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찬 칼럼] 美 찢은 선동정치의 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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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찬 경제학자 • 카이스트 교수
입력 2021-01-18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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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찬 교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입으로 미국 정치가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자국의 헌법과 민주정치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던 미국 국민 대다수는 이번 사태를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민 서너 사람 중 하나는 아직도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다. 

트럼프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트럼프 현상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트럼프는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자신의 이해관계에 거슬리는 사람은 야비하게 비난하고, 예의와 염치는 자신의 신발 아래에 붙들어 매어둔 사람이다. 그런 정치인을 어떻게 지지할 수 있을까? 트럼프가 하는 말이 거짓말이지만 그 거짓말이 정말이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거슬리는 사람들을 트럼프가 신랄하게 비난해주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예의와 염치를 차리느라 못할 말, 못할 행동을 트럼프가 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설명들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하지만 대중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데는 더 본질적인 이유가 있다. 트럼프는 풀뿌리 대중이 원하는 것을 실행해주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대중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거기에 올라탄 정치인이다. 

트럼프의 일탈정치가 대중의 요구에 편승하고 있다는 관찰은 새로운 게 아니고 어떻게 보면 진부하기까지 하다. 대중의 열망에 부응하는 게 정치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대중이 원하는 것을 주지 못하는 정치인은 도태되고 만다. 대중의 열망에 편승하는 정치인은 그 열망이 살아있는 동안은 승승장구한다. 대중의 열망은 혁명을 일으키기도 하고 평화적 정권교체를 가져오기도 한다. 대중이 정치세력으로서 힘을 발휘하려면 조직화되어야 하는데 그 주된 도구는 정당이다. 정치인은 결국 정당을 조직하고 이끄는 사람들이다. 미국 공화당은 그동안 트럼프 지지세력에 올라탔으나 선거에 계속 패배하면서 최근 혼돈에 빠지고 있다. 

물론 대중세력과 정치인의 관계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정치인의 선동에 대중이 움직이기도 한다. 나치 정당을 조직하여 독일을 제2차세계대전으로 몰고 간 아돌프 히틀러, 문화혁명과 대약진운동으로 중국을 한동안 혼돈에 몰아넣었던 마오쩌둥은 대중선동에 능했고, 트럼프도 역시 이 부류에 속한다. 

대중과 정치인의 관계는 한쪽이 다른 쪽을 제어하지 못하는 상태로 가기도 한다. 정치인이 대중의 등에 올라탄 뒤에 자기 마음대로 내려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대중이 떠받들어 올린 정치인이 정치조직과 통제수단을 완전히 장악하여 대중이 그 손아귀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경우도 있다. 파시스트 정당이나 공산당처럼 전체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이 집권하는 경우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으며 패전 등 극단적 상황을 통해서만 정권교체가 일어난다. 

최근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흐름은 기술혁신과 세계화에 따른 양극화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얻는 자와 잃는 자 사이의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도 양극화되고 있으며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극단주의가 득세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보수세력 내의 태극기부대와 진보세력 내의 극단적 친문세력이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극단주의가 힘을 얻을수록 문제해결은 힘들어진다. 극단주의자들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기보다는 자신들의 믿음에 따라 사실을 재구성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정파들이 공통의 인식하에 정치적 타협을 하기가 힘들어진다. 극단주의자들의 믿음이 강해질수록 이데올로기는 종교화되고 정치지도자는 예언자 행세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동이 정부에 대한 폭력적 공격을 야기했다는 이유로 의회에서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 중이다. 내일모레 대통령이 될 조 바이든으로서는 감염병 사태 대응 등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많은데 탄핵정국으로 일 추진에 지장받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미국 정치가 극단주의적 실험을 뒤로 하고 보다 타협적인 정치로 돌아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트럼프 사진 모형 끌어 내리는 미 펜실베이니아 시위대 (해리스버그 AP=연합뉴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주도 해리스버그에 있는 주의회 의사당 앞에서 17일(현지시간) 시위대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진 모형을 안내판 위에서 밧줄로 묶어 끌어내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곳에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의 시위가 예정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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