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코로나19 사태에 대처하는 큰 정부와 현명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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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수석논설위원
입력 2020-12-04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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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담장 향하는 문재인 대통령 (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1월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신임 대사들에게 신임장을 수여한 뒤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조현옥 주독일대사, 노태강 주스위스대사, 문 대통령. 2020.11.10 cityboy@yna.co.kr/2020-11-10 13:35:49/ <저작권자 ⓒ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저작권자 ⓒ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곽재원의 Now&Future] 유례없이 부산한 코로나19 위기 속의 12월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지난 11개월 동안 어떤 방역대책도, 어떤 경제대책도 무시한 채 세계를 휘젓고 지금도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유력한 백신 출현이 오늘 낼 눈앞에 있고 치료제도 곧 나올 참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불안은 좀처럼 가실 기미가 아니다, 이런 사정은 남은 한 달도 달라지지 않을 듯 싶다.

1년을 통틀어 지난 3분기(7~9월)에 겨우 각국 경제와 기업이 반짝 경기를 탔지만 4분기에 다시 악화될 전망이고 보면 세계경제가 코로나19 사태 이전으로 회복할 가능성은 아주 낮다.

이런 가운데서도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에서 주가가 수년래 최고의 상한가를 치고 있다. 이 모습도 정상은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비정상의 정상화’ 사례는 부지기수로 늘어났다. 바둑의 세계로 말하자면 이제 세계 주요국들의 관심은 어떤 정책으로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현명하게 끌고 나갈 것인가 하는 새로운 포석(布石)에 쏠리고 있다. 지난 11개월은 팬데믹에 응급 대처하는 행마(行馬)의 시기였다. 포석의 핵심은 정책의 진화와 함께 큰 정부에서 현명한 정부로 진화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경제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의 라지 체티 교수는 코로나19 확산 후에 발표한 논문에서 데이터 해석기술을 구사해 지역과 소득계층의 차이를 감안한 최적의 경기부양책을 제시했다. 경제정책의 새로운 틀이다. 요약하자면, 미국 기업의 경영데이터를 폭넓게 수집해 매출과 개인의 고용·소비 등이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날짜별로 조사한 다음 우편번호 등 지리적인 정보도 가미해 분석했다. 체티 교수는 “부유층이 타인과의 접촉을 꺼려 소비가 급감해 타격을 받은 부유한 지역의 음식점과 소매점들이 종업원을 삭감하고, 그 결과 임금 노동자가 직업을 잃어 개인소비의 부진이 확대·고정화되고 있다”는 경기악화의 경로를 밝혀냈다. 이번 코로나19 팬데믹 불황은 과거의 불황보다도 타격을 받은 지역·소득층이 편재(偏在)되어 있는 것이 특징으로 미국의 경우 나라와 주(州) 전체로 지원하는 ‘얇고 넓은’ 형태의 대책은 효과가 한정되어 있다고 체티 교수는 분석했다. 그는 실업이 심각한 지역·계층을 핀포인트로 찍어낸 고용지원과 사회보장 등이 앞으로의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3년 전 미국에서 발표된 체티 보고서에선 명문대 졸업 후 연봉 상위 20%대의 직업으로 진입한 사람들 중 저소득층(소득 하위 20%) 출신은 2.2%, 즉 100명 중 2명꼴이라는 분석결과를 내놨다. 가장 큰 이유는 명문대에 저소득층 학생이 워낙 적기 때문이었다. 당시 분석한 미국 12개 명문대의 경우 소득 상위 1% 집안 출신 학생이 14.5%인 데 비해 저소득층 학생은 3.8%로 나타났다. 즉 입학 기회의 불공정이 결과적 불공정을 낳는다는 말이다. 이 보고서는 ‘명문대학은 중산층과 고소득층의 계층 유지에 열심이지, 저소득층의 상향 이동을 이끄는 역할은 미흡하다’는 사실을 계량적으로 증명한 것으로 유명하다.

체티 교수의 발상은 자본주의의 약점을 근본적으로 극복해 보려는 하나의 시도로 볼 수 있다. 2008년 9월 발생한 세계적인 금융불황 리먼 쇼크 때는 금융 폭주와 경제 혼란에 대해 대부분의 정책이 작동하지 못했다. 일반 시민은 깊은 상처를 입고 자본주의에 강한 회의를 갖게 됐다. 지금 코로나19 위기에서 다시 어떤 정책을 구사할 것인가. 모든 국가들의 최우선 과제다.

지난 9월 새로 출범한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 정부는 특히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서의 새로운 정부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 일본경제신문은 최근 특집기사에서 “우리가 코로나19 팬데믹에서 확실히 알게 된 것은 (정부의) 규모가 아니라 ‘현명함’이 정책의 효과를 결정한다는 사실이다”고 정부에 조언했다.

어느 나라 정부가 더 현명한지를 가늠하는 잣대는 정책 이노베이션(혁신)의 모습이다. 지금 세계는 정책 이노베이션의 경쟁 시대에 돌입했다. 미국 바이든 신정권이 추진할 신산업·기업 정책, 중국 시진핑 정권의 제14차 5개년 계획(2021~2025)과 2030년 비전, 일본 스가 신정권의 민관 디지털 혁신 정책 등은 그 대표적인 것들이다.

정책 이노베이션의 상징은 역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전환)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제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 되고, 인간 삶의 패러다임이 비가역적으로 달라지는 시대의 키워드가 바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다. 이 점에서 한국은 뚜렷한 방향을 갖고 있다. 외국 미디어들이 ‘한국판 뉴딜 정책’을 자주 소개하는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이 정책을 발표하며 향후 5년간 160조원을 투입한다고 했다. 이 중 디지털 분야에 58조2000억원을 배정했다. 대표적인 사업으로 전국의 초중고에 고성능 와이파이(Wi-Fi)를 도입하고, AI(인공지능)의 정밀진단이 가능한 ‘스마트 병원’을 정비키로 했다.

지난 2일 국회에서 확정된 내년도 예산에서 보듯이 재정지출 확대는 불가피한 사안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이 팽창된 예산을 어디에 쓸 것인가. 일본 신문들은 한국의 디지털 투자에 높은 관심을 보인다.

일본도 재정지출 확대를 피할 수 없다면 한국처럼 디지털 영역의 인프라 정비에 자금을 집중해 다음의 경제성장을 위한 포석을 깔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고속통신망 등이 정비되면 재택근무가 쉬워지고 새로운 팬데믹에 대한 내성도 높이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정책 이노베이션에서 주목되는 또 하나의 이슈는 경기대책을 환경배려형 사회로 전환시키는 ‘그린 리커버리’가 세계적인 조류가 됐다는 점이다. 한국은 한국판 뉴딜정책 안에 그린뉴딜(녹색성장)을 챙겨 넣었다. 그린뉴딜에는 2050년 탄소중립과 수소경제 정책이 담겨있다. 신재생 에너지 부문에만 5년간 35조원 이상을 투입할 계획이다. 이 분야에 선도역인 유럽연합(EU)은 2021년부터 7년간 환경 분야에 적어도 5500억 유로(약 700조원)를 투입한다고 한다. 캐나다는 긴급융자제도 이용조건에 기후변화의 영향을 포함한 재무정보 등재를 기업에 의무화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재정지출 팽창으로 선진국의 공적(公的) 채무잔고가 2020년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124%로 전년보다 20%포인트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때인 1944년(18% 포인트 증가)를 넘어, 기록이 존재하는 과거 140년 사이에 가장 큰 수치다.

코로나방역 대책에서 성공한 나라와 실패한 나라가 확연히 구분되고, 이에 동반해 그 나라 지도자의 부침이 결정되는 모습이 목격된다. 재정투입도 그럴 것이다. 비효율적인 분야에 재정자금을 쏟은 나라는 경제가 정체되고, 늘어난 공적채무 처리에 고통을 겪을 것이다. 반대로 창의적이고 미래를 내다보며 재정을 투입한 나라는 활력을 붙일 것이다. 나라의 부침(浮沈)이 쉽게 결정되는 시대가 됐다.

내년도 558조원의 팽창 예산은 그 씀씀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의 성패가 결정될 것이다. 큰 정부는 어디에 쓰느냐가 관심이지만 현명한 정부는 어떻게 쓰느냐에 신경을 쓴다. 문재인 정부가 한국판 뉴딜정책을 정책 이노베이션의 승부처로 잡았다면 매우 대담하면서도 치밀하게 끌고나가야 한다. 체티 교수가 제시한 핀포인트 정책의 개념을 새겨 볼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현명한 정부로 가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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