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美 대통령이 '과학'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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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수석논설위원
입력 2021-01-28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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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대책 문답하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 (워싱턴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백악관 스테이트 다이닝룸에서 정부의 코로나19 대책을 밝힌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j

 
[곽재원의 Now&Future]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특히 과학기술을 중시한 대통령은 누구일까? 제16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미국과학아카데미(NAS)를 설치해 과학, 기술, 의학 전문가들을 모아 지혜를 구했다. 링컨 대통령은 특허상표국을 정부 내에 신설하기도 했다. 제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과학기술정책 전문가들에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과학기술대국으로 가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러한 링컨과 루스벨트 대통령의 업적은 미국의 과학기술을 지탱하는 초석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의 제46대 조 바이든 대통령은 링컨과 루스벨트 대통령 못지않다. 바이든 대통령의 최근 행보를 보면 아마도 미국 역사상 과학기술을 가장 중시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과학기술을 항상 미국의 모든 정책과 행정의 전면(forefront)에 내세우겠다고 선언하며 백악관과 행정부의 주요 과학기술팀 인사를 신속하게 발표했다.
바이든은 이러한 의지의 표현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벽에 걸었던 앤드루 잭슨 제7대 대통령의 초상화를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과학자 출신의 정치인인 벤저민 프랭클린의 초상화로 바꾸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과학기술계와 소통을 강화하면서 과학과 증거 기반의 정책을 펴나가고 있다. 과학기술을 경시한 전임 트럼프 대통령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과 과학기술계와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코로나19 대응이다. 그는 전문가의 조언을 계속 무시하면서 세계 최대의 사망자라는 최악의 사태를 초래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구온난화 대책의 국제협약인 파리협정의 탈퇴, 대기오염 규제의 완화, 세계보건기구(WHO) 탈퇴, 국립보건연구원(NIH)과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예산삭감 지시…. 미국 과학계가 반(反) 트럼프 전선을 펼친 것은 당연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지난해 11월 3일 대통령선거 이후 현재까지 바이든 대통령과 미국 과학기술계의 움직임을 보면 미국 과학계와의 소통을 강화하면서 과학기술을 중시하려는 그의 자세를 잘 알 수 있다. 먼저 지난해 11월 7월 바이든 대통령의 대통령 선거 당선 수락 연설을 보자.

“과학과 희망의 힘을 한데 모아야 합니다. 우리는 일단 코로나19 통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틀 뒤(9일) 코로나19 확산을 통제하기 위해 전문가들과 주요 과학자들 중심으로 대응팀을 만들 것입니다. 이런 코로나19 통제 기반은 바로 과학이 될 것입니다.”
미국 과학기술계의 총본산인 미국과학기술진흥협회(AAAS)는 2020년 12월 7일 이런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 수락 연설에 화답하듯이 수디프 파리크 CEO(최고경영자)의 이름으로 서한을 보낸다.

“AAAS는 바이든 정권과 함께 일을 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세계적인 팬데믹, 기후변화, 인공지능(AI)의 진보, 식량과 물의 안전보장, 미국의 경제경쟁력에 대한 위협 등 미국은 절박한 과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들 과제의 해결에는 과학 지식과 기술적 전문능력이 요구됩니다. 그러나 과학자 커뮤니티는 큰 상처를 입어 상당한 회복을 필요로 합니다. 연방정부에 의한 연구개발투자의 예측 불가능성, 과학적 조언에 대한 정치적 간섭과 과학적 공정성의 약체화, 다양한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인재 공급에서의 격차 같은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바이든 정권은 향후 4년간 ‘과학의 리셋(Reset)’에 나서야 합니다.”

AAAS는 이 서한에서 바이든 대통령에게 ‘과학의 리셋’을 강조하면서 4가지 사항을 요청했다. 첫째, 견고하고 지속적인 연구개발 자금조달 장치를 강구해야 한다(연방정부의 과학기술 예산을 GDP의 1.4%로 해야 한다). 둘째, 과학적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과학적 증거 중시와 과학정보의 공유). 셋째, 과학에 있어서의 다양성, 공평성, 포용성을 강화해야 한다. 넷째, 과학기술 분야에서 국제적 시각을 확대해야 한다(외국인 과학자를 쉽게 받아들여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1월 15일 이러한 미국 과학기술계의 요청에 역시 화답하듯이 백악관 과학기술정책국(OSTP) 국장을 장관급으로 격상시키고, 유전학자인 에릭 랜더 MIT 교수를 지명하면서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OSTP 국장은 대통령 과학기술보좌관을 겸임하면서 과학기술이노베이션 정책의 입안과 실행에 관해 대통령에 조언하는 주요한 직책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1년 7개월 동안 공석으로 놓아두었던 자리다. OSTP는 전 부처들의 정책을 조정하면서 국가의 과학기술이노베이션 정책 전체의 방향과 전략을 결정하는 주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1944년 루스벨트 대통령은 자신의 과학기술보좌관인 바네바 부시 박사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년 동안 국민의 건강과 경제 번영, 국가 안보를 이끌기 위해 과학과 기술을 어떻게 최대한 활용할 것인지를 묻는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부시 박사는 ‘과학- 끝없는 프런티어’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통해 응답했습니다. 이 리포트는 국립과학재단(NSF) 설립의 토대를 마련하고, ‘넥스트 75년’의 미국에서 과학적 발견의 방향을 설정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그 이후 미국의 주도 아래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과학적 진보를 이룩했습니다. 그러나 75년이 지난 우리의 삶의 모습은 변화했습니다. 저는 ‘넥스트 75년’ 동안 우리의 자녀들과 손자들이 보다 건강하고, 안전하고, 정의롭고, 평화롭고, 번영하는 세상에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의 국가 과학기술 전략을 굳건한 방향으로 새로 가다듬어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학계, 의학, 산업 그리고 정부 전반에 걸쳐 우리의 현명한 집단 지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부시 박사에게 네 가지 특별한 질문을 숙고해 보라고 요청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편지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처럼 다섯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줄 것을 요청하면서 에릭 지명자가 미국의 다양한 과학계 리더들과 함께 연방정부가 채택할 수 있는 일반적인 전략, 구체적인 행동,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첫째, 우리의 공중 보건과 관련된 광범위한 요구(니즈)에 대처하기 위해 무엇이 가능한지, 또는 무엇이 가능해야 하는지에 대해 현재의 팬데믹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잠재적인 생물무기, 항생제 내성을 포함한 병원균으로부터의 위협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암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질병에 대한 치료법을 개발하고, 임상시험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획기적으로 가속화시킬 수 있을까요?

둘째, 시장 주도의 변화와 경제성장을 가속화하고, 건강을 증진시키며, 특히 낙후된 지역사회에서 일자리를 늘리면서 과학기술의 획기적 발전으로 기후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강력한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의 자연환경을 보존하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보다 건강하고, 안전하고, 번영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제공하는 모델을 다시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셋째, 특히 중국과 경쟁하면서 우리의 경제 번영과 국가 안보가 중요한 미래 기술과 산업에서 어떻게 하면 미국이 세계 리더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국가 투자의 적정 수준은 어느 정도이며, 중요한 기술의 연구와 개발을 모두 빠르게 추진시킬 수 있는 국가 전략의 핵심 축은 무엇일까요?

넷째, 과학기술의 성과를 모든 미국인들이 완전히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해야 모든 배경의 미국인들이 과학기술이 가져오는 창조와 보상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까요? 미국의 모든 지역에서 과학기술 허브를 발전시켜 경제 발전을 가속화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의학의 발전으로 인종적, 사회경제적 건강 격차를 줄이고, 모든 미국인의 건강 증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다섯째, 미국에서 과학과 기술의 장기적인 발전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정부 내에서 과학적 공정성을 보호하고, 정부를 과학자와 기술자가 일할 수 있는 최상의 목적지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면 연구소의 어려움에 대처하고, 연방 연구 지원을 위한 창의적 모델을 촉진할 수 있을까요?“

바이든 대통령은 이러한 다섯가지 질문을 에릭 OSTP 국장 지명자(미국 과학계)에 던지면서 그의 권고를 기다린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미국이 존엄과 존경, 번영과 안보, 진보와 공동의 목표를 향한 미래의 새로운 길로 전진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에릭 OSTP 국장 선임과 함께 민주당과 공화당 진영을 가리지 않고, 전문성과 행정 경험을 갖춘 미국의 과학계의 저명인사들을 백악관과 행정부 과학기술팀에 신속하게 합류시켰다.

바이든 대통령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과학기술을 중시하는 미국의 정책 시스템을 복원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당선 이후 과학적 증거와 전문성, 과학기술계와 소통을 중시하는 국가 지도자의 참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편지를 읽으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 정치 지도자들이 이 서신을 꼭 읽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정치 지도자들도 바이든 대통령 같은 과학기술에 대한 사고와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한국의 미래가 심히 걱정되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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