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저항, 분노, 공감 그리고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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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논설위원· 서울시립대학 초빙교수
입력 2021-01-05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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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위원]


새해에는 ‘저항, 분노, 공감, 연대’를 제안한다. 중앙대학교 김누리 교수는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가치로 저항, 분노, 공감, 연대를 강조한다. 그는 세계 2차대전을 야기한 나치즘은 바로 이러한 가치가 부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독일 국민은 히틀러 선동에 침묵하거나 눈감고 오히려 동조했다. 그 결과는 참혹한 홀로코스트였다. 오늘날 독일 교육이 저항, 분노, 공감, 연대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모든 역사는 저항과 분노로 쓰였다. 우리 근대사만 해도 그렇다. 동학, 4·19, 부마항쟁, 5·18, 6·29, 촛불혁명까지 저항과 분노가 단초가 됐다. 또 공감과 연대는 공동선에 필요한 자양분이 됐다.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고 분노한 결과, 우리 사회는 흔들리면서도 나아갔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이것으로 끝인가. 안타깝게도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는 저항과 분노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공감과 연대 의식도 희박하다.

그저 진영 안에서 감싸고 합리화하기 급급하다. 이런 상황에서 불평등은 갈수록 쌓였다. 상위 1%만을 위한 사회다. 고려대 김우창 명예교수는 한국사회를 ‘오만과 모멸로 구조화된 사회’로 정의했다. 승자는 한없이 오만하고 패자는 모멸감을 내면화하는 사회다.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도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같은 주장을 펼쳤다. 공정경쟁이라는 이름 아래 승자는 오만, 패자는 굴욕과 분노를 키운다는 것이다.

그는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미국인은 대개 가난한 성인이 된다고 했다. 하버드와 스탠퍼드 대학생 3분의2는 소득 상위 10% 가정 출신이다. 반면 아이비리그 대학생 가운데 하위 10% 출신자는 4%도 되지 않는다. 학벌은 소득 격차를 낳았다. 1970년대부터 늘어난 국민소득 대부분은 상위 10%에게 집중됐고, 하위 50%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부유한 1% 미국인은 하위 50%가 버는 것보다 더 많이 벌고 있다.

이게 미국만의 현상일까. 불행하게도 우리는 더하다. 지난해 한국장학재단에 장학금을 신청한 서울대·연대·고대생 2명 중 1명은 부모 소득이 1억1000만원 이상이다. 연소득 1억7000만원이 넘는 부모도 25%에 달했다. 반면 기초·차상위 계층 가정 자녀는 5.8%에 그쳤다. 이탄희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고소득층 가정 학생의 상위권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고 있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에게 대물림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자산 불평등은 어떤가. 우리나라 상위 1%는 16%, 상위 10%는 66% 자산을 소유하고 있다. 반면 하위 50%는 1.8%를 소유하는 데 그친다. 부동산 불평등은 한층 심각하다. 부동산 부자 상위 1%는 25%, 상위 10%는 96.4%의 집과 땅을 소유하고 있다. 반면 하위 90%는 3%의 부동산을 나눠 갖고 있다. 국회의원, 청와대 참모, 고위 공직자들은 확고한 1%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든 정치권력에 저항하고 분노하는 사회라야 한다.

한때 불의한 독재 권력에 맞섰다면, 이제는 불공정한 정치권력에 저항해야 한다. 또 박종철군 고문치사에 분노했다면, 온갖 스펙을 위조한 조국 일가에 분노하는 게 당연하다. 샌델은 미국 명문대 입학에는 명사들과 사모펀드 거부들이 연루됐다고 강조한다. 조국·정경심 행태와 너무 흡사하다. 그런데도 친문 지지층은 두둔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히려 비판하는 지식인들을 공격하는 홍위병을 자처했다.

그들은 그깟 표창장 위조가 무슨 죄냐고 우겼다. 그러다 유죄판결을 받자 이번에는 사법부를 흔들었다. 샌델은 미국, 영국, 유럽에서 포퓰리즘이 발흥한 원인으로 집권 엘리트층에 대한 반작용을 들었다. 학벌에 기반한 엘리트층의 위선과 소득 불평등에 대한 반발이라는 것이다. 한국사회도 다르지 않다. 부와 권력의 대물림과 불평등은 한계에 달했다. 저항과 분노를 외면한 한국사회는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윤리기준은 허물어졌고, 갈등은 극단적이며, 삶은 피폐하다. 건강한 시민이라면 오만한 권력, 불공정한 사회에 저항하고 분노해야 한다. 조국, 윤미향, 추미애, 월성원전 수치 조작은 대표적이다. 그리고 공감·연대함으로써 사회변화를 견인할 책임이 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연대는 중요한 가치다. 나만 잘해서는 한계가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백신 접종을 외면하고 있다. 그들을 놔둔 채 자신들은 안전할까.

우리 사회도 그런 어리석음은 없는지 돌아보자. 나와 우리 가족, 우리나라를 넘어서는 연대가 필요하다. 윤리기준을 다시 세우고, 공동체를 위해 고민해야 한다. 더불어 우리 사회를 위해 쓴 소리를 내는 지식인들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최장집, 홍세화, 강준만, 김누리, 유인태, 최진석. 새해에는 편 가르지 말자. 대신 저항하고, 분노하고, 공감하고, 연대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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