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카이스트 다운' 카이스트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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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수석논설위원
입력 2021-02-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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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곽재원의 Now&Future] 한국 과학기술 인재 양성과 연구개발의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16일 개교 50주년을 맞는다.

카이스트는 이날 ‘한국을 빛낸 50년, 인류를 빛낼 100년’을 슬로건으로 과거를 반추한다. 아울러 글로벌 가치 창출과 선도대학으로서의 미래비전, 도전·창의·배려 정신을 바탕으로 한 혁신 선도 전략을 제시한다.

제4차 산업혁명의 심화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만연으로 개인의 삶은 물론, 인류의 미래마저 불투명해진 지금 과학기술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에서 카이스트의 행보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카이스트가 50주년을 계기로 한국 과학기술의 총본산으로 우뚝 서서 작금의 여러 난제를 풀어주고, 미래의 난제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이 더욱 간절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부터 16년 전인 2005년 3월, 필자는 모 일간지에 ‘카이스트가 사는 길’이란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그 내용은 대충 이렇다.
[카이스트는 1970년대 초 개발경제 시대에 이공계 인력 양성과 산학 연계를 위해 정부가 만든 특수목적 대학이다. 병역 면제와 장학금 지급, 산학지원금 등 대단한 혜택이 주어졌다. 그런 만큼 우수한 학생들이 모여들었고, 산업현장에서 대학교수와 직업관료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에 좋은 인재들을 대거 배출했다. 오늘날 벤처기업의 원조들이 여기서 탄생했다. 이제는 과거지사가 돼 버렸다. 장기간 전략 부재를 드러내며 여느 대학들처럼 ‘보통화’의 길을 걷다 자신의 특성을 잃고 만 것이다.

카이스트는 지금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고들 말한다. 비록 덜거덕대는 소리는 들리지만 외국인 노벨상 수상자를 총장으로 영입하면서까지 변신하려 하는 모습도 애절하다. 그러나 온갖 보호막이 벗겨진 채 유수 대학들과 진검승부를 해야 하는 일이 간단할 리 없다. 다행히 카이스트가 몸을 추스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다. 대학의 생산성 문제와 사회책임론이 여론에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나라 전체 석·박사 고급인력의 70%가 대학에 있고, 국가 연구개발비의 20%를 차지하는 기초연구비의 대부분을 대학이 쓰고 있는 마당에 당연히 제기될 수 있는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학은 산업’이라고 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대학이 상아탑에 갇힌 채 더 이상 사회적 요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러플린 총장도 얼마 전 “공대의 존립 근거는 기술적 트레이닝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에게 기업가 정신, 개척자 정신, 유연성을 길러주는 데 있다”고 말했다. 이공계 교육도 시장 역학에 반응해야 한다는 뜻이다. 카이스트는 기초연구와 응용연구 등 연구개발의 모든 단계를 갖추고 있다. 산학 연계도 어느 곳보다 많은 경험과 실적을 갖고 있다.

미국은 1990년대 전 지역에 대학중심의 산업 클러스터를 만들어 성공적인 경제발전을 일궜다. 정부는 대학들이 △지적재산을 만드는 기능 △비즈니스를 만드는 기능 △지역을 만드는 기능 등 세 가지 기능을 반드시 갖도록 했다. 대학을 중심으로 한 '기술기반 경제발전'을 추진한 것이다. 카이스트는 이 세 가지 기능을 다 갖추고 있다.

카이스트는 실력가들이 모인 양산박이다. 강한 신소재 분야에, 남이 하지 않는 생산기술과 기술경영 분야, 한창 뜨는 산업디자인 등이 포진하고 있다. 하나의 가정이지만 같은 대덕에 있는 ICU(한국정보통신대학교)까지 합쳐 카이스트의 종합력과 분야를 넘나드는 시너지 효과가 돋보일 것이다. 특히 마이크로경제 분야에서 국립대학끼리 대협력 자세를 보여주고, 유비쿼터스 사회를 선도해 나간다면 그 영향력은 막대할 것이다. 재해방지 등 위기관리 기술, 웰빙 및 실버 기술, 식품안전 및 의약기술 등 목적지향형의 ‘사회기술’도 카이스트가 붙잡을 필요가 있다.

대덕밸리에는 800여개 벤처기업이 있으며, 이 중 매출 100억원이 넘는 회사가 16개사에 이른다. 벤처생태계가 호순환 구조로 가고 있다는 증거다. 카이스트는 그 생태계의 중심에 서야 산다. 우선은 카이스트의 비전을 제시할 리더십을 찾는 게 급하다.]

이 칼럼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카이스트가 상아탑에서 벗어나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비전을 확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2005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교육부총리 발탁 배경과 관련해 ‘대학은 산업’이라고 발언한 것도 유효하다. 노 전 대통령은 미래사회를 위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춰야 하며 이를 위해 대학이 개혁되고 개편돼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를 두고 ‘신자유주의적 교육 개방’이라는 비판과 ‘현실적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수용론이 맞서기도 했다. 대학과 교육을 미래의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접근한 노 전대통령의 혜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카이스트는 러플린 총장(2004.7~2006.7)의 전환기, 서남표 총장(2006.7~2013.2)의 개혁기, 강성모 총장(2013.2~2017.2)의 안정기를 거쳐 신성철 총장(2017.2~현재)의 모색기를 지나고 있다. 카이스트는 졸업생과 재학생을 합쳐 10만명 시대를 대비하는 매머드 유니버시티로 부상했다. 미래 50년 목표로 10명의 특이점(세계적인 이론을 창출하거나 난제를 해결) 교수 배출과 기업가치가 10조원을 넘는 10개의 데카콘(100억 달러 이상) 스타트업 육성, 전 세계에 10개의 카이스트 패밀리를 만드는 ‘10-10-10 드림’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2005년의 사정과 현재를 비교하면 양적 성장은 괄목할 만하나 질적 성장에서 ‘카이스트다움’을 내세울 게 마땅치 않다. 그 이유를 국내외 교육·연구 여건의 격심한 변화 탓으로 돌릴 수 있으나 카이스트 스스로 혁신적 돌파력을 키우지 못했다는 지적도 피하기는 어렵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대학의 패러다임 시프트가 요구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대규모 교육을 위한 교원 확보가 필수였으나 코로나19 이후는 소규모 교육으로 전환하고 있다. 늘어난 교원의 사무 부담과 연구시간 감소는 교원사무의 효율화와 연구시간 확보로 여건이 달라졌다. 

그뿐만 아니라 현실세계를 전제로 한 시설 확보와 시설 노후화, 시설정비 비용부족이 경영의 큰 애로요인이 되었으나 원격수업에 의한 시설의 재구성, 효율적 시설정비를 꾀할 수 있게 되었다. 현실 세계를 기준으로 한 경비 절감은 고차원의 지출개혁으로 바뀔 것이다. 대학 재원의 다양화도 요구되고 있다. 업무의 디지털화는 종이 소비문화를 넘어 데이터 활용 문화로 변모시킬 것이다.

이 같은 대학의 패러다임 시프트는 체력, 순발력과 통찰력(비전)이 어우러져야 가능하다. 이 점에서도 카이스트는 강점이 있다. 조만간 출범할 차기 총장시대는 몰입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대다수의 대학이 총론은 무성하고 각론이 없을 때, 총론을 유지하며 각론을 파고드는 자세로 ‘카이스트다움’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전환기-개혁기-안정기-모색기를 거쳐온 카이스트가 다시 사는 길이 될 것이다. 카이스트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대학의 패러다임 시프트를 선도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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