텔을 리모델링해 청년에 공급한 대표적인 사례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여파로 호텔 업계가 맥을 못 추고 있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과 비즈니즈객이 주고객이었던 3성급 호텔들은 벼랑 끝에 내몰렸다. 인근 모텔 가격에 방을 내놓는 등 ‘눈물 젖은 방팔이’를 하고 있지만 개점휴업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관광호텔들을 열악한 주거 환경으로 신음하는 청년들을 위한 임대주택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고 조언한다. 코로나19로 이른바 지옥고(지하·옥탑방·고시원)에 갇힌 청년과 영업난을 겪는 호텔 업계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이라는 설명이다.
 
호캉스족에 맞춰 재편··· 럭셔리 호텔 급부상

코로나19 장기화는 호텔이 목적지가 되는 이른바 ‘호캉스’ 호응도를 더 높였다. 과거 외국인 관광객 위주로 돌아가던 호텔업계는 내국인 호캉스에 맞춰 재편했고, 호캉스족 선호도가 높은 5성급 이상 호텔과 럭셔리 리조트 호텔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제주·부산지역 럭셔리 호텔은 2월까지 예약률이 90%를 웃돌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코로나19 여파에 해외여행길이 막히면서 신혼여행객을 비롯해 겨울방학철 가족 단위 투숙객까지 호캉스를 즐긴 덕이다.

젊은 층인 MZ세대의 럭셔리호텔 이용률도 눈에 띄게 늘었다. 가치 소비에 집중하는 MZ세대 고객이 하늘길이 막힌 탓에 해외여행을 즐길 수 없게 되면서 하루 숙박비만 수십만원에 달하는 여가생활에 지출하는 것이다. 업계는 이를 ‘보복소비’의 연장선상으로 보고 있다.

럭셔리 호텔 격전지로 급부상한 서울 강남지역 5성급 호텔을 보면, 잠실 시그니엘 서울의 주말 투숙률은 90%를 웃돌고, 인터컨티넨탈 호텔의 클럽 객실 점유율도 80% 이상이다. 특히 호텔 안에서 조식, 애프터눈티, 칵테일아워까지 모두 이용할 수 있는 클럽라운지의 매력을 알게 된 젊은 고객 이용도 증가하는 상황이다.

코로나19 장기화에 인기를 끄는 호텔은 또 있다.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은 객실 내에 작은 풀을 보유하고 있어 영유아 가족은 물론, 젊은 커플고객의 호응을 얻으며 주말 90% 이상 객실 가동률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최근 진행한 네이버 쇼핑 라이브에서는 객실이 10분 만에 완판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호텔 측은 높은 금액대의 객실임에도 추가 객실 판매까지 이뤄졌다는 데 의미를 뒀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장기화에 호텔시장 자체가 어렵지만, 럭셔리 호텔들은 억눌린 국내 호캉스 수요를 흡수하면서 그나마 상황을 극복하기 시작했다”고 귀띔했다.
 
코로나 못 버틴 3‧4성 호텔, 줄줄이 휴‧폐업

반면 과거 방한 외국인과 비즈니스고객을 대상으로 운영해 오던 비즈니스호텔과 관광호텔은 코로나19에 객실 가동률이 5% 미만까지 떨어지며 고사 직전에 내몰렸다. 외국인 의존도가 높은 3‧4성급 호텔들은 가족이나 연인 단위의 호캉스족이 채워주는 5성급 호텔과는 달리 외국인의 빈자리를 내국인이 채우지 못하며 상황이 악화된 것이다.

한국호텔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호텔 평균 객실이용률은 1월을 제외하고 전년 동기 대비 70% 이상 급감한 것으로 추정했다. 매출도 추락했다. 특히 3성급 호텔의 지난해 매출은 2019년도보다 70% 가까이 빠졌고, 4성급 호텔 매출도 50% 수준으로 떨어졌다.

고사 직전에 내몰린 호텔의 휴‧폐업 역시 급증하기 시작했다. 특히 서울 명동에 밀집한 3~4성급 호텔들은 두 곳 중 한 곳은 ‘임시휴업’에 들어간 지 오래다. 주 이용층인 중국 및 일본인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긴 탓이었다. 휴업 공고를 내걸었지만 사실상 영업을 종료한 곳도 부지기수다.

실제로 전체 관광숙박업체 1983개 중 64개(3.2%)는 휴업, 51개(2.6%)는 폐업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보다 60% 이상 증가한 수치다. 올해도 1월에만 20여곳이 휴업 신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이 줄지어 휴‧폐업하면서 호텔 종사자도 급감했다. 과거 중국인 단체 관광객으로 북새통을 이뤘던 명동의 한 호텔은 지난해 말 전 직원을 정리해고했고, 100여명의 직원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그나마 영업 중인 호텔도 상황은 좋지 않다. '눈물 젖은 방팔이' 중이다. 과거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오던 시절, 1박에 20만원을 훌쩍 웃돌던 호텔은 숙박 요금을 인근 모텔과 비슷한 수준인 1박에 4만~5만원대로 판매하고 있다. 급기야는 1주일 33만원 상품까지 내놓는 비즈니스 호텔까지 생겨났다.

호텔의 한 관계자는 “객실 외에 부대시설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3·4성급 호텔은 외국인과 비즈니스객이 끊기고, 내국인 유치에도 어려움을 겪으며 운영상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객실요금을 현저히 낮춰 판매하고 있지만, 결국 고정비 감당만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코로나로 지옥고에 갇힌 청년들 "미래 더 깜깜"

코로나19가 강타한 것은 호텔 업계뿐만이 아니다. 지옥고(지하, 옥탑방, 고시원)에 사는 청년들은 코로나19가 절정에 달했던 지난해 2평이 채 안 되는 고시원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공공도서관 긴급 휴원, 독서실과 스터디 카페 등에 대한 집합 금지로 지옥고에서 옴짝달싹 못했던 것이다.

실제 공무원 준비생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도서관 열람실 언제쯤 운영할까요?" "고시원은 와이파이가 안 돼서 인강도 볼 수 없는데 어디 갈 곳도 없네요", “안 그래도 미래가 깜깜했는데 고시원에 갇히니 더 깜깜하다” 등의 글이 다수 올라왔다.

최근 몇 년간 집값 상승이 이어지며 '영끌', '패닉바잉' 등의 담론이 우리 사회를 지배했다. 하지만 '영끌'해서 '패닉바잉'하는 청년보다 어두컴컴한 지옥고에 갇힌 청년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실제 서울 1인 가구 청년 10명 중 3명은 지옥고에서 살고 있으며 과도한 임대료 부담에 짓눌려 허덕이고 있다. 서울시가 ‘서울 청년월세지원’ 신청자 2만24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4㎡(4.2평)도 안 되는 협소 공간에 사는 비율은 13.6%에 달했다. 14.6%는 지하‧옥탑에서 거주했다.

전문가들은 청년 등 주거환경이 열악한 이들을 위한 임대주택을 마련하는 데 호텔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해외에서는 이러한 방식의 임대주택 공급이 활성화돼 있다. 대표적인 청년 주거 지원 정책은 미국의 SRO(Single Room Occupancy)다. SRO는 노후한 호텔 등을 리모델링하거나 신축해서 학생 등 주거 취약 1인 가구를 지원하는 게 골자다.

이렇듯 호텔 등을 고쳐 주거 취약계층에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방식은 코로나19로 영업난을 겪고 있는 관광호텔과 열악한 주거한경에 신음하는 청년 모두를 살릴 수 있는 해결책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호텔거지? 호텔방, 누군가에겐 지옥 아닌 천국

실제 지난해 관광호텔을 매입해 리모델링한 뒤 임대주택으로 공급한 사례가 서울에서 나왔다. 서울 성북구 안암동4가 48에 공급한 매입임대주택 '안암생활'이 그 주인공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장기간 공실 상태였던 관광호텔 ‘리첸카운티’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기숙사로 용도를 변경한 뒤 리모델링했다.

대학생과 청년의 주거 안정을 위해 역세권·대학가 인근에 청년 맞춤형으로 공급하는 맞춤형 공유주택인 안암생활은 LH가 주택 운영기관인 사회적기업 아이부키㈜와 협력해 설계·시공부터 운영 프로그램까지 청년 수요에 특화된 공간으로 꾸몄다.

122실 규모로, 복층형 56실, 일반형 66실(장애인 2실 포함)의 원룸형 주거 공간과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로 구성된다.

안암생활은 상업지역에 있는 관광호텔을 리모델링한 주거시설인 만큼, 입지가 매우 좋은 편이다. 서울 지하철 1·2호선 신설동역에서 걸어서 7분, 6호선 안암역에서 도보로 12분이면 도달할 수 있다.

더구나 임대료는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7만~35만원으로 주변 시세의 절반 수준이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입주 당시 경쟁률이 2.3대1에 달했다. 입주자는 최장 6년까지 거주할 수 있고, 입주 자격은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 70% 이하의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이다.

공무원 준비생 김모씨(27)는 “호텔거지를 양산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지옥고 생활을 겪어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며 “누군가에게는 자그마한 호텔방이 지옥이겠지만, 1.5평짜리 고시원에서 살고 있는 누군가에겐 천국일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사례는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는 법적 제약 때문에 아이부키를 통해 관광호텔을 매입한 뒤 리모델링했으나 관련법 개정으로 LH도 직접 관광호텔 등 상업용 건물을 매입해 임대주택으로 공급할 수 있다.

안암생활 같은 민간주택 매입약정사업은 빠른 속도로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 아파트 단지 등을 공급하는 건설임대사업은 공급 시기가 오래 걸린다. 그러나 도심 내 직장과 학교 등이 가까운, 좋은 입지의 기존 주택이나 호텔 등을 매입해 임대하는 방식은 공사 기간이 짧아 빠르게 공급할 수 있다. 또 임대료도 주변 시세보다 싸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공급을 빠르게 할 수 있는 것은 장점이나, 호텔은 주거용 시설이 아니어서 개조비용이 많이 드는 점 등이 단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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